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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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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사람을 고쳐쓰시는 상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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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고쳐쓰시는 상제님

 

인간이 고쳐짐으로써 바로 인존시대가 열림

 

        

양 종 심 <외대 러시아어과 3년>

         

  누군가 내게 道가 어떤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때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 이 순간에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道는 엄숙한 것이고, 재미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짧은 道의 경력으로도 大巡의 道는 너무나 크고 어마어마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내부 깊숙히에는 무척이나 단순하고 재미있는 즐거움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누구나 道를 즐거이 생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상제님의 말씀중에서 최근 내가 지극히 매력을 느끼고 있는 『고쳐쓴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로 하겠다.

  우선 말의 뜻을 먼저 살펴보면, 고쳐 쓴다함은 『어떤 것이 못쓰게 되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그것을 수선. 보강하여 적절히 활용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고쳐씀의 객체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생활에 밀착되어있는, 망가진 부분만을 우선으로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일회성의 용도후 쓰임이 없으나 아이디어 개발을 덧붙임으로써, 다시 쓰임이 생기는 것, 즉 종이컵이나 음료수병, 깡통, 스트로우 등 폐품을 들 수 있다. 이런 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유치원 졸업전시회에 가보면 종이컵 인형, 음료수병 아저씨, 스트로우목걸이 등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창작의 세계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추상적인 개념이 들어간 구조적 틀이나 제도를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은 것은 흔히들 창업경영주의 자서전이나 위인전기, 정책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도입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첫째와 둘째의 경우는 대부분이 즐거이 고쳐쓰고자하나 세번째 추상적 개념의 고쳐씀에서는 모두들 인색하다. 물론 이것이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라고는 하지만 첫째와 둘째의 예를 빌어 아주 다른 것은 없다고 본다.

  또한 실체적 개념이 아닌 형이상학개념으로써 우리는 고쳐씀의 객체를 개인적인것과 사회적인 것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까지도 생각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는 상제님께서 하늘도, 땅도 뜯어고치시어 새롭게 쓰고자 하신 이치를 이러한 단순한 논리를 빌어 알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사람의 활동 범위는 개인적인것과 사회적인 것에 국한 되었기 때문에 고쳐씀의 범위역시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고, 상제님의 활동범위는 天・地・人 三界 즉 우주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을 고쳐 쓰실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고쳐쓸 수 있다는 것은 곧 주인됨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제께서는 인간까지도 고쳐서 인간의 활동범위를 천지에까지 미칠수 있도록 공사하셨다. 즉 인존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우리 인간에게 천지의 주역됨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공사하신 도수에 따라 노력을 하면 우리는 재창조된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설계도를 잘 읽고, 그것에 맞추어 로봇을 조립하는 공식과도 같다.

  상제께서 사람도 고쳐쓴다고 하신 이 말은 실로 경악스럽기까지 하고 또한 재미있는 말이기도하다.

  인간이 고쳐쓸 수 있었던 차원까지의 한계(물질・제도)와 상제께서 고쳐쓰신다고 말씀하신 4차원의 개념(하늘과 땅)이 동시에 인간에게서 일어난다는 말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사실이다.

  또한 상제께서 인간을 3・4차원의 주역으로 이끄시려함이 사뭇 행복 하기까지 하다. 그러면 이제 고쳐쓴다는 것과 그렇지않은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내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고쳐씀의 매력이 더한 것 같다.

  인간에게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유대를 지속하고자함의 욕구에서 오는 『문화지체현상』이 공존한다.

  문화지체현상이란 특히 현재 동양문화권에 잘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서 새로운 문물의 도입을 형태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과, 의식으로 까지의 수용에서 소비되는 시간이 언제나 많은 시간상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즉 의식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습관이나 관습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으로 보았을 때 전혀 다른 어떤것의 출현은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인간사회를 더욱 혼란시킬수 있다. 그러나 고쳐쓴다함은 모든 상황에 의식까지도 형태와 더불어 동시에 적절하게 적용시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 있는 情의 특성을 잘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본래 모든 것과의 헤어짐, 떠남, 버림등이 감정에 얽매여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에 못쓰게된 것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장점을 더불어 취해서 진보한다는 일석이조의 상황이 전개된다. 이것은 발전의 개념이다.

  이상으로 고쳐씀의 의미와 객체, 장점등을 얘기해 보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고쳐쓴다는 자세에서 생길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와 능동적인 일의 처리, 그리고 道의 즐거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하겠다.

  고쳐쓴다함은 모든 장점을 볼 수 있는 안목을 넓힌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고 모든 사물에의 시작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장점만을 본다는 것은 사고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만이 미래세계의 농동적 주체가 될 수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재창조를 의미한다. 살펴보면 내가 고쳐쓸 수 있는 것은 부지기수로 많다. 우리는 흔히 道를 닦아 나감에 있어 같이 道를 닦는 선후각은 염두에 두지않고 더 나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내게 주어진 그 사람을 고쳐 쓰지 못한다면, 행여 더 나은 사람을 만났다하더라도 결과는 같을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매일 내가 조금씩 고쳐지고 후각이, 선각이 조금씩 나아져감에 무척 행복감을 느낀다.

  거기서 오는 즐거움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을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권할 것이다.

  당신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작은 것 하나를 고쳐 써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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