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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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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道人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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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人이 되기까지

 

비소를 비수로 알고…

 

    

강 동 윤<교무남대구방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산천도 바뀌듯이 인간도 변한다. 막상 꿈에 부풀어 대학에 진학했다. 미팅, 페스티발, 체육대회 등 여기저기 참가하면서 흥청흥청 거렸다. 그러면서 느는 것은 술과 담배였다. 고등학교 때 못다한 원(怨)을 풀기라도 하는 듯이 그런 것에 몰입하였다. 어떤 가치관이나 줏대가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러면서 무의미하게 1년이 지나갔다. 점차 내생활에 회의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인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는 길은 어떤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겨 고민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선각을 만나게 되었다. 「道에 관심이 있느냐?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것에 흥미가 없느냐?」고 물었다. 내심(內心)으로는 기뻤지만 막상 갈려고 하니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의 권유와 안면에 못이겨 따라가서 입도식을 하게 되었다. 흰옷 입고 절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끝나고 나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여 그곳을 한시라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 후 선각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학과친구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 내가 먼저 피했다. 만나면 도에 대한 얘기고 수련등 따분한 것을 하자고 하니 은근히 싫었다. 그러나 선각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끈질기게 계속 따라 다니면서 정성을 보였다. 그러나 하고싶지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여주로 참배를 가게 되었다. 처음 도착하여 그 건물의 웅장함에 놀랐다. 그리고 수련도장이 100일만에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듣고 한번 더 충격을 받았다. 우리민족 고유성을 잘 반영하였고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그 속에는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大巡에 대하여 알아보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하숙집을 정리하고 포덕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잠이 모자라서 애를 먹었다. 간혹 나에게 힘들고 벅찬 일이 부딪혔을 때 포덕소를 떠나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그때마다 선각께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 마리의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 껍질을 깨는 어려움이 있듯이 나에게도 그런 홍역이 있었다. 괴로워서 술로써 밤을 지세우적도 있으며 잠을 못이룬적도 많았다. 修道를 하느냐? 마느냐? 그 갈림길에서 결정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해답을 찾기 위하여 여행을 하였다. 여러 사람들과 접하면서 산지식을 많이 얻었고 세상이 극으로 치닿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결정하려고 숱한 나날을 고민과 방황으로 보냈던가? 지금 생각하니 아픈만큼 성숙해진 것 같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연의 돌아가는 이치와 순리, 天地大道를 알았다는 것에 감사의 마음 그지없고 「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는 孟子의 말처럼 순리에 적응하고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겨울에는 겨울옷을 입어야지 고집부려 여름옷을 입으면 감기걸려 앓아누워 자기 손해라는 이치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평범한 말속에 심오한 진리가 숨어져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道之覺, 道之行」이라하여 깨달았으면 실천에 바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날 포덕하러 나갔다.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귀기울이는 사람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어떤 사람은 젊은사람이 안 됐다며 비소하고 냉대하였다. 마음같아서는 강제라도 입도시켜서 대순사상을 아려주고 싶었다.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남이 나에게 비소하는 것을 비수로 알고 또 조소하는 것을 조수로 알아라. 대장이 비수를 얻어야 적진을 헤칠것이고 용이 조수를 얻어야 천문에 오르나니라.」(교법 2장 19절) 이 전경의 구절이 피부에 와 닿았다. 남이 나를 비웃고 조롱하며 말리는 것은 나의 업(業)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상제님을 믿으면서 전진하기로 마음 먹었다.

  수도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선각이 학과 친구였다는데 있었다. 캠퍼스 생활하면서 눈치보며 예를 갖추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고역이었다. 친구간이기 때문에 존대말을 막상 쓸려고하니 왜그리 어색한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 눈도있고하여 처신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대순이 神道이기 때문에 예를 갖추려고 노력하였다. 고집스럽고 모자라는 나를 그렇게 따라 다니면서 지극정성을 보인 선각에게 감사를 드리고 나도 열심히 하여 후각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여서 대순의 天地大道를 깨닫고 상제님의 덕화를 펼 수 있도록 여력이 닿는 대로 이끌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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