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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6년(1996)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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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 단청은 신명과 하나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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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은 신명과 하나되는 자리

 

                   

          황영주 <평도인ㆍ선산5방면>

 

  병자년 정월 초하룻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금릉방면 내수도인 백여명이 일제히 전라도 전주 삼천동으로 향했다. 몇 달에 거친 회관 공사 후 이제는 내부에 옷을 입히기 위한 단청을 하러 새해 새마음으로 모인 것이다.

  금릉방면에서 최초로 회관을 짓기에 또, 전경에 강조된 전주 모악산과, 천지공사의 현장이자 배경인 상제님 친가와 동곡약방등을 근접한 자리인 전주 삼천동에 회관이 들어서기에 발걸음을 옮기는 내수들의 마음은 충분히 설레었다.

  회관건물은 아직은 시멘트로 뼈대만 완성되고 전혀 다른 시설은 갖추지 못한 실정이었다.

  하지만 시멘트 냄새가 텁텁하고, 열린 창문사이로 매서운 한기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금릉방면 내수들은 작업복을 든든히 차려 입고 모자를 눌러 쓴 채로 작업에 들어갔다.
  단청물감 색깔이 무엇인지, 단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던 내수들은 어느새 붓을 한두개씩 쥐고는 각자 자신이 맡은 색깔을 칠하고 있었다. 신명이 났다. 정성껏 정성 껏, 황색(노란색)을 맡은 사람은 황색만을, 주홍색(붉은색)을 맡은 사람은 주홍자리만을 찾아 열심히 뛰어다녔다. 7층 봉심전은 어느덧 합심이 된 그 뜨거운 여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했다. 봉황, 학, 용,....신명계의 여러 동물들.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느껴 본 적이 없지만 붓은 돌아갔다. 휙, 휙, 「무아지경」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구름 위에 떠 있는지, 무지개 속에 파묻혔는지....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일주일여를 보내고 봉심전 천정 위에 조각한 용의 점안식이 있던 날, 전주 삼천회관 하늘 위 가득 메운 구름틈새로 크게 또아리 튼 큰 용 수 십마리가 밝은 빛으로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또, 커다란 조각용 눈이 점이 막 찍히는 순간, 거센 비바람이 회관주위를 빙빙 돌더니 휭하니 사라져 창 밖으로 보인 하늘엔 커다란 용 꼬리 모양의 구름이 북으로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전주 삼천회관에서 보낸 약 3주간의 기간은 그 어떤 수도과정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상제님 성전을 짓는 공사에 직접 참여해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요, 실제로 도는 「신명」이라는 큰 이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요, 단청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청(丹靑)은 붉을 단(丹)과 푸를 청(靑)을 합한 것이고, 이 대조적인 음양색깔을 바탕으로 우주만물의 펼쳐진 이치를 색과 형태로써 가시화시킨 것이다. 석간주(갈색)를 칠한 밑부분으로 속세를, 그 위에 양측(녹색)을 바탕으로 장, 삼, 황, 녹색(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의 색색의 문양을 넣은 윗부분은 신명계를 의미한다. 우리가 단청을 이야기할 때, 음양을 비롯한 우주이치의 함축된 조합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단청에는 원색을 사용하고, 이 색깔들은 각자가 빛색(보다 채도가 높고 대비를 이루는 색)과 반드시 짝을 이루어 쓰인다. 또, 보색이 되는 색끼리 가까이 배치시켜 음, 양의 대조와 대비가 완벽하고 화려한 모양새와 색감을 이루게 된다.

  둘째, 우리가 옷감을 짤 때 씨줄과 날줄을 올바르게 짜여져야 되듯이, 단청 또한 어느 부분 공허하게 빈 부분이 없이 빽빽하게 채워지게 된다. 각자의 하나하나의 색깔, 모양, 선들이 그 하나로써는 별로 튀어나와 보이진 않지만 전체는 멋진 하모니를 이루게 된다. 만약 어느 한 부분이 빠져있거나 혹은 유달리 다른 색깔로 칠해져 버리면 그것은 전체를 망치게 된다. 곧, 개개인의 자질이 아닌 전체의 조화와 화합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셋째로, 비록 아무리 색깔이 잘 칠해졌더라도 만약 먹선이 비뚤어지게 그려진다면, 건물 전체는 기울어지게 보인다. 그 반대로 건물이 약간 비뚤어졌어도 마지막 먹선이 정각으로 그려진다면 그 건물은 더도 없이 완벽하게 보이게 된다. 우주의 어떤 삼라만상도 그 펼쳐진 바가 바른 이치, 뼈대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요, 모든 일에서의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단청은 그 자체가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으므로 반드시 「神明」이 계시는 자리에만 그려지게 된다. 대순진리회의 도장과 단청의 외부 혹은 내부에 단청이 그려진 것은 반드시 「신명」이 도 안에 실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전주회관, 즉 그 이후에 하게 된 속초도장 단청을 하면서 가장 피부에 닿게 느낀 것은 신명이 실존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항상 행하는 기도, 주일, 수련, 포덕, 교화, 공부, 공사....이런 모든 일들에 신명은 철저히 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신명이 눈에 안 보이는 존재이기에,,너무 도 안에서의 생활에 젖어 들어 어쩌면 빠뜨리고 갈 뻔했던 신명에 대한 인식, 도인이 행하는 일이 천지 도수에 박힌다는 인식,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됐다. 내 손을 타고 용이 승천하고, 학이 나르고, 봉황이 춤을 춘다. 단청은 신명과 내가 하나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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