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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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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우리는 더불어 살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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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불어 살아 나간다
 
이기적인 정신의 벽을 허물어 상생의 새 바람을 불어 넣어야
 
 

공주방면 김 매 자

              

  어느 때인가, 점심을 먹고 졸음을 달래기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잡지와 신문을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가, 일순간 졸음이 확 깨는 문귀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아찔했음 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이 바로 「더불어」라는 길지도 않은 세 글자인 것이다. 너와 나와 「더불어」 우리와 너희와 「더불어」 나아가서 이 세상 모두와 「더불어」등등 순수한 우리말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상생」이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듯 싶어 더욱 흥미롭고 기뻤다. 물론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 문귀가 무엇이 대단하길래 그러느냐고 반문할 수도 충분히 있지만, 그땐 왜 그리 그 단어가 가슴속 깊이 와 닿았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아마 그 당시 마음 속을 더듬어 보건 데, 진리에 심취되고 항상 갈망하면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도, 쉽게 결론 내릴 수도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이란 관계에 무척 고민할 때인 듯 하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심한 모욕감을 받은 것도 아니고, 무슨 척을 산 일도 더더욱 없었건만 인간들의 관계가 어찌하여 저토록 힘이 드는 것일까 하고 막연하게 머리 속을 어지럽히기만 하여 신경이 잔뜩 쏠려있던 때라. 선뜻 영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사람인(人) 자와 사이간(間) 자라는 뜻을 가진 인간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관계인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나를 찾고, 상대방을 안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지만, 그 탕탕치는 소리가 가슴이 막혀서 답답하여 치는 내면의 외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번번히 실패로 거듭되는 자신에 외로움과 허전함에 씁스레히 발길을 돌리고, 무력감에 젖어 드는 자신을 되돌아 본다. 적당히 자존심도 부리고, 상대방한테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싶은 끊임 없는 욕망의 실현 또한 자신의 한 모습이다. 자기 혼자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마냥 오기도 부려보고, “자기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라는 뜬구름 잡는 착각 속에 하루하루 시간을 낭비하면서 산다.
  나와 너가 살아가야만 되는 것이 인간(人間)이란 것도 망각한 채 환상 속에 빠져 들어간다. 객체인 듯 하면서도 주체인, 아무 무리가 없이 스스로 통합하는 무한한 힘을 지닌 「더불어」라는 의미에 마음속 깊은 느낌이 전해 온다.
  어차피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욕망을 불태우는 존재라지만, 그 욕망의 끈이 끝없이 줄달음칠 때는 자신의 미련함에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저 넓고 깊은 대양(大洋)에 눈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차분히 가라앉음을 실감한다. 아무 작위가 없이 조용한 휴식을 취한 듯 보이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기다림일 줄이야. 갑자기 몰아칠 때는 어디에서 저런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가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난다.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이 만남과 만남이 수 없이 연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각기 부여한다. 더욱 없어서는 안될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너와 나의 만남이 인생을 결정지어 주는 윤활유 역할도 분담하고 있기에, 누구와의 어떠한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에 자신의 인생 성패가 달려있다.
  그것은 흡사 모험과도 같다. 그렇기에 신중을 기울여야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선택은 한번 주어지는 것.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추구하여 온 주관일지라도 나름대로 결론을 짓고 수도에 온 정성을 쏟을 때다. 뿌리 박힌 낡은 의식을 떨쳐버리고, 선택한 자신의 길에 깊이 책임감을 통감하며, 현실에 자성을 울려야만 된다. 올바른 주체성을 확립하고 냉철한 판단력만이 앞으로 살 길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정신개벽부터 먼저 이루어져야만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내면의 울림도, 그곳부터 시작이라는 내면에서의 강한 울림조차도 자신에겐 무한한 고통과 무한한 인내를 말없이 받아들여야만 될 숙명이기에, 기쁘게 받아들인다.
  우리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먼저 자신의 이기적인 정신의 벽을 허물어 개벽의 새 바람을 불어 넣는다. 우왕좌왕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으니, 적극적인 사고를 통하여 상대방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터득하리라.
  자신의 욕망을 보다 차원 높은 광대한 길로 인도함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마음 한마음 상제와의 무언의 대화 속에서 희열과 인간의 참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근본이 상생(相生)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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