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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8년(1988)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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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 九天上帝님 降世의 象數學的 考察

九天上帝님 降世의 象數學的 考察

 

십년을 앞선 사람은 십년동안 욕을 얻어 먹는다.

 

 

수도부장겸 연구실장 선감 이채원

         

  밤하늘에 점점이 빛나는 성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무한한 조화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다시 한 번 더 넓은 우주 속에서의 자신을 생각케 한다.

  또한 어떻게 이 우주가 생겼을까, 하느님이 만들었을까. 그냥 그대로 존재했던 것일까.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는, 이 질서정연한 운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무궁한 조화의 원천은 ? 하는 모든 사념들이 철학도나 과학도가 아니더라도 가슴 속에 파고 들것이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운(運)과 기(氣)의 승부작용(勝負作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변화현상(變化現像)의 승부작용(勝負作用)이란 것은 다만 관념적인 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현실적(現實的)인 사물(事物)에서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한갓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실제로의 생활과 학문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변화현장(變化現狀)을 실학적(實學的)으로 연구하고 실용화(實用化)하려면 사실(事實)의 변화(變化)와 꼭 부합되는 기본법칙(基本法則)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運)과 기(氣)의 운행법칙(運行法則)이므로 이것을 탐구하기 위하여는 그 방법인 상(象)과 수(數)를 알아야 한다. 현실세계(現實世界)에 동정(動靜)하고 있는 모든 사물(事物)은 그 변화상태(變化狀態)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할지라도 기(氣)와 상(象)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장중지물(掌中之物)에 불과하며, 이것을 신비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총명과 관찰력이 미치지 못하니 환상에 헤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주의 사물(事物)들이 단순히 상(象)만을 나타낸다고 하면 상(象)의 가부(可否)판단에 있어서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상(象)은 관찰자의 위치나 시간이나 주관에 따라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조화(造化)는 이와 같은 혼란이 일어나는 폐단을 방지할 수 있는 자연수(自然數)를 상(象)과 함께 흐르게 하여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 상(象)을 고정화시키는 것이다.
  이 상(象)과 수(數)를 상수(象數)라고 하며, 상(數)는 수(象)의 의미(意味)를 밝혀주며, 또한 그의 내용(內容)을 증명(證明)해 준다.

  현재(現在)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 속에 일어나는 오운(五運)과 육기(六氣)의 변화작용(變化作用)도 이와 같이 상(象)과 수(數)에 의해서 그 내용을 관찰할 수 있고, 또 그 내용을 밝혀 줌으로써 현실적(現實的)으로 실용(實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象)과 수(數)는 상호관계를 가지면서 변화원리(變化原理)를 실현하는 방법(方法)과 수단(手段)이 되므로 그 중요성(重要性)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사물(事物)에서 상(象)을 관찰하거나, 또는 수(數)의 흐름을 알아내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세밀한 관찰력과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치밀한 판단력이 수반되는 동시에 맑고 밝은 청정(淸淨)의 마음이 아니면 불가한 것이다.

 

 


1) 상(象)과 형(形)의 개념
  상(象)이란 개념은 형(形)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형(形)이 인간(人間)의 감각에 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상(象)은 일반적(一般的)인 인간(人間), 즉 명(明)을 잃은 인간(人間)이나 또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을 관찰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식되기 어려운 무형(無形)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象)은 정말 무형(無形)인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세속적(世俗的)인 사회생활(社會生活)과 거기에서 오는 사리와 사욕에 마음이 가리워져서 심안이 어두워진 근시안적인 사람들의 이목(耳目)에만 무형(無形)일 뿐이다.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에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주재자이시며 조화주이신 구천상제님께서 모든 신성, 불, 보살들의 하소연에 따라 진멸지경에 빠진 이 세상을 건지시려고 전라도 우덕면 객망리에 강세하셔서 해원상생(解相生)의 법리(法理)로 무궁한 복과 낙이 있는 후천선경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지만 평소에 밝은 예지를 가지고 이 세상을 보아온 사람들과 우주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강세(降世)하심임을 알고 믿게 되며 또한 현재(現在)는 잘 모르지만 전생(前生)에 삼생(三生)의 인연에 따라 도문(道門)을 두드린 사람도 깨닫게 되지만, 일반 세속(世俗)에서 동물적인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과 자존(自尊)과 자만(自慢)과 아집(我執)에 쌓인 인간(人間)들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왜 이 세상이 진멸지경에 빠지게 되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구천상제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육신을 빌어서 강세(降世)하심을 알리도 없거니와 얽매인 테두리 속에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象)과 형(形)이란 것은 현실적(現實的)으로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나 그 본질(本質)은 일본체(一本體)의 양면성(兩面性)에 불과한 것이다. 즉 형(形)과 상(象)은 한 개의 근본에서 출현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형(形)은 볼 수 있지만 상(象)은 관찰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비록 무형(無形)의 상(象)이라고 할지라도 바로 형(形) 이전(以前)의 상태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모든 형(形)은 형(形)이 나타나기 직전 또는 그 이전에 반드시 어떤 징조(기미)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나타난 형(形)에서 거슬러 올라가서 상(象)을 찾으려 하지 않으므로 어떤 징조가 나타날 때 그 이후에 나타날 형(形)에 대해서 몽매하게 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인간(人間)이 분노할 때는 반드시 그 분노의 주체인 간기(肝氣)(木氣)가 발생하고 있는 상(象)이 오행(五行)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원리(原理)대로 안면에 나타난다. 사람이 내심(內心)으로 그의 노기(怒氣)를 감추려고 아무리 노력(努力)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상(象)이 얼굴에 나타나게 된다.(일부 완전의 경지에 든 사람을 제외하고) 이 때에 일반 사람들은 감출려고 애쓰는 이면에 나타나는 상(象)을 보지 못할지 모르지만 총명한 사람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形)의 내면(內面)에는 항상 상(象)의 징조(기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밝고 맑아서 중(中)의 위치에서 관찰될 때에 그 상(象)은 완전한 형태를 드러내게 되지만 편중된 생각을 가지고 관찰하는 관찰자의 눈에는 편중된 각도만큼 왜곡된 형태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 수(數)의 개념
  수(數)라는 것은 일반적(一般的) 의미에서 보면 만물의 질(質)과 양(量)을 계산하며 측정(測定)하는 수단과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哲學的)으로 고찰(考察)해 보면 수(數)는 사물(事物)의 개개가 나타내는 징조이며, 또한 유(有)와 무(無)가 서로 교환하면서 변화(變化)하는 상(象)이고, 단(單)과 다(多)의 운동현상(運動現像)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주간에서 변화(變化)하는 사물(事物)의 상(象)을 살펴보면 그의 변화원리(變化原理)가 하도 미묘하고 신기 막측하여 그 유서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상세히 고찰하면 그 속에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象의 기미가 반드시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미가 바로 수(數)의 본원(本源) 즉 수(數)의 창조점(創造點)인 것이다.
  진실(眞實)로 우주 변화의 주체(主體)인 유(有)와 무(無)(陰과陽)의 분합(分合)이나 단(單)과 다(多)의 투쟁은 수(數)의 본원(本源)인 그 기미(象)에서 일어나는 조화(造化)이다.

  그러므로 우주간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사물(事物)의 변화(變化)하는 상(象)을 살펴보면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形(有)과 象(無)의 분합(分合) 아닌 것이 없고, 단(單)과 다(多)의 투쟁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象(無)이 한번 형화(形化)하여서 현상계(現象界)에 현실적(現實的)인 존재(存在)로서 등장(登場)하게 되면 象(無)은 이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무지한 인간들로부터 한 개의 관념적 미신, 혹은 공상적 대상으로 몰리게 된다. 그들은 有(形)만이 실존(實存)하는 것 인줄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문명의 이기인 기계적 장비로 측정되고 증명되는 현상을 과학적이다 하고 분명히 현상(現狀)은 나타나는데 현대의 장비로 측정이 불가할 경우에는 신기하다, 신비하다 라고 하며 분명히 존재가 인정은 되면서 현상을 나타내지 않을 때는 미신으로 몰아 붙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우주 공간에 있는 현상(現像)의 5%정도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95%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착각 현상(現像)은 상제(上帝)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즉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강세하시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신다고 종이에 글을 쓰셔서 태우시고, 제물을 차려 고사 비슷한 의식을 하신 것이 라든지, 말씀으로 신명을 부르시고, 구름을 모이게도, 흩어지게도 하시며 일월 멈추게 하시고, 뇌성과 벽력을 부르시고 개벽공사를 행하신 모든 행위가 앞으로 이 세상(世上)에 나타나게 될 실재(實在)의 형(形)을 위한 공사이시며, 그러한 행위에서 일어나는 사실적(事實的) 현상(現像)들이 앞으로 후천(後天)이 온다는 것을 하나의 상징적인 상(象)을 보이고 있지만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는 한갓 미신적, 주술적 요소로 그들의 눈에 비치기 때문에 단지 선각자 또는 예언자로 느껴지며 심하게는 광인으로 몰아세우기 까지 하는 것이다.

  또한 상제(上帝)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 자체를 일반 종교에서도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 것과 같은 공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제(上帝)께서도 “지난날 거짓으로 행세할 때는 나를 신인(神人)이라 하더니 정말로 행하는 지금은 나를 광인이라고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고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어찌 알리요” 하신다.

  옛 속담에 “십년을 앞선 사람은 십년 동안 욕을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3) 상제(上帝)님의 강세(降世)와 9월 19일의 수리적(數理的) 의미
  상제(上帝)께서 신미년(辛味年) 9월 19일에 인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신형(身形)을 나타내셨다. 하늘의 움직임이 함부로 하지 않고 철저한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면 상제(上帝)님의 강세(降世) 역시 천지자연을 창조하신 분이시니 더욱 더 철저히 지킬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의 강세일(降世日)을 상수(象數)의 개념으로 파악해 봄으로써 보다 확실히 상제님의 강세임을 믿을 수 있고 또한 강세하심에 따르는 모든 우주운동의 법칙을 형(形)과 상(象)의 의미를 구체화시킬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보다 가까이서 파악됨으로 인해 도(道)의 길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상(象)이란 것은 물(物)이 자체의 내용(內容)을 낌새로써 표현(表現)하는 것이요, 수(數)라는 것은 상(象)의 내용(內容)을 표현(表現)하여 증명(證明)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數)는 상(象)의 거울이므로 상(象)이 비록 우리의 감각(感覺)에 잘 영사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상(象)의 근저(近抵)에서 흐르는 수(數)로 인하여 능히 그 상(象)을 포착(捕捉)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연수(自然數)의 수열(數列)은 1,2,3,4,5,6,7,8,9,10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구성이 아니고, 자연질서(自然秩序) 자체(自體)의 표현(表現)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거짓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자연수(自然數)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움직이는 그대로 성립(成立)된 것이므로 자연(自然)의 분합(分合)과 동정(動靜)하는 상(象)이 수(數)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비록 상제님께서 강세하셨던 당시에 태어나지 못하여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는 없었다 할지라도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현신(現身)하신 상(象)이 수(數)라는 거울 속에 선명히 비치므로 상제님의 강세하신 날의 상수적(象數的) 원리(原理)를 파악함으로써 수(數)의 거울 속에 비치는 상제(上帝)님의 강세하심을 간접적으로 나마 볼 수가 있으며 강세하신 목적 역시 짐작이나마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수(數)의 변화(變化)란 말은 물상(物象)의 변화라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물상(物象)이 변화(變化)하면 수(數)는 다라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물(物)이 변화(變化)하는 과정에서 엿 볼 수 있다.
  만물(萬物)이 생장(生長)하는 봄(春)과 여름(夏)에는 물(物)이 역향(逆向)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수(數)도 逆數하면서 자라고, 만물(萬物)이 수장(收贓)하는 가을(秋)과 겨울(冬)에는 물(物)이 순행(順行)하기 때문에 수(數)도 순행(順行)하면서 여물게 된다. 그러므로 상수학(象數學)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수(數)의 역행(逆順)이라고 한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만물(萬物)이 생장(生長)한다는 것은 속에 있는 양(陽)이 표면(表面)에 있는 음형(陰形)을 확장(擴張)하면서 자라는 것이다. 즉 물(物)이 확장(擴張)하면서 자란다는 것은 서로 투쟁 상태에서 생장(生長)하는 것이므로 물(物)의 역행(逆向)이라고 한다. 이것을 수(數)의 발전(發展) 상태(狀態)에서 보면 만물(萬物)의 발전(生長)이 바로 수(數)의 발전, 즉 1,2,3,4,5,6,7,8,9가 역향(逆向)(늘어 나가는 것, 즉 1본체에서 멀어지는 것)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반면에 물(物)이 순향(順向)한다는 것은 물(物)이 생장과정(生長過程)에 있어서처럼 투쟁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양(陽)의 수축작용(收縮作用)에 순응(順應)하면서 여물기 때문에 이것을 물(物)의 순행(順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數)도 역시 이 과정에서 만물(萬物)이 순행(順行)하는 모습에 따라 9,8,7,6,5,4,3,2,1의 순(順)으로 압축되는데, 이것을 순수(順數)라고 한다.
  그런즉 수(數)는 만물이 생장(生長), 수축(收縮)하는 상(象) 그대로 변화(變化)하는 것이므로 수(數)의 운동상태(運動狀態)를 파악하면 만물(萬物)의 변화상태(變化狀態)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이성적(理性的)으로 인식한 변화이론(變化理論)을 증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변화상태(變化狀態)에서 중요한 것은 수(數)가 중(中)에서 이루어지며, 또는 중(中)을 얻음으로써 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中이란 어떤 것인가?

  중(中)이란 토(土)이며, 오토(五土)와 십토(十土)를 말한다. 이 중(中)은 천하지중(天下之中)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萬物)을 생(生)하는 중(中)과 만물(萬物)을 통일(統一)하는 중이 바로 천하지중(天下之中)인 것이다.
  오토(五土)는 물(物)을 생하는 중(中)이며 십토(十土)는 물(物)을 통일(統一)하는 중(中)이다. 그러므로 오토(五土)를 一의 원시점(原始點)인 중(中)이라 하고, 십토(十土)를 다(多)의 요종점(要終點)인 중(中)이라고 하는 것이니, 역(易)에서는 이것을 원시요종(原始要(反)終)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변화작용(變化作用)에 있어서 오(五)를 중(中)으로 하는 1 2 3 4 (5) 6 7 8 9의 수상(數象)은 변화(變化)의 생장면(生長面)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여기에 있는 바의 성수(成數)는 생장과정(生長過程)에서 형(形)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이다. 그러나 1 2 3 4 5 6 7 8 9 (10)11 12 13 14 15 16 17 18 19의 중(中)인10을 중으로 하는 것은 수상변화(數象變化)의 수장(收贓)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여기에 있는 十이상의 수(數)는 수장과정(收贓過程)에 있어서 형(形)과 기(氣)를 통일(統一)하려는 존재(存在)인 것이다. 

  그런즉 우주의 변화(變化)는 이 두개의 중(中) 즉 생장(生長)의 오토(五土) 중(中)과 통일(統一)의 십토(십十土) 중(中)에서 어느 하나가 결여(缺如)되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토(五土)와 십토(十土)를 천하지중(天下之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다음 도표를 보기로 하자.

 

 


  앞에 그린 두개의 도표는 中數의 生成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약도(略圖)를 그려 놓은 것이다.

  80수 생성도(生成圖)라는 것은 오(五)를 중수(中數)로한 경우에 수(數)가 과연 생성변화(生成變化)를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그려 놓은 약도이고, 실제로 이러한 그림은 성립(成立)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統一)의 기본수(基本數)인 십(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자연수(自然數)의 수열(數列)에 있어서 1, 2, 3, 4, 5는 생수(生數)요 6, 7, 8, 9는 성수(成數)인즉 여기에는 생성수(生成數)가 구비 되어 있으므로 이것으로써 생성(生成)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쉽기 때문에 그 오해를 밝히려는데 목적이 있다.
  즉 오토(五土)는 생장(生長)을 조절하기 위한 중수(中數)인데 이 그림이 오토(五土)를 중(中)으로 하고 있으므로 혹 생장(生長)을 하는 상(象)으로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일(統一)의 십수(十數)가 없은 즉 이것으로써는 만물(萬物)을 결실(結實)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변화도(變化圖)로 가상하고 살펴보면 동남방(東南方)의 구(九)까지 만물(萬物)의 생장(生長) 과정이며 그것은 45수(數)이고 서북방(西北方)의 8에서 2까지는 수장(收藏) 과정이며 이것은 35수(數)이므로 합하면 80수(數)이다. 그런데 우주의 변화(變化) 운동(運動)은 그 일주기(一週期)가 360도(度)인 즉 이와 같이 80도(度)밖에 안 되는 그림을 가지고 우주의 운행도(運行圖)라고 할 수는 없다. 이 그림에는 성숙의 기본인 십토(十土)의 작용이 없으므로 이러한 결과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360도(度) 생성도(生成圖)에서 고찰(考察)해 보면 여기에는 우주 변화(變化)의 상(象)이 유감없이 담겨있다. 동북방(東北方)에 있는 일(一)에서부터 구(九)까지의 45수(數)는 우주발전의 기본(基本)인 동시에 여기에는 생장(生長)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실제로 생장작용(生長作用)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一)에서부터 구(九)까지의 수(數)는 수(數)의 작용(作用)을 하는 기본수(基本數)인 것뿐이다. (모든 수(數)가 수천만을 헤아린다 하더라도 모두 이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본수(基本數)라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변화작용(變化作用)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인즉 십(十)의 통일수(統一數)가 없이는 자화작용(自化作用)과 대화작용(對化作用)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변화(變化)를 계속하는 금(金), 수(水)는 십(十)이 통일(統一)의 기본(基本)을 만든 후에라야 이루어지고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라야 자기생성(自己生成)을 하면서 자화작용(自化作用)과 대화작용(對化作用)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1에서부터 9까지 사이에는 십토(十土)라는 통일(統一)의 중(中)이 없으므로 이것은 다만 생성(生成)의 뜻을 머금고는 있지만 생성(生成)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형이상(形而上)적인 작용(作用)은 할 수 있어도 형화작용(形化作用)(형을 나타내는 작용)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이 과정에서는 지하(地下)에서 새로운 싹을 내기위한 기화작용(氣化作用)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東方)에서 남방(南方)에 이르게 되면 형(形)이 발전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십(十)에서부터 구십(十九)까지 그 사이에 일어나는 145수(數) 작용(作用)이다. (十에서 十九까지 더하면 145수가 된다.) 그런데 십일(十一)에서부터 형화작용(形化作用)이 생기는 것은 십(十)이라는 통일(統一)의 기본수(基本數)가 작용(作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부터 자화작용(自化作用)이 생기므로 형(形)은 분열하면서 통일(統一)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數)가 구십위(十九位)까지 이르면 일(一)에서부터 십구위(十九位)까지 190인즉 만물(萬物)은 여기에 와서 최대 분열을 하고 수장(收藏)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동시에 수(數)의 역수(逆數作用)도 여기에서 끝나고 순수(順數)의 길로 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수(數) 다음에는 18 17 16 15 14 13 12 11 10의 순서로 순행(順行)의 수(數)는 남방(南方)에서부터 서방(西方)까지 오게 되면 십토(十土)가 작용(作用)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형(形)을 성열(成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西方)의 구(九)에서부터 북방(北方)의 일(一)까지 수축(數縮)하면 그 동안 수(數)는 45수(數)로서 일(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190가지 분산(分散)되었다가 다시 출발점인 일(一)로 돌아 왔다가 하는 작용(作用)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과정인 18에서부터 1까지는 126+45=171이며 생성과정에서 수(數) 190을 합(合)하면 190+171=361이 된다. 그렇다면 우주 변화의 일주기수(一週期數)는 360인데 왜 이것은 361이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1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수장과정(收藏過程)은 18에서부터 1까지로 돌아오는 것이니 1이 환원된 그곳에는 통일체(統一體)로서의 일(一)이 이미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환원된 1은 거기에 이미 있던 통일체(統一體)의 1에 합일(合一)되어 버리므로 수장과정(收藏過程) 의 171수(數)는 170수(數)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361이 아니라 360도의 일주기(一週期)가 성립(成立)되는 것이며 여기에서 모든 수(數)는 오토(五土)와 십토(十土)를 중(中)으로 하고 이루어지며, 또한 기본수열(基本數列)은 구(九)에서 끝나지만 사물(事物)의 변화수(變化數)는 십구(十九)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표리(表裏)관계에 있는 수(數)와 상(象)도 여기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상제(上帝)께서 왜 9월 19일에 강세(降世)하셨으며 어머니 태중(胎中)에서 13개월만에 강세하셨으며 “내가 장차 열석자의 몸으로 오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수상(數象)의 원리(原理)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상제(上帝)님께서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조화자이시므로 우주의 모든 법리가 상제(上帝)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제(上帝)님의 강세(降世)와 말씀 속에 우주의 모든 법리를 품고 계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우주의 변화(變化)는 상제님의 뜻에 따라 법리가 정해지며 이 법리에 따라서 먼저 정(精)이 생기고 정(精)에서 기(氣)가 생기게 되며 기(氣)가 움직이면 운(運)이 생기면서 신(神)이 나타나게 되며 이 신작용(神作用)이 상(象)을 나타내어 어떠한 징조가 생기고 마지막으로 형화작용(形化作用)이 일어나 현실적(現實的)으로 이 세상에 물(物)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상제님의 강세(降世)하심과 천지공사(天地公事) 역시 앞으로 나타날 후천의 모든 형(形)을 상(象)으로 표현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의 변화(變化)는 십토(十土)로서 통일(統一)의 기본(基本)을 삼고 오토(五土)로서 생장(生長)의 기본(基本)을 이루면서 변화(變化)하는 중(中)이라는 원리(原理)를 파악해 보았다.
  먼저 9월에 강세(降世)하심에 9라는 것은 자연수(自然數)의 최고의 수(數)이다. 또한 9는 중수(中數)인 수(數)이다. 또한 9는 중수(中數)인 오토(五土)로 합하면 9=5+4라는 수식(數式)이 성립(成立)한다. 즉 그 형상(形象)은 사금(四金)은 음금(陰金)이며 오토(五土)는 생장(生長)의 기본(基本)을 이루는 토(土)이므로 여기에서 음기(陰氣)가 생장(生長)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상(象)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십구일(十九日)은 역시 통일(統一)의 기(氣)를 가진 십토(十土)로서 합(合)하면 19=10+9라는 수식(數式)이 성립(成立)되므로 십토(十土)와 구금(九金)의 상(象)이 된다. 즉 19는 360도(度) 생성도(生成圖)에서 보면 변화수(變化數)의 최고수가 된다. 음금(陰金)이 결실을 이루는 점(點)이 되며 여기에 통일(統一)의 기본(基本)인 십토(十土)가 작용(作用)하고 있으므로 통일(統一)과 결실(結實)의 과정으로 가는 상(象)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다시 표현하면 “(1) 9, 19 = (2) 5, 10 + (3) 4, 9”
  (1) 에서 자연수(自然數)의 최고와 변화수(變化數)의 최고수를 가지고 계신다.
  (2) 에서 생장(生長)의 중(中)인 오토(五土)와 통일(統一)의 중(中)인 십토(十土)를 다 포함하고 계신다.
  (3) 에서 사(四)의 음금(陰金)과 9의 양금(陽金)이 배합하여 음양금(陰陽金)으로서 아무런 방해받음 없이 우주의 통일(統一)과 완성(完成)을 이루는 상(象)을 나타내고 계신다.
  즉 상제(上帝)님의 강세(降世)는 선천하도(先天河圖)의 생장(生長)을 거쳐 낙서(洛書)의 성장(成長)을 이루고 결실기에 이르러 우주의 모든 만물(萬物)을 완전히 결실시키시고 통일(統一)하시기 위해 강세(降世)하심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人間)의 완성(完成)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萬物)의 통일(統一)과 결실(結實)인 것이다. 이 완성된 우주를 후천(後天)이라고 부르셨다.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서는 인간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 “…선천의 도수를 뜯어 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 하셨다. 즉 선천의 분열과 대립의 세상을 후천의 통일과 화합의 세상을 만드시는 상(象)을 선명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13개월 만에 강세하셨고 앞으로 열석자 몸으로 오리라 하신 13에 대한 수리적(數理的) 의미를 살펴보자. 13을 중수(中數)로 제(除)하면 다음과 같은 수식(數式)이 성립(成立)된다. “13 = 5 + 8, 13 = 10 + 3” 13은 또한 일년 12달의 만도수를 제(除)하면 1이라는 태극수(太極數)가 된다. 즉 묵은 세상이 지나가고 새로움의 장(場)을 열어가는 새 세상을 이루는 상(象)이 되는 것이다.

  이 새 세상의 장(場)은 38, 木에서 받게 되고 또한 생장의 중(中)인 五土와 통일(統一)의 중(中)인 십토(十土)에서 받아 중앙(中央) 오십토(五十土)로서 완성시킨다는 수상(數象)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제(上帝)님의 강세(降世)에서 상제(上帝)님 한분으로써 모든 일을 종결시키는 것이 아니고 상제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 지느니라”하셨으니 상제(上帝)님 한 분으로서가 아닌 음양이 합덕되고 삼위가 일체를 이루는 象을 앞의 수상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즉, 사(四), 구금(九金)의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강세(降世)하심과 13자 몸으로 오리라 하신 곳에서 삼팔목(三八木)으로 이어지고 오십토(五十土)로 종결지으시는 분이 나오심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全羅道)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미륵전의 미륵금상도 역시 처음 조성할 당시에 금불(金佛)로 세웠고 임진란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완전 소실된 것을 다시 조성하면서 목불(木佛)로 세웠으며 이 목불(木佛)이 1934년도에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된 후에 다시 조성된 것이 현재 있는 토불(土佛)인 것이다. 이 미륵금상도 금불신(金佛身)에서 목불(木佛)로 또한 토불(土佛)로 삼천(三遷)하고 있는 것이다.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금불(金佛)의 종통을 받으실 목불(木佛)은 어떠한 분이신가? 주역(周易)에 정(井)은 혁(革)으로 받고 혁(革)은 정(鼎)으로 받으며 정(鼎)은 진(震)으로 동(東)이 된다.

  즉 목불(木佛)의 본원(本源)은 정(鼎)에 있게 되며 금산사 미륵금불 역시 정(鼎)위에 조성되어 있다. 鼎은 청림도사(靑林道師)로서 도주(道主)님께서 조정산(趙鼎山)이란 호로서 이 세상을 건지실 두번째의 계승자로써 나오심을 말한다.
  도주(道主)님께서 봉천(奉天)에서 신교(神敎)로 종통을 받으셔서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 하시면서 상제(上帝)님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모든 법(法)을 짜셨다. 즉 구천(九天上帝)께서도 양산도(兩山道)라고 말씀하시고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증산(甑山), 도주(道主)님의 정산(鼎山)을 비유하셨다.

  또한 오십토(五十土)로써 완성의 기(氣)를 가지고 새로움을 창조시키는 것은 상제(上帝)님의 말씀대로 원형이정봉천지도수약국(元亨利貞奉天地道術葯局) 재전주동곡생사판단(在全州銅谷生死辦斷)이라고 하셨듯이 약간이나마 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곡(銅谷)은 중심(中心)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의 360度 생성도(生成圖)를 보면 새로운 세상의 전개도 1에서 시작하여 9까지 기화작용(氣化作用)이 일어나고 10에서 토(土)의 統一의 氣를 받아 11에서부터 본격적인 형화작용(形化作用)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구상을 하시고 도주(道主)님께서 구상에 따른 법(法)을 짜시기 까지가 기(氣)의 형성(形成)과정이라고 보면 실제적인 형화작용(形化作用)은 11에서부터 일어나야 하므로 11월에이 세상에 오셔야 하며 또한 완성시키시기 위한 11월의 만도수를 채우는 30일이에 나오셔야 하는 이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완성되는 도(道)를 포괄하시는 분이 도전(都典)님 이시다.

  다시 말하면 상제(上帝)님께서 이미 이 세상에 강세(降世)하실 때 상제(上帝)님, 도주(道主)님, 도전(都典)님께 이어지는 종통계승(完統繼承)의 맥을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삼위가 일체를 이루고 일체가 삼위(三位)를 이루면서 삼천(三遷)하는 이 우주를 완성(完成), 결실(結實)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수상(數象)이야말로 분열된 선천의 모든 도수를 통일(統一)시키고 만물(萬物), 만상(萬象)을 결실(結實)시켜 후천(後天) 오만년(五萬年) 청화지세(淸化之世)를 이루어나가는 절대적인 진리가 나타나는 수리(數理)이며 현상(現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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