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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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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새장속의 새와 창공을 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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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속의 새와 창공을 나는 새

 

   

남대구방면 외수 하태홍

   

  어느덧 大巡眞理會에 入道한 지도 반년정도가 된다. 입도전 내 모습과 도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선입관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대학 3년을 마친후 휴학을 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찾아와 大巡眞理會에 관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열심히 얘기했으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았고 반면 강한 호기심과 의혹감이 일어났다. 무엇 때문에 저 친구는 저토록 열심히 도에 대한 얘기를 하는가? 하는 것이었고 그러한 마음에서 나는 道에 대한 호기심과 의혹을 가지고 입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번 알아보고자 했던 호기심이 이제는 나 자신의 생활중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왠지 죄스러운 마음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생긴다.

  그러나 입도후 많은 갈등도 있었다. 그것은 주위의 눈들이었다. 친한 친구들의 이상한 눈길과 나 자신이 겪는 갈등이었다. 「정말 나는 바른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속에서 생기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생길때마다 내마음 한편에서는 전경에 있는 구절이 떠올랐다. 「일에 뜻을 둔 자는 넘어오는 간닢을 잘 삭여 넘겨야 하리라」(교법1장3절)하는 상제님의 말씀이었다. 그러한 聖句를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참으로 의구심없이 一心을 가지고 일을 하기란 어렵지만 그것은 반드시 해결되고 생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질 때 커다란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마음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심경의 변화를 가지고 포덕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학창시절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까 아니면 좀 더 마시고 놀까 하는 안일한 생각과 행동으로 나날을 보내왔던 내가 꽉 짜여진 연락소에서의 생활이란 견디기 힘든 고충이었다. 그 중 제일 힘든 것은 수면의 부족이었다. 내 마음 내키는 데로 자고 싶은대로 자던 생활에서 군대와 같이 짜여진 계획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들개를 집에서 키우는 격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道를 통해서 나자신을 변화시켜 보자는 마음으로, 스스로가 정한 일이므로 내자신이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포덕사업을 통하여 내 성격의 변화와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더 큰 자유를 道안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진정한 자유란 자기의 행동하나 하나가 도의 법리에 어긋나지 않고 남에게 덕을 베풀수 있으면서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진실로 가식이나 억눌림이 아닌 자유를 느낄 때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다운 자유와 행복감을 나 혼자만이 가지고 느낄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을 나를 아는 아니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전하는데는 무척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것은 他人과 나의 생각이 항상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충실한 인간이 되어 남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몸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나보다는 남의 편에서서 그의 입장과 생각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 나를 버릴수 있는 마음과 남을 잘되게 하는 相生의 精神이 조금씩 싹트게 됨을 느꼈다.

  그러므로 좀더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을 크게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을 갖출 때 상제님의 진리는 조금씩 이해되면서 誠・敬・信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느끼게 된 것은 나지신도 마찬가지였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큰 변화나 결정을 해야할 일이 닥쳤을 경우에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 속에서 바깥 세계에 대한 경계를 가지게 되고 자기 자신 안에서 안주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그것은 가보지 않은, 보지못하는 세계에 대한 의혹감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즉 남의 사상이나 말을 자기의 인식속에서 자기의 의지대로 해석을 내린다는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면 人類는 발전(發展)을 할 수 없고 따라서 개인의 변화나 발전도 기대할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아직도 도에 대하여 망설이고 있는 많은 분들께 이러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결코 새장속에서 사는 새는 창공의 무궁한 세상을 경험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그것도 꼭 그 사람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人間들 스스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不信하는데서 참뜻이 전해지지 못하고 바른 진리나 진실이 통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경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먼저 마음에 문을 열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기에 그러한 것들을 미워하고 극복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 할 수 있는, 상제께서 펼치신 해원상생의 법리가 온 누리에 펼쳐지는 그날을 위해서 오늘도 상제님의 진리를 전해주는 우편 배달부가 되어 포덕소의 문을 힘차게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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