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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6년(1996)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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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 포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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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에 대해

 

              

김시아 <선무ㆍ원평3방면>

 

  최근 신문에서 자녀 6명을 모두 미국 명문대에 입학시켜 미국 연방부의 대상이 된 한국여성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가 자녀들을 입학시킨 대학은 세계의 석학들이 피나는 노력 끝에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학에 자녀들을 입학시킨 그녀의 교육이념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녀의 평생교육이념은 오직 단 하나 재승덕(才勝德)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재승덕이란 재승박덕(才勝薄德)과 같은 의미로 재주는 있으나 덕이 적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녀가 이야기하길 그녀의 교육이념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서, 재주가 덕을 이긴다면, 덕을 통해서 만볼 수 있는 큰 차원의 무한한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조그만 차원인 일개 재주에만 머무르게 되어 사람으로서의 겸손을 모르는 소인(小人)이 된다는 것이다. 덕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는 무한한 경지인데, 이것을 한낱 재주의 작은 차원에 의해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덕을 펼쳐야 되는 도인의 입장으로서 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왜냐하면 덕이라는 것은 특히 우리 도인들이 갖추어야 될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항상 상제님의 덕화를 펴야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장 갖추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진정으로 덕이란 무엇일까? 덕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보기로 한다.

  덕이란 마음이 올바르고 인도(人道)에 합당한 일, 또는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힘으로써 중국의 윤리사상과 정치사상에서의 중요 개념이다. 덕(德)이라는 글자는 또 원래 변(邊)이 없고 방(傍)은 직(直)과 심(心)의 합성자이다. 또한 덕이라고 하는 발음은 득(得)과 통한다. 즉 곧은 (直) 마음 (心), 내 몸에 획득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윤리학적으로는 올바른 행위를 정치학적으로는 형벌과 반대되는, 백성의 은혜와 이에 대한 포상을 뜻한다. 이것은 손득(損得)의 득의 뉘앙스에서 온 것이다.
  공자는, 위정자(爲政者)가 스스로 바르게 섬으로써 백성을 강화시킨다고 하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제창했다. 또한 윤리적인 가치관을 포함하지 않는 본유적 능력이나 극성도 덕이라 한다. 이것은 도가(都家)계열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를테면, 새가 높이 날아 화살을 피하고, 쥐가 땅 속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는 것도 덕이다. 이처럼 덕이란 모두 생명본연의 자연스러움에서 무언가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포함한 주위의 자연을 이롭게 생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세상이 이런 덕으로 가득 찬다면 어떠한 세상이 이런 덕으로 가득 찬다면 어떠한 세상이 되겠는가. 천지의 모든 만물이 서로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잘 되게 해주려는 마음을 품고, 또 그렇게 해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보지않아도 알 수 있듯이 그런 세상은 모든 천지만물이 서로 기쁨의 빛을 발하고, 환한 행복의 소리가 넘실되는 바로 인류가 태어나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라고 그려오던 유토피아, 꿈의 세계, 이상향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즉 인류의 갖아 궁극적인 목적인 항상 행복하기만 한 세상이 바로 덕이 펼쳐지는 곳, 덕화가 되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원망, 시기, 질투, 증오, 불평, 불균형 등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신음하고 고통에 몸을 떠는 불쌍한 창생들을 상제님의 덕화로 구하려는 도인들의 가슴에 큰 의미 진리가 될 것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또 동서를 막론하고 세상을 구하고자 많은 방법이 시도되었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파시즘 등이 바로 구세의 목적으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위에서 이미 논의된 진리, 즉 어떤 억압이나 강제적인 것이 아닌 오직 덕으로서만 이 세상이 구제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특히 그 많은 덕목 중에서도 오직 이 세상을 생장염장이라는 법칙아래 관장하시고 운행시키시는 상제님의 덕화를 몰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세든 집을 개조하려면 그 집의 주인의 허락과 능력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 세상도 개조되려면 이 세상의 주인이신 상제님의 허락과 능력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도인들은 이 세상을 오직 상제님의 능력과 허락으로 이루어진 덕화를 이 땅에 펼치는 것만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포덕이다.
  이 포덕은 도전님께서 재세시에 훈시하신 것처럼 상제님의 덕화를 천하에 널리 펼치는 일이며, 수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포덕을 해나가는 가운데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형태의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겪는 고통과 인내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연성(煉性)되는 것이다.

  주문만을 많이 읽고 마음만을 닦는다고 소원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포덕을 통해서 나 자신이 연성되고 연질이 되어야 운수를 받을 수 있게 되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소원인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을 통한 구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이 바로 천하포덕만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상제님의 진리를 펼쳐야겠는가. 바로 해원상생의 진리이다. 해원상생이란 만고의 역사에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사상으로서 후천 오만년 청화 세상을 열어가는 기성 종교의 으뜸이 되는 사상이다. 이것은 불교의 대자대비 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 고통 그리고 희비가 엇갈린다거나 기독교의 박애사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지 널리 사랑만을 해서 무겁게 쌓여진 원한을 고려치 않고 싫어도 미워도 세상의 여건상 서로 살아가는 단순한 상호관계가 아닌 상생이라는 글자 그대로 서로 잘 살게 하는 화합의 사상인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해원상생의 진리가 이 땅에 펼쳐질 때만이, 가정화목과 이웃화합과 이룩되며, 또한 서로 화합되는 사회, 즉 척이 풀려 원(寃)과 한(恨)이 없는 화평한 사회가 되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도 이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도인들은 이러한 엄청난 진리인 해원상생을 통한 포덕에 정성을 쏟아, 상제님의 덕화를 받아 윤리 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대순진리회의 뜻을 받들어 대운대통(大運大通)하는 도인들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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