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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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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종통 이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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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 이해의 중요성

 

실현성에 바탕을 둔 진리의 성숙한 해석을 위해서는

종교형성과정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해야

 

 

전국대학 대진연합회 서강대4년 하 수 형

 

1. 서론
  보편성에 바탕을 둔 진리의 성숙된 해석을 위해서는 자기 종교형성과정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며 이 올바른 이해는 한 종교사상의 세계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대순사상의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상제께서 재세시에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속담에 맥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淵源을 바르게 잘하라」,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신 바에 잘 나타나듯이 대순진리에 있어 그 진리의 맥을 누가 전수했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종통에 대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어 대순진리를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종통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제언해보고자 한다.



2. 종통인식의 중요성
  종통의 문제는 신앙의 점검과제이기도 하다. 종교를 통하여 정화된 종교적 심성은 바로 일상생활과 사회의 공적인관계 속에서 사회 성원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어야 할 것이다. 교운의 올바른 인식은 바로 이러한 영향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점검하는 과제이므로 중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운은 창시자와 전승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종교형성과정이다. 여기에서, 전승자는 창시자에 의해 창시된 사상의 핵심을 후대인들이 쉽게 알고 실천할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야만한다. 창시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전승자는 창시자의 이념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종교사상을 형성하고, 실천체계를 인적, 물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宗旨를 보편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전승자의 역할으 신앙과 실천의 보편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할 수 있다.

  또한 위에서 밝힌 전승자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 전승자는 창시자 본래의 이념이 지닌 핵심을 잘 파악, 해석해 내면서도 바뀌어진 시대상황, 즉 역사가 지닌 역동성 속에서의 민중의 요구를 올바로 수렴해 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승자의 자질이 미비하여 본래의 사상에 맞지 않는 해석을 하거나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인간의 정신을 계도해 내지 못할 때 종교는 변용의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제도의 한 부분으로 그 기능이 축소된다고 보여진다. 즉 종교 본래의 기능인, 한 사회의 모든 가치를 포괄하는 궁극적 가치를 축소시키거나 상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대의 사람들이 앞선 계보를 바라보고 재평가하는 목적 내지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단지 자기 신앙에 의한 전통의 절대화는 자칫 대화와 이해의 기본전제가 없는 독선적 주장으로 배타적 태도를 발생시키기 쉽다. 교운인식의 중요성은 신앙 생활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다고 밝혔듯이 뒤따르는 이들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하는 실천영역의 학립은 교운인식의 목적이 된다. 바로 이 실천 영역의 확립을 위한 근간이 되는 사상의 수렴이라는 측면에서 교운인식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의의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대순진리를 올바로 깨닫는 것도 상제님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수도할 수 있는 실천적 진리체계를 제시해 주신 분을 알지 못하면 왜곡된 진리를 수용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3. 기존 종통인식의 문제점.
  앞으로 제시하려는 종통의 향방을 다룸에 앞서 기존에 있어왔던 교파들의 이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 보겠다. 한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많은 교파들의 대부분이 오늘날 원만하고 착실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성숙되어진 종교적 체게와 형태를 형성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된 가장 큰 원인은 그릇된 교운인식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릇된 교운인식은 상제님의 遺志를 잘못 해석해 낸 데서 기인한 것이다.

  전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제님의 공사는 독창적인 것이다. 기존에 있어왔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상제님 화천후 자신이 종통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상제님을 유교식, 불교식, 도교식, 기독교식, 민간신앙식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였으므로 상제님에 대한 칭호만도 53가지에 이른다. 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아닌, 기존의 것을 빌어 새것을 전적으로 조명해 내려는 사고의 오류에 빠졌던 것이다. 더구나 상제님을 각종 신통력과 치병력, 사회현세적 목적성취, 이익에 관계된 복을 주는 신비한 힘의 근원으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이런식으로 그릇되어진 상제관을 자신을 신봉케 하려는 근거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채택된 것은 자신의 神應에 의한 능력행사와 정감비결, 풍수설, 정역팔쾌 등을 연결한 교설이나 상제님과의 인맥을 이용한 법맥과 인맥을 뒤섞은 논리, 그리고 지명, 인명에 대한 무절제한 해석등이다.

  단적으로 그들은 상제님 공사를 그 상징적 구조까지 파기하면서 자신들의 교운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확대 해석하고 있었다. 상제님 재세시의 종도들은 나름대로 각각 공사에 일정한 비중을 갖고 참여했다. 상제님 공사의 상징적 구조는, A의 기운을 빌었으면-A라는 표현을 빌면-A에게서 결과가 나타나는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그 구조가 파기되어 그 A자신이 이후에 신성화되고 계승자로 정당화되었다. 교운도 공사의 상징적 구조가 그대로 적용되어진 주장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릇된 상제관, 공사관은 건실하지 않은 허황된 삶의 변화를 꿈꾸게 하는 신앙태도를 야기했으며 이는 결국 相生倫理의 실천으로써 우주의 질서를 바로 잡는 人尊의 의미를 망각한채 말세신앙으로, 혹세무민하는 신앙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류(類)의 교운 해석은 상제님 화천후 당시뿐아니라 지금까지도 경계해야할 태도로 종교적 상징의 의미전도의 문제를 다시 한번 고찰하게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은, 철저하게 기본종지에 입각하여 종통을 파악하고 이것을 통하여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4. 종통의 올바른 인식
  대순진리에 있어 교운의 특이성은 그것이 이미 상제님의 사상, 공사에 포함 되어 있었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불・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닦은 바에 따라 道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하심에서 알수 있듯 대순진리에 있어서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대순진리의 목적의 큰 부분으로 인간완성의 실현인 도통의 성취가 상제님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통줄과 대두목의 의미는 매우 강조된다. 속담에『맥떨어지면 죽는다하나니 연원을 바르게 잘하라』고 하신 것에는 이 도통줄과 대두목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너희들은 손에 살릴 生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 지느니라.」고 하셨다.

  이상에서 볼 때 다른 종교의 주창자들과는 달리, 상제님께서는 종통의 중요성을 이미 재세시에 말씀하셨음을 알수 있다.

  기성종교에서 볼 때. 유교에 있어서는 정통성이 정치 사회적 변화로 인한 보수와 진보의 대립 갈등 속에서 본래의 공자이념을 해석해 내는 과정을 통해 후대에 의해 주장되어지고 세워지고 정리되는 과정이었으며, 불교 선종에 있어서는 스승에 의해 전해지던 의발의 전수가 6대에서 그친 것으로 볼 때. 자신의 성품을 보는 깨달음을 우선으로 하는 돈오사상이 그 순수한 계통을 유지하기에는 지역과 계층 등 인세의 각종 대립되는 현실적 양상을 수용하는 데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경우도 본래 정통이 규정되어 전수되었다기보다는 후대인들의 각기 자신을 위주로 하는 이단논쟁에서 그 정통성이 주장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기성종교에 있어서의 정통성의 성격은 역사적 변용을 허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대순진리의 종통은 기존의 法統, 道統의 개념, 비중과는 사뭇 다른, 역사적 변용을 거부하는 특성-다시 말하여 함부로 누가 바꿀 수 없는-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公事와 大巡하신 遺志를 어떻게 받들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도주님께서는 1925년 무극도창도와 더불어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확립하고 종지, 신조, 목적을 정하셨다. 그보다 앞서 1923년에는 전교를 내리셨다. 인류의 역사를 황제 헌원씨로부터 잡아 元의 시간 개념으로 설명, 1923년을 利在新元 계해년이라 하셨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뜻을 받아 펴는 道가 元을 새롭게 하는 道라는 인식을 표명하신 것이며 이후 창도를 하여 종단의 체계화를 이루심으로써 상제님의 遺志를 法으로써 구체화 시켜 나가게 된다.

  전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지난 元의 시간대에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각 문화의 바탕이 된 종교사상의 발생과 쇠퇴이다. 이로부터 무극도라는 새로운 道의 탄생이 元을 새롭게 하는 의미가 되는 것은 대순진리가, 종교・문화의 통일이라는 새로운 과제와 특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쟁투하나니라」등의 상제님 공사에 내재된 원시반본, 통일사상에 대한 명료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도주님께서 세우신 종지(宗旨)는 우주의 음양기운 조정, 신과 인간의 해원과 조화, 전우주적 포원의 해원, 그럼으로써 우주와 인간을 완성 시킨다는 天地公事의 내용으로 집약되어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공사가 완성된 전 우주적 삶을 가능케 하는 상제님의 유지를 받아 인간이 참여하여 능히 해 내야 할 바를 신조와 훈회, 수칙으로 제시해 주신 것으로 믿어진다.

  신조와 훈회, 수칙은 완성된 삶을 위한 인간의 노력, 실천의 강령인 해원상생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는 인간을 「현재의 모순된 상태」에서 「원래 있어야 할 상태」로 환원시켜 질서를 바로잡게하여 새로 지어지는 천지와 부합되도록 하는 가장 근본되는 도리를 밝혀 놓은 것이다.

  이중 실천의 자세로 가장 구체화된 규범이 수칙이라할 수 있다.

  수칙은 훈회에서의 「남」이라는 객체들마다에 따라 도리가 정해지고 있으며 이로부터 다시 「나의 마음」에 대한 규범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 수칙은 종지 실현을 위하여 구체적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여야 할 도리인바 새로운 우주질서에 상응하는 인간의 질서인 것이다.



5. 결론
  이상 서론에서 제기하였던, 상제님 사상의 세계적 보편화에 장애가 되는 기존의 종통인식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종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문제를 대순진리의 특이성에 비추어 도주님에 의한 종통의 정립을 통하여 고찰해 보았다.

  종통의 인식에 있어 바람직한 기준은 얼마나 상제님의 사상을 올바른 수렴, 그리고 생명력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체계의 확립, 그로인한 실천의 범위와 방향의 제시에서 찾아진다고 본다. 도주님으로부터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 영도하시는 현 대순진리회에 이르러서 수도인들에게 수도는 개인적, 대사회적, 전우주적 해원의 과정으로 계속되며, 이 과정으로 도주님께서 세우신 실천윤리를 근간으로 하여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기능하게 되는바가 점점 확대된다. 구제창생의 이념은 「인존」이라는 의미 속에서 실현되어 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대순진리는 완성된 인간과 완성된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진리이다. 이 진리의 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순진리, 즉 상제께서 광구천하하신 뜻을 받아 도주께서 받아 수렴하신 취지를 명백히 아아 후천 건설에 동참하는 成事在人의 실천적 의미를 자각하여야 할 것이며 이에 진정한 종통 이해의 목적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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