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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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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속의 인물을 찾아 : 청국명부 김일부

청국명부 김일부

 

정역(正易)으로 후천주장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올리고 공경하기도

              

<연구실>


  19세기말 한국사회는 양반 지배체제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을 드러낸 시기였다. 정치기강의 문란에 따른 탐관오리의 학정과 세금수탈 그러기에 일본의 경제적 침투로 가중되는 고통속에서 농민들은 더욱 헐벗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민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한 사회 상황속에서 그 교세를 더욱 확대시킨 것이 바로 동학(東學)이었다. 동학은 광범위한 대중신앙으로 발전하여 당시의 민중에게 큰 영항을 주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속에서 김일부(金一夫: 1826 ~ 1898)는 독특하고 심오한 사상체계를 제시하였다. 특히 그의 사상은 60세때 정역(正易, 1885년)으로 체계화되어 나타났다. 그러면 평등 ∙ 사랑 ∙ 조화를 염원하고 이상향인 유리세계(琉璃世界)가 온다고 주장한 김일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일부는 1826년, 충남 황산군 모곡면 담곡리(黃山郡 茅谷面 淡谷里) [現. 논산군 양촌면 남산리(論山郡 陽村面 南山里)]에서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13대손으로 태어났다. 이름(名)은 항(恒) 자(字)는 도심(道心), 호(號)는 일부(一夫)이다. 부친은 이름(名)이 인노(麟魯), 자(字)는 원영(元靈)이고 모친은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그는 용모가 남달리 비범하였고 키가 장대했다. 특히 그는 상체가 커서 두팔이 무릎아래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의 가계(家系)는 당시 몰락한 잔반(殘班) 계층이었던 것 같다. 

  그의 유년시절이나 청년기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있지 않으나 당시 풍조로 보아 36세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주로 문장(文章)과 예법(禮法)에 대한 공부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이웃 마을인 띠울에 낙향하여 살던 천문 ∙ 역학에 밝은 연담(蓮潭) 이수회(李守會)에게 배우면서 그의 권고에 따라 고예(古禮)와 시문(詩文)에 힘쓰지 않고 서전(書傳) 읽기에 골몰했다. 연담의 문하에는 동학의 최수운과 남학의 김광화도 한 때 수학한적이 있었다.

  어느날 연담은 최수운, 김광화, 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수운과 광화에게 『장차 선도(仙道)와 불도(佛道)가 쇠퇴해 갈 것이니 너희들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우고 깊이 언행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일부에 대해서는 『그대는 장차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천시(天時)를 받들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관담막여수(觀淡莫如水)요 호덕의행인(好德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음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빚이 천심월에서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라는 시(詩) 한수를 남기고 띠울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일부는 스승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정진을 계속하여 19년후인 54세 되던해(1879년)에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는 19년동안 서전읽기와 주역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영가(詠歌)와 무도(舞蹈)로 정신을 계발해 나갔다. 「당골」에서 「인계(仁溪)」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바위」혹은 「할미바위」라고 불리우는 바위에 올라 조석으로 영가 무도를 했다. 어떤 때는 밤새도록 이곳에서 가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용바위에서 우주의 신비와 해와 달의 변동이치를 깨달아 풍운변태중(風雲變態中)에 천지와 더불어 출입하고 일월성진(日月星辰)과 함께 그 기운속에 빨려 들어 팔풍(八風)과 하나로 운동하여 우주와 혼연일체가 되니 부지불식중(不知不識中)에 오성음(음아어이우)이 터져나와 저절로 팔과 다리가 움직였는데 그것이 밤이 새도록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이것을 보고 집안 사람들은 그를 물가에서 도깨비에 홀려 미쳤다고 하였으며 또 당시 사람들이 이상히 여겼던 옥추경(玉樞經)까지 읽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훗날 이 때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60평생에 미친 한 지아비는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을 웃는고. 능히 그 웃음을 웃고 웃으니 노래하는구나.』(六十平生 狂一夫 自笑人笑恒多笑 笑中有笑笑何笑 能笑其笑笑而歌). 천지무형지경(天地無形之景)을 꿰뚫어 그의 오장에서는 「음아어이우」로 이루어지는 영가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흥이 고조되어 감에 따라 「음 ∙ 아」의 소리가 연속 반복되고 저절로 팔과 다리가 움직여 백학(白鶴)이 공중에서 나는 듯 훨훨 춤을 추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음아생원」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공부에 열중하여 가사를 돌볼틈이 없었던 일부는 살림을 파하고 다오개에 사는 매씨(妹氏)댁의 집과 은률에 사는 고종(姑從) 최종하씨의 집으로 전전하고 부인 민씨(閔氏)는 시집간 딸의 집에 있게 되었다. 그는 논산군 부적면(夫赤面) 부황역(夫皇驛) 뒤 지금은 20여호의 농가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 「다오개」에 거처하다가 최생원의 집에서 임종했다. 그 집의 구조가 변경되어 현재 옛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없으며 새벽이면 그가 올라가 「복(福)받아 가거라」고 외쳤다는 작은 동산은 그대로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연산(連山)에서 20여리 대전(大田)쪽으로 있는 양정고개에서 바라다보면 멀리 향적산(香積山) 국사봉(國師峯)이 보인다. 그 봉우리 중턱에는 일부가 동학란을 피하여 40여명의 제자를 이끌고 6년간이나 거처했다는 「향산정사」(香山精舍)가 있다. 그 좌우에는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있어서 마치 낙서(洛書)와 하도(河圖)의 중앙, 오(五), 황극(皇極)-자리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명당자리에는 지금 그 당시 건물은 없어졌고 새로 지은 「향적산방」(香積山房)에는 일부의 정역을 연구하러 때때로 찾아드는 제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주역의 깊은 연구를 통한 상수론적(象數論的) 논리에 따른 일부의 사상은 평등과 사랑, 조화를 염원하는 존공사상(尊空思想)과 황극정신(皇極精神) 유 ∙ 불 ∙ 선 3교의 일치로 집약된다. 일부의 정역괘도는 주역의 문왕괘도와 배열을 달리함으로써 주역을 통한 유교의 전통적 사상체계를 뛰어 넘은 새로운 사상체계를 계발하였던 것이다. 그는 주역과 정역의 관계를 선후천으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던 것이다. 일부는 정역에 대해 주역을 계승 ∙ 극복한 것이며 주역은 상고의 복희역을 계승 ∙ 극복한 것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복희역 ∙ 주역 ∙ 정역의 사이에서 생성 ∙ 성장 ∙ 완성의 연속적 변증법적인 발전의 형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괘도로 집약되는 세계질서는 새로운 괘도의 세계질서로 전환됨으로써 선천이 후천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주역의 체계를 『음을 누르고 양을 높이는 선천의 심법지학(心法之學)이요, 정역의 체계를 『양을 고르고 음을 맞추는 후천의 성리지리(性理之理)』라 하여 대비시키고 있다. 억음존양(抑陰尊陽)을 봉건적 진통의 수직적 신분질서라고 하다면 조양율음(調陽律陰)은 근대적 이념의 수평적 평등사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정역의 선 ∙ 후천사상은 하나의 혁명사상이요, 한말의 역사적 전환기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공자를 선천의 성인으로 존중하며 천지의 유형지리(有形之理)를 통달 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일부 자신은 천지의 무형지경(無刑之景)을 통찰했다고 밝혔다. 유형(有形)한 세계속에 보편적 이치를 파악하는 공사의 하학상달(下學上達)은 분명히 초월적 영역의 체험이 중요한 종교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역은 십오 일언(十五 一言)과 십일 일언(十一 一言)의 二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10은 무극(無極)으로 하늘을 상징하고, 5는 황극(皇極)으로 땅을 상징하며, 1은 태극(太極)으로 사람을 상징한다. 무극 ∙ 태극 ∙ 황극의 합일을 주장하는 정역의 기본원리는 인간과 천지 우주의 일치라는 이상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곧 모든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의 궁극적 완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역의 정신은 미래적이고 완성적이며 이상적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정역의 상수론적(象數論的) 논리는 천문 ∙ 역학 ∙ 역사의 변화도수를 해명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모든 변화와 현상의 궁극적 중심으로써 황극(皇極), 중(中)의 강조이다. 여기에서 일부사상의 통일성 ∙ 조화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전경』(典經)에 나타난 김일부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그는 상제와 함께 옥경(玉京)에 올라가 요운전(曜雲殿)에서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꿈을 어느날 꾸었다. 그는 이꿈을 꾸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돌연히 상제의 방문을 맞게 되었다. 그는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드리고 공경하였다.(행록 2장 2절, 예시3절) 한편, 김일부는 스승 연담의 부탁을 받고 서전과 주역의 연구에 정진하였고 영가무도하는 심신의 수련을 쌓아 정역을 완성하여 후천이 다가올 것을 주장하였으나 그 뜻을 펴지 못하여 원()이 맺혔다.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상제께서 청국명부(淸國冥府)를 김일부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였다. (공사 1장 7절)

  일부는 한말(韓末)에 역사의 일대전환을 깊이 인식하였고 세계질서의 실현을 위한 논리와 이념을 독자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한국사상사, 종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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