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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7년(1997)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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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 三神山 不老草(삼신산 불로초)

三神山 不老草(삼신산 불로초)

 

          

               

  삼심산(三神山)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말한다.

  《열자》에 의하면 발해(渤海)의 동쪽에 오신산이 있는데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이 늘어서 있고 주옥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불로불사한다고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선인(仙人)들로 하늘을 날아 다니며 살아간다. 뒤에 두 산은 없어져 버리고 삼신산만 남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상향에 대한 믿음은 그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많은 제왕들이 삼신산에 있다는 불로초를 구하려고 열을 올렸으며 그 중에서 진시황이 도사 서불에게 많은 금은보화와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보내어 삼신산의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시킨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에서 이러한 삼신산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삼신산에 대한 여러 문헌적 근거에서 그 위치를 추정해 보면 당연히 한반도로 귀착된다.「발해의 동쪽」이니, 「산동 반도에서 동해로 배를 타고 가면」등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그 누가 생각해도 그 당시의 고조선 지역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이 삼신산의 이름인 봉래산·방장산· 영주산으로 불리워 왔다는 데서 더욱 자명해진다.

  보다 확실한 것은 지리산의 쌍계사 창건설화에도 지리산이 삼신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쌍계사는 723년(신라성덕왕 23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의 눈쌓인 계곡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 그리고 한라산, 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계시 받은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라 하였다. 그 뒤 정강왕 때 쌍계사로 바꾸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삼신산이 있는 신선향(神仙鄕)으로 동경해 왔다. 《회남자》에서는「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다」고 표현하였으며, 당태종은「바라건대 고구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고싶다」라고 외쳤다. 공자 같은 성현도「나도 동이(東夷)의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진실로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꿈 속에서라도 가보고 싶은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있으니 금강산·지리산·한라산 등이 봉래산·방장산·영주산으로 불리워온 것과는 별도로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전라도 지역에 봉래산·영주산·방장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실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장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산줄기에 망제봉과 영주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것이 기복 연면하여 이룩한 시루산 아래, 신선을 기다리는 마을인 선망리(仙望里)에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것을 생각할 때, 중국인들이 그렇게 갈망해 오던 삼신산이란 신선의 마을은 양위상제님과 도전님께서 우리들에게 마련해 주신 후천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여러분! 진시황제도 그렇게 원했지만 얻지 못한 삼신산 불로초를 우리 한번 캐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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