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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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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새로운 세계로 또 다른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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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로 또 다른 봄을…

 

 

하 수 형<서강대 불문과 4년>

 

  나의 수도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하면 왠지 겸연쩍은 느낌이 든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선 나의 반성이 어쩌면 진실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고백을 하는 것은 짧은 수도 기간 중 내가 느꼈던 것과 또 많은 수도인들이 겪고 느꼈던 것,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경험하게 된 것들과 공통된 점이 있을 것이고 그 공통점들은 어떤 중요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입도를 하기 이전, 나는 보통 현대인들이 그렇듯이 무척이나 고립감과 방황의식에 휩싸여 「다른 사람들과 뭔가 틀리며 예외적이고 내 상활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지냈었다. 아무도 나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므로 나름대로 내 뜻을 세우고 거기에 맞게 노력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였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고 보면 이미 기존의 환경속에서 무의지적으로 형성된 나 자신에 대하여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뜻을 세움에 있어 고대의 위인이나 주변의 존경할 만한 이로부터 영향을 받곤 하는데 그 영향을 받아 자기화 하는 데는 또 얼마나 주체로서의 심지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도무지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의 공허한 내면은 교육받아 키워진 지적 능력하고는 조금도 비례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기를 여자란 모름지기 적당히 배우면 시집가서 잘 살면 그만이라고 했다. 나에 대한 그동안의 교육과정도 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미지의 시회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도 쉽게 안주할 수 있는 종착역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듯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부여가 되지 않았기에 어떠한 일상적인 만남이나 과제들도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였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야 함이 어이없고 힘에 부쳐 휴학을 해버렸다. 그것이 입도를 하기 1년전 이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찮게 선각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입도를 하게 되었다. 처음의 포덕소의 인상은, 인간사의 이치를 배우는 곳이란 느낌과 그러한 일들이 영리나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삼계를 통하고 창생을 두루 이롭게 하는 근본된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있을까하는 염려도 있었다. 修道라고 하면 언뜻 인간의 한계와 싸우는 것일 거라는 막연한 짐작이 들었고 나 자신과 직면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주춤하고 짓눌리기도 하였다.

  여하튼 나는 점차로 선각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道의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 왔고 포덕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수없이 나의 부서짐을 맛보며 修道라는 것은 내가 해본 모든 것 중에 가장 만만하지 않은 하나의 탐험과도 같다고 느꼈다.

  사람들과 대하면 그들마다 나의 짧은 인생경륜과 허술한 마음 가지고는 뚫고 헤아릴 수 없는 묻혀지고 얽혀진 세계가 있었고 그 마음의 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지 통감이 안잡혔다. 결국 해원상생이며 도통진경을 이야기하는 내가 실없어진 느낌이었으며 나의 뜻이 아직 얇은 얼음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점점 더 처음에는 문지방 앞에 있을 것 같던 후천선경이 나같은 자격 미달생과는 아주 먼 이야기 혹은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 내가 기본적으로 갖추었다고 내심 자부하던 모든 것이 얼마나 부질없어졌는지 모른다. 항상 마음속에서는 「너는 진정한 네가 될 수 없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도 상제님께서 「말뚝에라도 기운을 붙이면 쓸수 있다」는 말씀에 매달려 보기도 하였다.

  道門에 들어 강하게 느낀 것은 내가 불성실하고 무능한 인간이라는 거였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안락 이라는 것의 허상을 가장 잘 알려주는 듯 싶다. 편안함이란 것도 내가 할 바를 하는 노고로움이 있는 다음의 시원한 것과, 할 일을 방치하고 잠시 묵었다 가는 편안함이 있는 듯 싶다. 바로 도닦는 것은 전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이 괴로움을 치러내면서 전생부터 남에게 맺었던 척을 청산하고 그럼으로써 내 자신이 상극적인 관계, 질서로부터 풀려나고 온 우주가 화해로와져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가 내가 처사를 바르게 하여 남에게 이로움을 주게되면 그 여음이 모두 함께 나누어 같이 生하게 된다는 것, 이렇게 지어지는 세상이 새 세상이 아니겠는가.

  우리 많은 도인들이 고달픔을 달게 사심없이 참아내는 까닭이, 눈에 당장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새 세계의 도고 상생의 법리를 가져오신 상제님의 호생지덕을 닮아가려는 애틋한 마음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애틋한 마음이 바로 道의 인연이 아닐까?

  나는 요즈음 더욱더 신문지상의 구석구석에서 어둡게 눌어있는 세상을 읽는다. 날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마약문제며 각종 현대병들. 정말 그런 문제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공허에 몸부림치고 자기파괴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이들. 그들은 단지 그들만의 잘못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상극적 세상에서 숨쉴 곳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얼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상생적 윤리의 확산이 단지 시험치고 나서 잊어버리는 도덕 교과서 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과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물줄기가 될 것이다.

  이젠 봄이다. 나는 기지개를 치고 또 가름 봄을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봄기운이 어었던 시냇물을 녹여 흐르게 하듯 우리 도인들의 마음이 모여 온갖 상극적 고리와 굴레들을 녹여 온누리 사람들의 마음을 흐르게 해야겠다.

  며칠전 강의 시간에 불란서 시인 보들레르의 「상응교감」이라는 詩의이념이 「우리는」이라는 유행가 가사와 꼭 맞는다고 하며 잠시 노래를 불렀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보는 눈빛으로 너무 충분한…노교수의 희구하는 눈빛에서 나는 相生을 생각했다 모두의 바람인. 이제 우리는, 그런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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