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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6년(1996)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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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후 신명의 생애 : 시소(柴紹)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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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柴紹) 신명

 

          

           

  시소(柴紹)는 자(字)가 사창(嗣昌)이고 진주(晉州) 임분(臨汾) 사람이다. 어려서 민첩하고 용감하고 무력(武力)이 뛰어나 협객으로서 소문이 났다. 수(邃)가 태자의 천우비신(天牛備身)이 되었다. 고조(高祖)가 평양공주(平陽公主)를 아내로 주었다.
  장차 군대를 일으키려 하니 소(紹)가 지름길로 달려가서 고조를 맞이하고 배알했다. 이 때에 태자 건성(建成)과 제왕(齊王) 원길 또한 하동(河東) 땅으로부터 와서 길에서 만났다. 건성태자가 말하기를『우리를 추격하라는 서찰이 급하니 관리들에게 잡힐까 두렵네. 세력이 큰 적들에게 의지하여 스스로를 보전할까 하네.』라고 하였다. 

  소가 답하기를『안됩니다. 적들은 그대가 당공(唐公)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으니 필경 태자를 잡는 것을 공로로 여길 터입니다. 그러니 헛되이 죽게 될 따름입니다. 태원(太原) 지역을 질주해 빠져나가는 것이 났습니다.』라고 하였다.

  작서곡(雀鼠谷)에 들어간 다음에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태자가『소는 지략이 있구나.』라고 하며 서로 축하했다.

  우령군대도독부(右領軍大都督府) 장사(長史)를 배수 받고 활을 지닌 기병을 거느리고 진양(晉陽)을 출발했다. 먼저 곽읍(藿邑)의 성 아래에 이르러서 형세를 살폈다.

  돌아와서 말하길『송노생(宋老生)은 필부(匹夫)의 적이니 우리 군사가 당도하면 필시 싸우려 나올 것이니 그때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큰 군대가 도착하자 노생(老生)이 과연 출전했고 소는 힘껏 싸워 공적을 세웠다. 임금을 좇아 임분(臨汾) 강군(絳郡)을 함락시키니 수(隋)의 장수 상현화(桑顯和)가 항전하러 왔는데 소가 군사를 이끌고 가 적의 후면을 둘러싸고 사대내(史大柰)와 함께 공격했다.
  현화(顯和)는 패했고 이로써 마침내 수도가 평정되었다.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로 지급하고 임분군공(臨汾郡公)을 배수 받고 여러 차례 임금을 좇아 토벌하러 나갔기 때문에 곽국공(藿國公)으로 승진해 봉해지고 우요위대장군(右要衛大將軍)으로 옮겨졌다.

  토곡혼(吐谷渾)과 당항(棠項)이 변방에서 노략질을 하자 소에게 그들을 토벌하라는 칙명이 내려졌다. 오랑캐들이 고지를 점령하고 소의 군대에게 활을 쏘니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병사들이 놀래 낯빛이 변했다.

  그러나 소는 편안히 앉아 사람을 보내 오랑캐의 비파를 연주케 하고 또 두 여자를 시켜 춤추도록 했다. 오랑캐들이 기이하게 여겨 활쏘기를 멈추고 구경했다. 소는 그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서 날랜 기병을 보내 후미에서 습격하게 하니 오랑캐가 크게 붕괴되었고 적의 목을 벤 것만도 오백 명에 이르렀다.

  정관(貞觀) 2년에 양사도(梁師都)를 평정하고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으로 뽑혔다. 변방으로 나와 화주자사(華州刺史)가 되었고 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 직책이 더해 졌으며 초국으로 옮겨졌다. 병이 들자 태종(太宗)이 친히 병문안했다. 죽어서 형주도독(刑州都督)을 증수 받았고 시호를 양(襄)이라 했다. 두 아들이 있었으니 철위(哲威)와 영무(令武)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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