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26년(1996) 6월

이전호 다음호

 

회보 1면 대순지침 상제님의 일대기 대순논단 수기 청계탑 28수 신명의 생애 24절후 신명의 생애 금강산 이야기 종단소식 대순칼럼 알립니다

24절후 신명의 생애 : 은개산(殷開山)

은개산(殷開山)

 

             

             

  은개산은 이름이 교(嶠)인데 자(字)로써 더욱 알려져 있다. 대대로 강남(江南)에서 살았다. 조부 불해(不害)는 진(陣)에서 벼슬해 사농경(司農卿)으로 있었는데, 진이 망하자 경조(京兆)로 옮겨 우인이 되었다.

  개산(開山)은 여러 책을 설렵 했고 편지글에 뛰어나 수(隋) 대곡(大谷)의 현장(懸長)이 되었다. 고조(高祖)가 군사를 일으킴에 개산을 불러 대장군(大將軍)의 소속관리로 삼았다. 임금을 좇아 서하(西河)를 공격했다. 위북도(渭北道)의 원수장사(元帥長史)가 되었는데 이때에 관보(關輔)지역의 도적떼들이 힘을 믿고 거만히 굴며 임금을 돕지 않자 개산에게 명령하여 회유책을 쓰도록 하니 모두들 와서 복종했다. 유홍기(劉弘基)와 더불어 장안(長安)의 옛 성에 머물 때에 위문승(衛文昇)의 군대를 격파하여 진군공(陳郡公)의 작위를 받았고 승상부(承相府)의 소속관리로 옮겨졌다.
  이부시랑(吏部侍郞)으로서 진왕(秦王)을 좇아 설거(薛擧)를 토벌했다. 마침 왕의 병이 심중하여 왕이 진영안에 누워있게 되었는데 군대를 유문정(劉文靜)에게 맡기며 경계하여 말하기를『적군은 바야흐로 기세가 치열하니 빨리 싸워 이익을 보고자 할 것이요, 공들은 싸우지 말고 적군의 양식이 떨어져 병사들이 굶주리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우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개산은 일을 계획함이 민첩하여 문정(文靜)에게 유세하여 말하길『왕께서는 질병이 계속되자 공께서 적군을 이기지 못할까 염려하시어 싸우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땅히 기회를 틈타 적을 제압하여야 하며 오로지 왕에게만 적을 맡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청컨대 군사를 훈련하여 적군을 두렵게 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절서에서 싸우게 되었는데 설거(薛擧)에게 선수를 놓쳐 마침내 크게 패하였다. 관리에게 하부 되어 사형 죄로 판결되었는데 왕이 제명시켜 평민이 되었다.
  얼마 지나서 왕을 좇아 인고 땅을 평정하여 작위가 회복되었고 섬동도(陝東道) 행대병부상서(行臺兵部尙書)를 겸직하였으며 이부(吏部)로 옮겨졌다. 왕을 좇아 왕세충(王世充)을 토벌하여 그 공로로써 운국공(隕國公)으로 작위가 승진되었다.
  유흑달을 평정하러 가다가 병으로 길에서 죽으니 왕이 심히 통곡했다. 명령을 내려 섬동도(陝東道) 대행대우복야(大行臺右伏射)를 증수하고 시호를 절(節)이라 하였다. 정관(貞觀) 14년에 회안왕(淮安王) 신통(神通) 하간왕(河間王) 효공(孝恭) 민부상서(民部尙書) 유정회(劉政會)와 더불어 고조(高祖)의 묘당에서 함께 제사 지냈다. 영휘(永徽)중에 사공(司空)으로 추증되었다. <끝>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