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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7년(1997)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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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후 신명의 생애 : 우세남(虞世南) 神明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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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남(虞世南) 神明열전

 

             

               

  세남은 태종 12년에 벼슬에서 물러났는데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라는 명예직을 제수받고, 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의 직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며, 방합시경관직사(防閤視京官職事)에 해당하는 봉록을 하사 받았다. 나이 81세에 세상을 떠나자 태종이 칙서를 내려 소릉(昭陵)에 배장(陪葬)토록 하고,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추증(追贈)하였으며 시호를 문의(文懿)라 했다.
  태(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길, 『세남은 나와는 한 몸과 같았으니 나의 모자라는 점을 보충해 주길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오. 진실로 당대(當代)의 명신이요, 인륜의 전범(典範)이었다고 할 수 있소. 이제 그가 저 세상으로 가버렸으니 석거(石渠), 동관(動觀)에 그만한 사람 다시 누가 있으리!』라고 하였다.
  후에 태종이 시 한 수를 지어 옛날의 흥망성쇠를 술회했는데 시를 짓고서 탄식하며 말하길,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백아(伯牙)가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 않았다는데 나의 이 시는 장차 누구에게 보여줄꼬?』라 하며 기거랑(起居郞) 저수량(楮遂良)을 시켜 세남의 영전 앞으로 가 불사르도록 했다. 그러다 몇 년이 흐른 뒤 태종이 꿈에서 세남과 평상시처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튿날 칙서를 내려 세남의 집안을 보살펴 주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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