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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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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 바람직한 수도생활

바람직한 수도생활

 

훈회와 수칙은 한낱 구호로써만이 아닌 스스로 실천하는 것.

 

       

<연구위원> 장 근 환

     

  수도인들은 가끔 「나는 지금 천지공사의 일꾼으로서 과연 어떤 자세로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수도생활을 하기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등의 자문(自問)을 해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 대답의 메아리는 힘없이 우울하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일정기간 동안 포덕 등을 열심히하며 수도를 하였건만 스스로 충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이와같은 우문(愚問)을 던지며 고뇌에 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바로 수도 과정속에서 자신이 수도인으로서의 마음자세와 실천적 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실에서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후천(後天)이나 도통(道通)등과 같은 특정 관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열망이다. 선경(仙境)에 대한 수도인의 소망은 수도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진정 경계해야 되는 것은 그 세계가 수도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간과하는 태도이다. 즉 상식적인 행위를 실천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환상적인 염원만을 추구할 때에는 현재의 비도덕적 행위까지도 인정하는 오도화된 기복신앙으로 흐를 염려가 있다. 다시말해서 윤리적 행위와 수도인다운 정신자세가 결여될 때에는 오히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싹터서 진정한 수도의 의미를 왜곡 시키게된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수도에 있어서 구도적 과정을 무시하는 중대한 판단착오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항상 돌이켜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수도의 결과에만 치중하는 경향이다. 포덕을 일례로 들어보자 수도에 있어서 포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포덕이란 상제님의 진리를 천하(天下)에 널리 알리는 것이며, 우리가 이를 실현하는 과정속에서 수도인의 마음과 자세를 배우고 깨닫는데에도 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세계 즉 수심(修心)과 실천적 행위를 도외시하고 수도인이 포덕을 단지 양적 확대의 방편으로만 생각하여 경쟁적으로 행할 때는 진정한 포덕의 의미와 그 가치를 찾을 수 없기에 스스로 방황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따라서 수도인은 수도에 있어서 극단적인 결과론적 사고방식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언덕(言德)을 잘 가지고 처사(處事)를 올바르게 하는 등의 실천적 자세가 있을 때 수도의 의미를 깨달아 스스로 수도인임을 자부하게 될 것이다.

  셋째 권위주의의 팽배이다. 권위주의를 간혹 조직의 질서유지에 대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분명 이것은 엄격히 구별된다. 도(道)에서는 맡은 바 임무, 즉 직책은 존재하지만 계급적 질서의식이 존재할 수는 없다. 철저한 상하의 구별과 같은 계급의식이 수도생활에 존재한다면 수도생활이 아마도 군대와 같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겻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대순진리회에서 후각이 선각을 모시는 것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자만・자존을 버리고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알게 해 준 선각에 보은하고자 하는 뜻이며 또한 예(禮)와 덕화(德化)로써 체계를 올바르게 유지하여 바른 수도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찾을 수 없고 내면에 권위의식만 팽배하게 되면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모른다」라는 옛말처럼 과거 입도하였을 때는 겸손할려고 노력하였지만 도를 닦으면서 직책이 올라갔을 때는 겸손과는 멀어지고 오히려 겉꾸임과 권위유지에 얽매이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이런 사고관념은 간혹 후각을 선각의 소유물처럼 대하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와 같이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시대에 만일 이러한 의식에 지속적으로 사로잡힐 때에는 도인들에게 강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윗사람의 권위주의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관대한, 이율배반적인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만일 위에서 지적한 세가지 경우처럼 수도생활을 하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즉 고생스러운 생활속에서 스스로 수도생활이 아니라 남에게 이끌려가는 수도생활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수도인이라면 우선적으로 상제님이 말씀을 스스로 실천하고 생활화하는 데에서 수도의 기초를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훈회・수칙은 한낱 구호로써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자신이 수도인이라는 것을 망각하여 수도인다운 마음자세와 실천적 행위가 존재하지 않을때는 수도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져 스스로 초라한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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