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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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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상생대의(相生大義)의 교육적(敎育的) 실천實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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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대의(相生大義)의

교육적(敎育的) 실천實踐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서 세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을 해원하여……

(교운 1장 17절)

 

 

영천방면 선감 조영배

 

Ⅰ. 서(序)
  교육(敎育)이란, 보다 나은 성장(成長)과 발전(發展)을 지향하는 인간(人間)의 지적(知的), 사회적 활동(社會的 活動)이다. 즉, 인류는 문화(文化) 전달(傳達)의 수단인 교육활동(敎育活動)을 통해 선대(先代)의 지식과 지혜를 이어 받고 또한 그것을 후대(後代)에 전해줌으로써 점차 발전해 왔던 것이다. 실상 이러한 활동은 인류가 이 땅에 존재(存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체계적(體係的)인 교육(敎育)은 아마도 문자발명(文字發明) 이후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교육(敎育)은 근대(近代)에 들어오면서 더욱 조직적(組識的)이고 체계적(體係的)인 방법으로 발전해 갔다. 왜냐하면 교육(敎育)이 얼마나 효율적이냐에 따라 국가(國家)의 성패(成敗)가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육내용은 대체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人間)의 도리(道理) · 가치(價値) · 존엄성(尊嚴性) 등에 관계된 정신문제(精神問題)를 다루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科學) · 자연정복(自然征服) 등 사물(事物)을 이롭게 하는 물질적(物質的)인 문제(問題)를 다루는 것이다.
  문제는 산업혁명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인류의 문명이 더욱 발전해 감에 따라 도덕(道德) · 윤리(倫理) · 정신(精神)은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물질적인 것이 점차 강조되어 인간성 상실이 그 심도(深度)를 더해가는 것이다. 즉, 물질만능(物質萬能) · 과학만능(科學萬能) · 강권주의(强權主義)의 대두가 지나쳐 아주 심각한 단계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상제(上帝)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여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와 같이 말씀하셨다. 정신을 상실한 지나친 물질 숭배가 결국은 인간의 교만을 낳고 도(道)의 근원(根源)을 끊어지게 하여 인류(人類)를 진멸지경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상제(上帝)님께서는 이러한 선천(先天)의 이실(理實)을 진단하시고, 병(病)든 삼계(三界)를 뜯어 고치는 공사(公事)를 행(行)하시었다. 현재(現在)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에서는 상제(上帝)님의 삼계공사(三界公事)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종단의 3대 기본사업으로 포덕 · 교화 · 수도 공부와 3대 중요사업으로 구호자선사업, 사회복지사업, 제반 교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 교육사업(敎育事業)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 우리가 행(行)하고 있는 교육사업이 상제(上帝)님의 해원상생(解相生) 이법(法理)에서 볼 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Ⅱ. 현(現) 교육세태(敎育世態)의 문제점(問題點)
  상제(上帝)님께서는 당시의 교육세태(敎育世態)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지적하셨다. 물론 이것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겠다.

  먼저 학교의 교육풍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현하의 학교 교육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관리 · 복록 등 비열한 공리에만 빠지게 하니……」(교운 17장) 이와 같은 사실은 상제(上帝)님께서 강세(降世)하신 시대(時代)의 역사적(歷史的) 배경(背景)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理解)할 수 있다.

  조선(朝鮮) 말기(未期)의 사회(社會)는 바야흐로 정치(政治) · 사회(社會) · 경제(經濟) · 문화(文化)가 크게 질서를 잃고 이완되어 급격히 기강(紀綱)이 흐려지던 때였다. 관사(官史)는 타락하여 매점매석이 횡행하였으며 탐관오리가 득세(得勢)하여 백성(百姓) 위에 군림하였다. 이들의 지나친 탄압 · 착취로 인(因)해 백성(百姓)들이 크게 원성(怨聲)을 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사회문화(社會文化)를 주도해 오던 유교(儒敎)가 쇠퇴하여 공신력(公信力)을 잃고 양반(兩斑) · 유생(儒生)들의 기강(紀綱)도 크게 해이해진 터였다. 이러한 가운데 교육정신(敎育精神)이 올바를 리가 없었다. 당시의 교육(敎育)은 인격(人格)의 완성(完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사(官史)가 되기 위한, 복록(福綠)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문호개방(門戶開放) 이후(以後)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西洋)의 문화(文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탁상공론에 불과한, 무기력해진 기존 문화풍토(文化風土)에 대한 반발로써 도입된 서양문화(西洋文化)는 본래(本來)가 상극적(相克的)이고 교만한 물질만능의 기운을 띠고 있었으니, 그 교육(敎育)의 결과(結果)는 교만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현재(現在)의 교육실정(敎育實情)은 실로 심각하다. 산업사회(産業社會)의 물결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生存競爭)에 시달리는 현대인(現代人)들은 학생(學生)이든 학부모(學父母)이든 전인교육(全人敎育)을 통(通)한 인격완성(人格完成)보다는 단편지식의 축적에 의한 사회적(社會的) 성공(成功)을 갈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高等學校)는 대학(大學)을 가기 위한 수련장이요, 대학(大學)은 취직을 하기 위한 작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은 스승의 도리(道理)와 위치(位置)에 관한 문제(問題)이다. 전경(典經)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망기부자무도, 망기군자무도, 망기사자무도,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천하개병(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행록 5장 38절) 인간사회(人間社會)가 점차 부(父) · 군(君) · 사(師)의 은혜를 잊고 부(父) · 군(君) · 사(師)는 제대로의 위치(位置)를 찾지 못하니, 결국 세상(世上)은 모두 병(病)이 들어 무질서해진 것이다.

  여기서는 사도(師道)에 대해서만 논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忘其師者無道(망기사자무도)」란 말은 첫째 스승의 은혜와 고마움을 망각하고 그 권위를 말살하여 사도(師道)가 문란해진 것으로 이해(理解)할 수 있다. 이러한 현황(現況)은 요즈음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제자(弟子)들이 스승을 무시하고, 학부모(學父母)조차 이를 방관 내지는 조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욱이 스승을 감금하고 폭행하는 일도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둘째는 스승이 스승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추지 않아 스스로 스승의 위치를 격하시키고 권위를 떨어뜨리는 경우이다. 「有師無學其師何立(유사무학기사하립)」(공사 3장 40절) 이란 말씀처럼, 스승이 있어도 학생이 없으면 그 스승이 설 자리가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弟子)를 올바로 교육(敎育)시킬 만한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또 상제(上帝)님께서는 교육실행(敎育實行)의 현실(現實)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시속에 어린 학동에게 통감을 가르치는 풍습이 생겼나니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비로써 성품을 기르려는 것이니 웅패의 술이로다. 어찌 합당하다 하리오.」 본래(本來) 교육(敎育)이란 사람의 마음을 온화하고 안정(安定)되게 하여 무리 없는 성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가 화평해지고 안정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현(現) 상황(狀況)은 그것이 안 되고, 시비(是非) · 상극(相克)의 정신(精神)으로 인품(人品)을 길들이고 있으니 좋은 교육이 못되고 있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이상과 같이 교육(敎育)이란 것이 그 본래(本來)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열한 공리에 빠지게 하고, 시비(是非)의 성품(性品)을 길러 무리를 낳게 하였다. 그러므로 상제(上帝)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돌려 새로운 교육관(敎育觀)을 제시하시고, 이에 따른 공사(公事)를 처결하셨다.

 


Ⅲ. 처방
  상제(上帝)님께서는 선천(先天)의 교육(敎育)이 결국 본궤도를 이탈하여 큰 무리를 낳고 상극(相克)을 조장하는 것을 보시고 새로운 교육(敎育)의 정신(精神)과 방법(方法)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상제(上帝)님의 교육관(敎育觀)은 선천(先天) 교육(敎育)의 폐단을 완전히 뜯어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서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원을 풀려는 것이나…」(교운 1장 17절)의 말씀과 같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신인(神人)의 해원(解)이다.

  이는 선천(先天)의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가 원()에 의한 상극(相克)으로 진멸지경(盡滅之境)에 처한 것을 상기해 보면 매우 중요한 의미(意味)를 지닌다. 선천(先天)의 교육(敎育)이 그 기본목적(基本目的)을 상실하고 오직 시비(是非)와 상극(相克)으로 관리 · 복록을 탐하게 하여 세상(世上)을 혼란케 하였다. 그러므로 이와는 전혀 다른 법(法), 즉 판밖의 법(法)으로써 원()이 맺힌 신인(神人)을 해원(解)시킬 수 있는 교육법(敎育法)으로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건설하는 것이다.
  상제(上帝)님께서는 실제로 몸소 교육(敎育)을 실행(實行)해 보셨음을 전경(典經)을 통(通)해 알 수 있다. 「상제께서 갑오년에 정남기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과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시니 그 가르침이 비범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높았도다.」(행록 1장 20절)

  또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상제께서 정유년에 다시 정남기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과 형렬의 아들 찬문과 이웃 서동들을 가르치셨도다. 이때에 유불선 음양참위(儒佛仙陰陽讖緯)를 통독하시고 이것이 천하를 광구함에 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시고 얼마동안 글방을 계속하시다가 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도다.」(행록 2장 1절) 여기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상제님께서 교육을 실행해 보심은 그 의미가 바로 천하광구(天下匡求)을 있다는 것이다.
  상제(上帝)님께서는 결국 새로운 법(法)을 펼치고 가르칠 수 있는 학교(學敎)를 세우는 공사(公事)를 처결하셨다. 「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에 펼쳐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자(京字)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로다. 그러므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를,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를,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를 각각 정하노라.」(예시 46절)

  이 법(法)은 선천(先天)의 묵은 법(法)이 아니오, 상극(相克)과 투쟁이 없고 원(冤)이 풀어져 새로운 상생기운(相生氣運)으로 충만한 후천(後天)의 법(法)이다. 이러한 법(法)은 서울로부터 만방에 퍼지도록 도수가 짜여져 있으므로 서울 경(京)자 이름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서 수명 · 복록 · 교육(후천의 법을 가르침)의 의미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또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상제께서 김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 하시고…」(교운 1장 32절) 여기에서 대학교는 선천(先天)의 상극(相克)과 시비(是非)를 조장하는 교육장(敎育場)이 아니다. 또 요즈음의 일반적(一船的)인 대학(大學)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말씀대로 막힌 기운을 풀어 온 천하(天下)를 해원(解)시킬 수 있는 법(法)을 가진 커다란 학교이다.
  이상에서 상제(上帝)님께서 교육(敎育)을 말씀하심은 빗나간 선천(先天)의 교육(敎育)을 고쳐 신인(神人)을 해원(解)시켜 후천(後天)의 도래(到來)에 역사(役事)케 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직접 교육(敎育)을 실행(實行)하심으로써 천하광구(天下匡求)를 위해 그 기운(氣運)을 쓰시었고, 새로운 의미(意味)의 학교(學敎)를 만드시는 공사(公事)를 보시었다. 이에 새로운 상생(相生)의 법(法)이 서울로부터 우주만방(宇宙萬方)에 퍼질 것이다.

 


Ⅳ. 현(現) 교육사업(敎育事業)의 의미(意味)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상도(常道)를 잃어 어지러운 삼계(三界)를 바로 세워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건설(建設)하시려는 상제(上帝)님의 뜻을 받들어 실행(實行)하는 종단(宗團)이다. 즉, 상제(上帝)님의 새로운 법(法)을 이어 받아 만방(萬方)에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종단(宗團)에서 추진하는 사업(事業)은 우주적(宇宙的) 차원(次元)에서 매우 중요(重要)한 의미(意味)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니, 교육사업(敎育事業)도 역시 마찬가지다.
  본(本) 종단(宗團)의 삼대(三大) 기본사업(基本事業)인 포덕 · 교화 · 수도 공부도 가르침을 행(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제(上帝)님께서 삼계(三界)를 무위이화(無爲以化)로 조화(造化)하여 우주(宇宙)의 질서(秩序)를 바로 잡아 인류(人類)를 구할 수 있는 법(法)을 펼쳐 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도(道)를 전하는 것이 포덕이요, 다음으로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체계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교화이고, 이에 따라 몸과 마음을 닦아서 수도 공부에 열중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교육(敎育)의 실천 과정이다.
  이 교육(敎育)은 상극(相克)과 시비(是非)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관리 · 복록 등 이해(利害)가 관계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人間)의 가장 기본적(基本的)인 순일(純一)한 정신(精神)으로 해원상생(解相生)의 이치(理致)를 감득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現在) 학교(學敎)를 설립(設立)하는 등(等)의 교육사업(敎育事業)도 바로 이러한 의미(意味), 대순진리(大巡眞理)의 이치(理致)로써 이루어진다. 이로서 점차 해원상생(解相生)의 기운(氣運)이 퍼지고 새로운 후천(後天)의 질서가 확립되고, 성(誠) · 경(敬) · 신(信)이 실천될 것이다. 상제(上帝)님의 뜻을 받드는 도인(道人)들의 일심(一心)어린 정성으로 지어진 학교(學敎)는 상제(上帝)님의 법(法)과 진리(眞理)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役割)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Ⅴ. 結

  교육(敎育)이란 본래(本來) 선대(先代)의 축적된 문화(文化)를 전(傳)해 받음으로써 인류(人類)의 발전(發展)을 도모하고 안정(安定)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近代)로 오면서 지나치게 물질(物質)만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본래(本來)의 목적(目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즉, 관사(官史) · 복록(福祿) 등(等) 공리(功利)에만 집착하게 되고 상극(相克) · 시비(是非)를 조장하여 원래의 목적(目的)을 잃게 되었다.

  그러므로 상제(上帝)님께서는 이를 진단하시고 새로운 교육(敎育)을 제시해 주셨다. 즉 신인(神人)을 해원(解)하여 인류(人類)를 구(求)할 수 있는 새로운 후천(後天)의 법(法)을 짜 놓으신 것이다. 이를 공사(公事)로서 처결하셨으니, 우리는 이러한 뜻을 받들어 포덕 · 교화 · 수도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아울러 삼대중요사업(三大重要事業)인 구호자선사업, 사회복지사업, 제반교육사업에 힘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敎育)이란 사회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상제님의 대순(大巡)하신 이치(理致)에 따라 해원상생(解相生)의 법리(法理)로써 천하(天下)를 화평(和平)케 할 수 있는 교육(敎育)의 일환(逸環)인 것이다. 우리는 이에 상제(上帝)님께서 늘 강조하신 대인공부(大人工夫)에 주력해야 하고, 이것을 널리 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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