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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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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잘 사는 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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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길에 대하여

 

道는 깨달아 행하는 것

하루 짚신 세 켤레가 닳도록 죽음을 밟아 병자를 구하리니

 

 

 황 신 호<외수남대구 방면>

         

  <잘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나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구하려고 때때로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돈 많은 재산가의 삶을 가리켜 「저 사람은 잘산다」라고 쉽사리 평가한다. 그러나 그 치부의 경위나 과정에 있어, 옳지 못한 수단에 의한 것인지 또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에 의한 것인지는 따져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나타난 결과만 보고 경솔하게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의 삶을 가리켜 「저 사람은 못산다」라고 곧잘 말해버린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과 그릇된 인식들로 인하여, <잘산다>는 것에 대한 판단기준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회는 갈수록 한탕주의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물질적경제적인 측면으로만 어떤 사람의 삶을 함부로 저울질 하는데 불만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내면적인 것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나와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없을까하고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에 철학책을 사러갔는데 그 곳에서 선각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인간이 가야 할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느냐」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간이고, 보람된 생활인가 사람들이 재리에 눈이 어두워 남이야 어떻게 살든 고려하지 않고 자기 뱃속만 채우려는데 혈안이다. 여기 인간이 갈길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데 한번 알아보자고 하였다. 나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내가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길이기 때문이었다.

  선각을 따라 포덕소에 도착한 나는 한복을 입고 입도식을 마친뒤 어떤분(선사)으로부터 도담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늘 머리가 멍한 상태였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군대 재대 후 몸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밥만 축내는 생활을 반복해 왔던 것이다. 젊은 사람이 집에 있으려니까 눈치가 보여서 공장에 일하러 갔으나 몸이 약하여 오래가지를 못하였다.

  그런 생활 끝에 입도를 하게된 나는 수련을 하면 머리가 맑아질것이라는 말을 듣고 매일 저녁마다 회관에서 수련을 했다. 그러면서 교화도 듣고 기도시간에 맞춰서 정성을 쏟게 되자 예전보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또 내가 그렇게 고민했던 「잘사는 것」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속이지 말고 언덕을 잘 가져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음덕을 쌓으며 자연의 순리와 이치에 따르는 대순진리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고조되었다. 그러던 중 입도한지 한달쯤 후에 포덕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포덕소 생활의 가장 큰 고충은 잠이었다. 보통 집에 있으면 10시간 정도 잠을 자던 나는 처음에 잠을 줄이려니까 무척 힘이 들었다. 밤1시 기도를 모시면서 잠이와서 제대로 못할때가 많았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자 어느정도 연락소 생활에 익숙해 왔다.

  포덕소에서 선각들은 「道之覺, 道之行」이라하여 도는 깨달으면 행하는 것이니 깨달은 만큼 행동하라고 하였다. 또 포덕을 행동하라고 하였다. 또 포덕을 하면 도를 빨리 깨닫게 되고 공이 쌓여 업(業)이 빨리 풀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각과 함께 처음으로 포덕하러 갔는데 막상 처음보는 사람과 이야기 하려니까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원래 내성적이라 남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나는 그날 선각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선각은 나에게 「하루 짚신 세 켤레가 닳도록 죽음을 밟아 병자를 구하러 다니리니 이렇게 급박할 때 나를 믿으라고 하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으리오. 그러므로 너희는 시장판이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길이 열릴터인데 하는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예시 43절)는 전경구절을 인용하면서 포덕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고 그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신명들은 아시니까 언젠가는 포덕이 될것이며 우리 도가 신도임을 명심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렇게 하여 포덕을 시작하고 몇주가 지나도 입도 명단은 받았지만 입도치성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한달쯤 지나자 도에 대한 회의가 오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기국을 시험하는 것이니 열심히 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그런 말들은 실감이 안나고 궛전을 맴돌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몇주후에 드디어 포덕 1호를 하게 되었다. 정말 기뻤다. 그 후각은 며칠 간 잘나오더니 그다음부터는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몇 번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만 헛수고였다. 나의 도심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도 밀고 나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 생활이 바뀌어 복학하게 되어 학교에 가보니 동기생들은 도서관에 자리잡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취직 때문에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들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게되자 나는 다시 갈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보통사람들과 같은 가치관생활방식을 싫어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나에게 닥치니,「내가 뭔데 도를 닦는가.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다가 그냥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사는 것에 대하여 생각만 했지 실제로 앞에 닥치니 인간의 마음이란 간사하여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포덕소에 가지 않고 집으로 곧장갔다.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만나서 회포도 풀고 잠도 실컷자며 하고싶은 대로 다 하였다. 그 사이 선각에게 전화도 왔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만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은 자꾸 포덕소로 갔다. 집에 있으니 몸에 힘이 계속 빠지고 머리가 다시 멍해지는 것 같았다. 수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또 사회가 돌아가는 현상만 보아도 도를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미안해서 도저히 갈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포덕소로 갔다. 포덕소에서는 반드시 돌아올줄 알았다면서 따뜻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우리는 생활 그 자체가 도인데 보통 다른데서 도를 찾는다. 산속에 들어가서 수도하는 것이 도이며 일반생활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활환경 즉, 자연의 이치 즉 순리가 바로 道이고 진리라고 생각한다. 도는 먼곳에 있지 않고 가까이 있으며 평범한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울수가 있다. 지금의 나는 나자신 보다는 남을 위하여 일하고 도울때도 아무도 모르게 도와주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 또 내가 방황하거나 고민할 때 늘 곁에서 도와주고, 이끌어주며, 정성을 보인 선각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부터는 내가 왜 수도를 하는가. 왜 포덕을 해야 하는가. 등을 냉철히 파악하여 나아가야겠다. 그래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헤쳐 나아갈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선각의 뜻을 잘 받들고 열심히 포덕하여 참된 인간의 자세로 자사는 길을 제시해줘야겠다. 더 나아가 상제님의 광구천하하심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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