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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3년(2023)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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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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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해 봅니다



중흥2-2 방면 선무 박은숙




  저는 2003년에 이혼한 후 혼자 몸으로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삶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빚에 허덕였고 몸은 망가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 동생을 통해 대순진리회를 접하게 되었고 2007년에 입도치성 후 기도를 모시며 정성을 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탓인지 온전히 마음을 열어 정성을 다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생계를 책임져야 할 저의 각박한 현실이 극복할 수 없는 큰 장애로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결국 1년 만에 기도조차 모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의 웅덩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댔습니다. 동생은 그 안에서 나오라고 끈질기게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제게 들리지 않았고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2017년 12월 27일, 동생이 집들이한다며 도와달라고 연락했습니다. 문득 며칠 머물다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포항에서 동생이 있는 전북 순창으로 향했습니다. 도시와 떨어진 동생네 집은 포덕소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임원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셔서 기도 모시고, 입도치성 모시며 수반들을 교화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집들이를 돕고 난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식만 하고 있었습니다. 교화도 안 듣고, 기도도 모시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기에 동생도 더는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혼자 친정집엘 갔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동생이 돌보던 중이었습니다. 친정집은 7년여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에 세 번, 아버지 제사와 추석과 설에 온 가족이 이 집에 모입니다. 설을 앞두고 있었기에 미리 가서 청소하며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앉았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그날 밤은 유달리 적막하고 스산하여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밤새도록 문단속을 거듭하며 뒤척였습니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신을 부정하며 눈에 보이는 현실에 연연해 살아왔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요동치는 마음의 작용에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순간 예전에 기도를 모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저 빌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날이 새자마자 동생에게 연락해서 기도 모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친정집에는 기도상이 있었습니다. 동생의 설명을 듣고 기억을 더듬으며 정갈하게 기도상 앞에 앉아 기도를 모셨습니다. 그러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청소하고 또 기도를 모셨습니다. 그날 밤 저는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룻저녁의 경험이었지만 이후로 저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쳐왔던 제 마음을 들여다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정하게 되고, 그러다가 기도를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포덕소에 자주 찾아가 정성껏 기도를 모시고, 21일간 기도 모시기에도 빠지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일하느라 가지 못할 때는 집에서 기도를 꾸준히 챙겨 모셨습니다,

  하루는 군 복무 중인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잘못을 해서 시말서를 써야 한다느니, 영창에 들어가야 한다느니 등의 얘기가 나오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눈물만 흘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 모시며 상제님을 찾는 것뿐이었습니다. 간절한 기도 끝에 많은 사람에게 상제님의 덕화를 전하는 수도인으로서 저의 사명을 깨닫게 되면서 도의 일꾼으로 거듭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습니다.
  신기하게도 두 시간쯤 지난 후에 아들의 연락을 받았는데, 징계 없이 마무리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들 일에 얼마나 마음 조이고 눈물이 났는지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기도를 모시고 또 모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신명께서 도와주시리라는 것을 확고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꾼으로 수도하려고 하니 걱정 중이던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해결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3천만 원 대출을 알아봤습니다. 당연히 단번에 거절됐습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냥 상제님 믿는 마음에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도를 모시려 노력하며 수도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대출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도 5천만 원이나. 그 덕에 작은 아파트를 얻게 됐습니다. 아이들의 거처가 마련되자 저는 다소 안심이 됐습니다.
  어느 날 큰딸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연락해왔습니다. 아들을 장례식장에 보냈습니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19년 만에 만난 아들을 아주 반겼다고 합니다. 아들이 할머니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를 잘 치렀다고도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남편과 동서들과 연락을 주고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49일째 포덕소에서 남편과 조카들이 입도치성을 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우리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신문에 날 일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지금 제가 수도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해봅니다. 마음을 열고 정성을 다해 수도하면 나의 겁액과 허물이 풀리면서 모든 일이 절로 좋아지고 이해하지 못하던 일도 해결된다는 것을요. 앞으로 어떤 겁액이 몰아쳐도 상제님께 빌고 반성하고 정성을 쏟으면 된다는 것을요.
  지금 저는 허리가 뒤틀려 잘 걷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몸으로 이런 장애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조바심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더 많은 의미를 이해해봅니다. 그래서 뭐든 드러나는 것이 좋고 또 감사합니다. 그 덕에 제가 스스로 돌아보며 생각하고 반성하고 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저는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하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정성껏 수도를 잘하고 있다고 감히 장담할 수 없고 부족함도 끝이 없지만, 상제님의 덕화를 물밀듯이 입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장애든 두려워 말고 지극한 정성을 다해 도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도록 우리 함께 일심으로 수도하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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