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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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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큰 마음으로 수도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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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으로 수도생활에

 

법방에 따라 매사를 행해 나갈때

무자기ㆍ정신개벽이 이루어져

 

   

박 숙 희 <교무ㆍ부평4방면>

  

  「爲天下者는 不顧家事」라는 문구에 송구스럽게 도에 입도를 하고 어영부영(?) 연락소 생활을 한지가 두달 반이 지났다. 이 두달 반 동안 도의 법방에 따라 제대로 수도를 행했다기보다는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하루하루였다. 그것은 敎化 혹은 受講을 통해서 이치적으로 합당하게 와 닿는 지극히 이성적 측면의 도의 모양새만을 보고 판단한 도와 막상 연락소 생활을 통해서 도를 구체적으로 접하는 行法(法方)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도의 법방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닦여지는 그 아름다움이 많은 수도인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도의 세계가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인내하지 못해 도의 여러 가지 상황을 수용치 못해 내 마음은 튕겨지기만 했다.

  몇번이고 연락소를 뛰쳐나오는 불상사가 연출됐다. 차마하고 싶지않은 행위였지만 그런 일은 벌어졌던 것이다. 가끔씩 축시기도를 모시고 나서 잠자리에 누우면 스쳐 지나는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발랄하지 못했던 유년기의 추억, 내성적인 성격으로 생각이 많은 여고시절, 그리고 나를 싸고도는 가정의 찌들리고 음울한 색채들이 반동적으로 대학이라는 공간속에서는 극단으로 치달아 이 사회의 모순부조리에 대항해서 싸우는 투사(?)로 만들었던 기억들이었다. 그런 생각들 속에서 늘 한결같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은 「나는 왜 사는가?」「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어느때였던가 격심한 젊음의 혼란속에서 나는 우연히 YOGA(요가)라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의 그 평화를 어떻게 표한할 수 있을까!
  어릴때부터 허약했던 체질과 정서적으로 결핍이 많았던 내게 요가의 수행법은 극도의 안온함과 평화를 주었다. 특히 斷食은 영적파장을 고양시키면서 내 의식을 교란시켜왔던 많은 삶의 매듭들을 하나씩하나씩 풀어내기에 충분했다. 처음부터 나는 요가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동 혹은 미용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神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道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내 삶은 어느 순간부터 궤도수정을 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세상속에 있을지라도 상식의 범주-평범한 일상의 관념들-에서는 많이 벗어난 삶을 영위해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내가 요가를 통해 배운 것은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으로 해가 지는 그 평범한 진리에 머리 숙이며 삶을 방만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대순진리회에 입도하게 되었다. 자유스러운 생활속에서 살아온 내게 우리 도의 모습은 엉뚱하고 생경한 모습이었고 내가 도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상충되는 것이 많았다.

  도대체 맞물리지 못하는 바퀴처럼 묘한 운치를 풍기며 도가 나에게 다가왔었다. 나를 잡아끌었던 것은 아마도 선각의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가 있으니까 도를 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마치 산이 있으니까 산에 오르듯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誠, 敬, 信을 바탕으로 安心 安身 敬天 修道하는 것이었으나 내게 있어서는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힘이 들었다. “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니라」”고 하신 上帝님의 말씀에 머리 숙였지만 그러나 이미 자유로운 생활방식에 젖은 내 의식은 이 도의 법방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내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이를테면 머리속으로는 늘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으로는 진정 버리지 못하는 자존, 자만의 뾰족한 칼날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자존의 칼날은 연락소내의 수도생활에서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여지없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기를 몇번…이것의 반복은 밖으로 도망치는(?) 이유가 됐다.
  그래서 선각들은 「忍耐, 又忍耐」라고 했을 것이다. 잠시 쉰다는 명목이지만 실은 극도의 자기포기 상태였다. 지금 나는 과거의 연락소 생활을 돌아보며 생각해본다. 「문제는 그 문제가 시작된 곳에서, 그 상황속에서 돌아와서 풀어져야지 밖에서는 풀 수가 없다」그와 함께 결국 일이 터지고 보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마음속에서 시작되고 또 그 문제를 푸는 열쇠 또한 내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누군가 마음을 돌려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했던 것 같다. 나를 이 도에 연결해 이만큼 키워준 선각들의 눈물겨운 정성과 아낌없는 헌신이 자주자주 나에 의해 찌그러진 모습으로 왜곡되었지만 그로인해 이만큼 나는 컸던 것이다. 늘 인내하면서 참아준 선각탓에 나는 이글을 쓸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修道生活을 하면서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일꾼으로 큰 뜻을 품고 연락소생활을 시작하는 첫 출발점의 모습이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속에서 하루하루 도의 법방에 따라 마음과 몸을 닦아나가면서 느끼는 어려움의 정도는 누구에게나 비슷한 무게로 조여올 것이다.

  우리 도를 「無爲而化」라 했다.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도에 들어오기전에 마음에 채워져 있었던 많은 것들을 비우고 맑음으로 닦는 것이리라.

  비운다는 것 이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혀 나가는 요가의 수행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느낀다. 가라앉힌다는 것은 상황이 열악해지면 언제든지 마음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고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먼지낀 거울을 닦듯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일 것이다.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상태에서 도의 법방에 따라 하루하루 움직여 나가면 정성을 들인다면 자연스럽게 정신개벽은 되어지리라 믿는다.
  문득 도는 신명나게 닦아야 한다고 말했던 선각들의 표정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새로운 세계(후천선경)를 위해 천지인 삼계를 뜯어 고치는 천지공사의 일꾼으로서 나는 지금 가슴속이 복잡하기도 하고 혹은 확 트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쨋든 한 마음이다. 도를 제대로 닦아야 한다는…. 

  교화시간에 들었던 문구가 생각이 난다. 도는 닦되 「창창하게, 탕탕하게, 도도하게」닦으라는 말씀.

  푸른 하늘처럼 막힘이 없이 창창하게 어떤 외부의 상황에도 늘 그냥 버티고 있는 태산처럼 탕탕하게 거침없이 흘러 내리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그렇게 큰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 도를 닦으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늘 이 마음으로 수도 생활을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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