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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7년(1997)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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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 신명의 생애 : 잠팽(岑彭) 神明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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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팽(岑彭) 神明열전

 

          

             

  잠팽(岑彭)은 자가 군연(君然)이고 남양(南陽) 극양(棘陽) 사람이다.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때에 극양현의 현장(縣長)으로 있었다. 한(漢)의 군사가 일어나서 극양현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잠팽은 가솔을 이끌고 전대(前隊)의 대부인 견부(甄阜)에게로 도망갔다. 견부가 잠팽이 극양현을 굳건히 지키지 못했다고 노하여, 잠팽의 어머니와 아내를 잡아 가두고 명령을 내려 잠팽으로 하여금 공훈을 세워 스스로 가솔들을 보존토록 했다. 그리하여 잠팽이 빈객을 거느리고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견부가 죽음에 이르러 잠팽은 부상을 당한 채 완(宛) 땅으로 피난하여 전대(前隊) 견부의 부장(副長)인 엄설(嚴設)과 함께 성을 지켰다. 한나라 군사가 공격한 지 수개월이 지나자 성안의 곡식이 바닥나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 잠팽이 엄설과 함께 성을 가지고 한나라에 항복했다.
  한의 여러 장수들은 잠팽을 죽이고자 하였는데, 대사도(大司徒)인 백승(伯升)이 말하기를… 『잠팽은 군(郡)의 관리로서 온 마음을 다해 성을 견고히 지킨 것이니, 이는 그의 절개입니다. 지금 큰 일을 하려 하시면 마땅히 의로운 선비들을 표창하셔야 하니, 잠팽을 봉하여 후인들을 권계함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니, 갱시(更始)가 곧 잠팽을 귀덕후(歸德侯)로 봉해 주고 백승(伯升)의 휘하로 소속시켰다. 백승이 해를 입게 되자 다시 대사마(大司馬) 주유의 교위(校尉)가 되어, 주유를 좇아 왕망의 휘하 양주목(楊州牧)인 이성(李聖)을 공격하여 그를 죽이고 회양성(淮陽城)을 평정했다. 주유가 잠팽을 천거하여, 회양도위(淮陽都尉)가 되었다. 갱시가 입위왕(立威王) 장앙(張仰)과 장군요위를 파견하여 회양땅을 진압하도록 하였는데, 요위가 반란을 일으켜 장앙을 공격하고 달아나니, 잠팽이 병사를 이끌고 요위를 쳐서 격파했다. 그 후에 영천태수(潁川太守)로 옮겨졌다.
  때마침 용릉땅의 유무(劉茂)가 군사를 일으켜 영천지역을 점령하니, 잠팽이 그곳의 태수로 갈 수 없게 되어 마침내 휘하의 수백인과 더불어 하내(河內)의 태수이며 읍인(邑人) 한흠(韓歆)을 좇았다. 이때에 광무(光武)가 하내지역을 돌며 정벌하니, 한흠이 성을 고수하고자 논의하였는데 잠팽이 만류하며 듣지 않았다. 이윽고 광무가 회(懷) 땅에 이르자 한흠이 황급히 달려나가 맞이하여 항복했다. 광무가 한흠이 모반을 꾀했던 사실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한흠을 잡아 북 아래 매어 두고는 장차 목을 베려 하였다. 광무가 잠팽을 불러 만나니, 잠팽이 이 기회를 이용해 진언하기를… 『오늘날 적미(赤眉)는 관문 안으로 쳐들어오고, 갱시(更始)는 위태로우며, 권신들은 제멋대로 날뛰며 서로 왕임을 자처하고, 나라 곳곳의 통로는 두절되고, 사방에서는 벌떼처럼 일어나고 군웅들은 다투어 이를 좇으니, 백성들이 목숨을 의탁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왕께서 하북(河北)을 평정하사 왕업(王業)을 여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이는 진실로 하늘이 한(漢) 나라를 보살피신 것이며 선비들의 복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대사도(大司徒) 백승(伯升)에 의해 목숨을 보전케 되었는데 채 은덕을 갚기도 전에 백승께서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되니, 이것이 저의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대왕의 은덕을 입게 되었으니 저의 목숨을 다 받쳐 대왕을 보필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광무(光武)가 잠팽의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이어서 잠팽이 또 한흠(韓歆)은 남양(南陽)에서 세력을 떨치는 집안의 사람으로 등용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하니, 광무가 한흠을 용서하고 등우(鄧禹)의 군사로 삼았다. 갱시(更始)의 대장군인 여식(呂植)이 군대를 거느리고 기원(淇園)에 주둔해 있었는데, 잠팽이 유세하여 그들을 항복시켰다. 그리하여 자간대장군(刺姦大將軍)을 배수받고 군대를 감독하게 되었으며, 항상 천자(天子)로부터 받은 부절(符節)을 지니고 광무를 좇아 하북(河北)을 평정하게 되었다. 광무(光武)는 임금으로 즉위한 뒤, 잠팽에게 정위(廷尉) 벼슬을 배수하고 예전처럼 귀덕후(歸德侯)로 지내게 하였으며 대장군(大將軍)의 일을 맡아 하도록 하였다. 이에 잠팽은 대사마(大司馬) 오한(吳漢), 대사공(大司空) 왕량(王梁), 건의대장군(建義大將軍) 주우(朱祐), 우장군(右將軍) 만수(萬脩), 집금오(執金吾) 가복(賈復), 효기장군(驍騎將軍) 유식(劉植), 양화장군(揚花將軍) 견심, 적야장군 후진(侯進), 편장군(偏將軍) 풍이(馮異) · 제준(祭遵) · 왕패(王覇) 등과 함께 낙양을 포위하여 수개월이 흘렀다. 그런데 주유 등이 낙양성을 굳게 지킨 채 항복하려 들지 않았다. 광무제는 잠팽이 일찍이 주유의 교위장군(校尉將軍)이었던 까닭에 그로 하여금 가서 주유를 설득하도록 보냈다.
  주유는 성 위에서 잠팽은 성 아래에서 서로 노고를 위로하며 마치 평소 그랬던 것처럼 환담을 나누게 되었다. 『저는 이전에 장군을 곁에서 모시다가 장군의 추천을 받아 발탁되었으므로 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천하의 정세는, 적미(赤眉)가 이미 장안(長安)을 점거했고 갱시(更始)는 삼왕(三王)의 반란을 만났는데, 이제 광무제께서 천명을 받으셔서 연(燕) 땅과 조(趙) 땅을 평정하시고 유(幽)와 기(冀)의 땅을 다 차지하시고, 백성들이 마음으로 귀의하고 천하 준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께서 대군(大軍)을 이끌고 친히 낙양을 공략하러 오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천하의 일은 이 형세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하니 공께서 비록 성을 굳게 지키신다 한들 그로써 장차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라고 잠팽이 말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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