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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9년(2009)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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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 순(舜) 임금과 두 아내

순(舜) 임금과 두 아내


교무부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제왕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요(堯) 임금은, 나이가 들어 은퇴할 때가 되자 자신의 아들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신하들에게 후계자를 추천하도록 했다. 신하들은 곧 여러 사람을 천거했으나 요 임금의 마음에 드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널리 사람을 보내 양위(讓位)를 해줄 만한 어진 인물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마침 기주(冀州) 땅에 살고 있는 순(舜)이라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순의 아버지 고수(瞽叟)는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기로 유명하여 눈뜬장님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고수는 순의 생모가 죽자 후처를 얻었는데 그녀는 기회만 있으면 순을 죽이려고 온갖 계략을 짰고, 이복동생인 상(象)도 걸핏하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순은 원망은커녕 오히려 그런 부모를 극진히 받들었기 때문에 효성이 지극하고 어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요 임금은 순을 대궐로 불러 이것저것 하문을 해보았다. 소문대로 그가 덕이 높고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박학다식한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대화만으로는 평소 행실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고민을 하던 요 임금은 자신의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시집보내 그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혼례를 못하고 있던 상은 가뜩이나 미워하던 순이 아내를 둘씩이나 얻자 질투가 나서 더욱 그를 괴롭혔다.

  어느 날, 고수가 순에게 곳간의 지붕에 올라가 비가 새는 곳을 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장마철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가 올 리 없었고, 실제로 비가 새는 곳도 없었다. 아황과 여영은 평소 상과 계모의 간악함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에 고수의 지시가 남편을 죽이려는 두 사람의 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챘다. 두 아내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지만, 효성이 지극한 순은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의 뜻을 받아들인 아황과 여영은 지혜를 짜내 짚으로 커다란 삿갓을 두 개 만들어 그 위에 천을 씌워 순에게 주었다. 고수가 수리를 재촉하자 순은 삿갓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갔는데, 그가 올라서자마자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이 재빨리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순식간에 위로 솟아올라 지붕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지만 순은 삿갓을 펴들고 뛰어내려 살아날 수 있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우물을 파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아황과 여영은 그 지시가 순을 생매장하려는 상과 계모의 음모임을 알아차렸다. 두 아내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일러주며 우물을 파되 몰래 옆으로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 두라고 했다. 한 달여쯤 지난 어느 날, 순이 평소대로 흙을 파내러 밑으로 내려가자 상이 나타나 그 위로 흙을 쏟아 부어 우물을 메워버렸다. 이번에야 말로 자신의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한 상이 의기양양하며 집으로 돌아왔으나 순은 이미 빠져나와 두 아내와 함께 무사생환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 후에도 순을 죽이려는 계획이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아황과 여영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들은 순에게 이주하여 살 것을 권유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그는 두 아내와 함께 역산(歷山)으로 가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계모와 상은 역산까지 따라와 순을 괴롭혔으나 그는 여전히 효성을 다 바치고 우애 있게 대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횡포가 점점 더 심해지자 아황과 여영은 순에게 뇌택(雷澤)으로 이사를 하되 혹시 상과 계모가 또 따라와 괴롭힐지 모르니 자신들이 일군 비옥한 농토를 넘겨주고 떠날 것을 제안했다.

  순은 두 아내의 제안대로 뇌택으로 이사 와 물고기를 잡으며 살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상과 계모가 고수까지 데리고 뇌택으로 찾아와 순을 괴롭혔지만, 세 사람은 다시 전 재산을 넘겨주고 하빈(河濱)으로 이사했다. 질그릇을 구워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이번에도 상이 쫓아와 고수를 충동질하여 순의 재산을 가로채는 바람에 세 사람은 또 다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순과 두 아내가 이사를 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수와 계모, 상이 쫓아가 온갖 횡포를 부리며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부모를 탓하거나 동생을 내칠 수 없다고 생각한 세 사람은 쫓아온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여러 마을을 방랑하며 살아갔다. 그러는 동안 순의 효와 덕에 대한 명성이 점점 높아져 세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환영을 받았고, 많은 백성들이 순의 품성을 본받기 위해 그가 거주하는 마을로 몰려들었다.

  세월이 흘러 순이 30세가 되었을 때, 그동안의 동태를 낱낱이 살피고 있던 요 임금은 그를 대궐로 불러 오전(五典)01을 가르치는 벼슬을 내려 주었다. 순이 20년 동안 묵묵히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내자, 요 임금은 그를 섭정으로 임명하였다. 이윽고 61세 때에 천자가 된 순은, 제위(帝位)에 오르자 황하의 치수에 더욱 정진하여 이후 39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다.

  만약에 순 임금이 친부와 계모, 이복동생의 괴롭힘에 견디다 못해 마음을 악하게 먹었거나, 두 아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또는 아황과 여영이 남편을 두고 서로 시기·질투를 일삼거나 시부모와 시동생의 부당한 처사에 불만을 품다가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목숨이 오가거나 열심히 일군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고난에 처하더라도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타인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도리(道理)를 다하며 서로 믿고 협심하여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명성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膾炙)되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유혹이나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고, 선·후각이 서로 믿고 힘을 합쳐서 나아간다면 분명 만수 도인의 마지막 목적인 도통(道通)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바람에 쉽게 날려가는 한 장의 백짓장조차도 맞들면 낫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참고문헌 : 이수광 著, 『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 : 중국편 上』, 일송북, 2002>

 

 

 


01 유학에서 주장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뜻한다. ≒ 오상(五常)·오륜(五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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