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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 九天上帝님 降世의 象數學的 考察
九天上帝님 降世의 象數學的 考察
십년을 앞선 사람은 십년동안 욕을 얻어 먹는다.
수도부장겸 연구실장 선감 이채원
밤하늘에 점점이 빛나는 성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무한한 조화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다시 한 번 더 넓은 우주 속에서의 자신을 생각케 한다. 또한 어떻게 이 우주가 생겼을까, 하느님이 만들었을까. 그냥 그대로 존재했던 것일까.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는, 이 질서정연한 운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무궁한 조화의 원천은 ? 하는 모든 사념들이 철학도나 과학도가 아니더라도 가슴 속에 파고 들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변화현장(變化現狀)을 실학적(實學的)으로 연구하고 실용화(實用化)하려면 사실(事實)의 변화(變化)와 꼭 부합되는 기본법칙(基本法則)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運)과 기(氣)의 운행법칙(運行法則)이므로 이것을 탐구하기 위하여는 그 방법인 상(象)과 수(數)를 알아야 한다. 현실세계(現實世界)에 동정(動靜)하고 있는 모든 사물(事物)은 그 변화상태(變化狀態)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할지라도 기(氣)와 상(象)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장중지물(掌中之物)에 불과하며, 이것을 신비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총명과 관찰력이 미치지 못하니 환상에 헤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주의 사물(事物)들이 단순히 상(象)만을 나타낸다고 하면 상(象)의 가부(可否)판단에 있어서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상(象)은 관찰자의 위치나 시간이나 주관에 따라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조화(造化)는 이와 같은 혼란이 일어나는 폐단을 방지할 수 있는 자연수(自然數)를 상(象)과 함께 흐르게 하여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 상(象)을 고정화시키는 것이다. 현재(現在)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 속에 일어나는 오운(五運)과 육기(六氣)의 변화작용(變化作用)도 이와 같이 상(象)과 수(數)에 의해서 그 내용을 관찰할 수 있고, 또 그 내용을 밝혀 줌으로써 현실적(現實的)으로 실용(實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象)과 수(數)는 상호관계를 가지면서 변화원리(變化原理)를 실현하는 방법(方法)과 수단(手段)이 되므로 그 중요성(重要性)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사물(事物)에서 상(象)을 관찰하거나, 또는 수(數)의 흐름을 알아내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세밀한 관찰력과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치밀한 판단력이 수반되는 동시에 맑고 밝은 청정(淸淨)의 마음이 아니면 불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象)은 정말 무형(無形)인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세속적(世俗的)인 사회생활(社會生活)과 거기에서 오는 사리와 사욕에 마음이 가리워져서 심안이 어두워진 근시안적인 사람들의 이목(耳目)에만 무형(無形)일 뿐이다. 그것은 비록 무형(無形)의 상(象)이라고 할지라도 바로 형(形) 이전(以前)의 상태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모든 형(形)은 형(形)이 나타나기 직전 또는 그 이전에 반드시 어떤 징조(기미)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나타난 형(形)에서 거슬러 올라가서 상(象)을 찾으려 하지 않으므로 어떤 징조가 나타날 때 그 이후에 나타날 형(形)에 대해서 몽매하게 된다. 이와 같이 형(形)의 내면(內面)에는 항상 상(象)의 징조(기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밝고 맑아서 중(中)의 위치에서 관찰될 때에 그 상(象)은 완전한 형태를 드러내게 되지만 편중된 생각을 가지고 관찰하는 관찰자의 눈에는 편중된 각도만큼 왜곡된 형태가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哲學的)으로 고찰(考察)해 보면 수(數)는 사물(事物)의 개개가 나타내는 징조이며, 또한 유(有)와 무(無)가 서로 교환하면서 변화(變化)하는 상(象)이고, 단(單)과 다(多)의 운동현상(運動現像)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주간에서 변화(變化)하는 사물(事物)의 상(象)을 살펴보면 그의 변화원리(變化原理)가 하도 미묘하고 신기 막측하여 그 유서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상세히 고찰하면 그 속에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象의 기미가 반드시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미가 바로 수(數)의 본원(本源) 즉 수(數)의 창조점(創造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간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사물(事物)의 변화(變化)하는 상(象)을 살펴보면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形(有)과 象(無)의 분합(分合) 아닌 것이 없고, 단(單)과 다(多)의 투쟁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象(無)이 한번 형화(形化)하여서 현상계(現象界)에 현실적(現實的)인 존재(存在)로서 등장(登場)하게 되면 象(無)은 이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무지한 인간들로부터 한 개의 관념적 미신, 혹은 공상적 대상으로 몰리게 된다. 그들은 有(形)만이 실존(實存)하는 것 인줄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우주 공간에 있는 현상(現像)의 5%정도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95%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상제(上帝)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 자체를 일반 종교에서도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 것과 같은 공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제(上帝)께서도 “지난날 거짓으로 행세할 때는 나를 신인(神人)이라 하더니 정말로 행하는 지금은 나를 광인이라고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고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어찌 알리요” 하신다. 옛 속담에 “십년을 앞선 사람은 십년 동안 욕을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3) 상제(上帝)님의 강세(降世)와 9월 19일의 수리적(數理的) 의미 수(數)의 변화(變化)란 말은 물상(物象)의 변화라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물상(物象)이 변화(變化)하면 수(數)는 다라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물(物)이 변화(變化)하는 과정에서 엿 볼 수 있다. 반면에 물(物)이 순향(順向)한다는 것은 물(物)이 생장과정(生長過程)에 있어서처럼 투쟁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양(陽)의 수축작용(收縮作用)에 순응(順應)하면서 여물기 때문에 이것을 물(物)의 순행(順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數)도 역시 이 과정에서 만물(萬物)이 순행(順行)하는 모습에 따라 9,8,7,6,5,4,3,2,1의 순(順)으로 압축되는데, 이것을 순수(順數)라고 한다. 또 하나 변화상태(變化狀態)에서 중요한 것은 수(數)가 중(中)에서 이루어지며, 또는 중(中)을 얻음으로써 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中이란 어떤 것인가? 중(中)이란 토(土)이며, 오토(五土)와 십토(十土)를 말한다. 이 중(中)은 천하지중(天下之中)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萬物)을 생(生)하는 중(中)과 만물(萬物)을 통일(統一)하는 중이 바로 천하지중(天下之中)인 것이다. 그런즉 우주의 변화(變化)는 이 두개의 중(中) 즉 생장(生長)의 오토(五土) 중(中)과 통일(統一)의 십토(십十土) 중(中)에서 어느 하나가 결여(缺如)되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토(五土)와 십토(十土)를 천하지중(天下之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다음 도표를 보기로 하자.
80수 생성도(生成圖)라는 것은 오(五)를 중수(中數)로한 경우에 수(數)가 과연 생성변화(生成變化)를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그려 놓은 약도이고, 실제로 이러한 그림은 성립(成立)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統一)의 기본수(基本數)인 십(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자연수(自然數)의 수열(數列)에 있어서 1, 2, 3, 4, 5는 생수(生數)요 6, 7, 8, 9는 성수(成數)인즉 여기에는 생성수(生成數)가 구비 되어 있으므로 이것으로써 생성(生成)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쉽기 때문에 그 오해를 밝히려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360도(度) 생성도(生成圖)에서 고찰(考察)해 보면 여기에는 우주 변화(變化)의 상(象)이 유감없이 담겨있다. 동북방(東北方)에 있는 일(一)에서부터 구(九)까지의 45수(數)는 우주발전의 기본(基本)인 동시에 여기에는 생장(生長)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실제로 생장작용(生長作用)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一)에서부터 구(九)까지의 수(數)는 수(數)의 작용(作用)을 하는 기본수(基本數)인 것뿐이다. (모든 수(數)가 수천만을 헤아린다 하더라도 모두 이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본수(基本數)라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변화작용(變化作用)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인즉 십(十)의 통일수(統一數)가 없이는 자화작용(自化作用)과 대화작용(對化作用)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변화(變化)를 계속하는 금(金), 수(水)는 십(十)이 통일(統一)의 기본(基本)을 만든 후에라야 이루어지고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라야 자기생성(自己生成)을 하면서 자화작용(自化作用)과 대화작용(對化作用)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1에서부터 9까지 사이에는 십토(十土)라는 통일(統一)의 중(中)이 없으므로 이것은 다만 생성(生成)의 뜻을 머금고는 있지만 생성(生成)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형이상(形而上)적인 작용(作用)은 할 수 있어도 형화작용(形化作用)(형을 나타내는 작용)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이 과정에서는 지하(地下)에서 새로운 싹을 내기위한 기화작용(氣化作用)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東方)에서 남방(南方)에 이르게 되면 형(形)이 발전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십(十)에서부터 구십(十九)까지 그 사이에 일어나는 145수(數) 작용(作用)이다. (十에서 十九까지 더하면 145수가 된다.) 그런데 십일(十一)에서부터 형화작용(形化作用)이 생기는 것은 십(十)이라는 통일(統一)의 기본수(基本數)가 작용(作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부터 자화작용(自化作用)이 생기므로 형(形)은 분열하면서 통일(統一)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數)가 구십위(十九位)까지 이르면 일(一)에서부터 십구위(十九位)까지 190인즉 만물(萬物)은 여기에 와서 최대 분열을 하고 수장(收藏)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동시에 수(數)의 역수(逆數作用)도 여기에서 끝나고 순수(順數)의 길로 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수(數) 다음에는 18 17 16 15 14 13 12 11 10의 순서로 순행(順行)의 수(數)는 남방(南方)에서부터 서방(西方)까지 오게 되면 십토(十土)가 작용(作用)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형(形)을 성열(成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西方)의 구(九)에서부터 북방(北方)의 일(一)까지 수축(數縮)하면 그 동안 수(數)는 45수(數)로서 일(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190가지 분산(分散)되었다가 다시 출발점인 일(一)로 돌아 왔다가 하는 작용(作用)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과정인 18에서부터 1까지는 126+45=171이며 생성과정에서 수(數) 190을 합(合)하면 190+171=361이 된다. 그렇다면 우주 변화의 일주기수(一週期數)는 360인데 왜 이것은 361이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1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상제(上帝)께서 왜 9월 19일에 강세(降世)하셨으며 어머니 태중(胎中)에서 13개월만에 강세하셨으며 “내가 장차 열석자의 몸으로 오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수상(數象)의 원리(原理)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우주의 변화(變化)는 상제님의 뜻에 따라 법리가 정해지며 이 법리에 따라서 먼저 정(精)이 생기고 정(精)에서 기(氣)가 생기게 되며 기(氣)가 움직이면 운(運)이 생기면서 신(神)이 나타나게 되며 이 신작용(神作用)이 상(象)을 나타내어 어떠한 징조가 생기고 마지막으로 형화작용(形化作用)이 일어나 현실적(現實的)으로 이 세상에 물(物)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상제님의 강세(降世)하심과 천지공사(天地公事) 역시 앞으로 나타날 후천의 모든 형(形)을 상(象)으로 표현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의 변화(變化)는 십토(十土)로서 통일(統一)의 기본(基本)을 삼고 오토(五土)로서 생장(生長)의 기본(基本)을 이루면서 변화(變化)하는 중(中)이라는 원리(原理)를 파악해 보았다. 또한 십구일(十九日)은 역시 통일(統一)의 기(氣)를 가진 십토(十土)로서 합(合)하면 19=10+9라는 수식(數式)이 성립(成立)되므로 십토(十土)와 구금(九金)의 상(象)이 된다. 즉 19는 360도(度) 생성도(生成圖)에서 보면 변화수(變化數)의 최고수가 된다. 음금(陰金)이 결실을 이루는 점(點)이 되며 여기에 통일(統一)의 기본(基本)인 십토(十土)가 작용(作用)하고 있으므로 통일(統一)과 결실(結實)의 과정으로 가는 상(象)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다시 표현하면 “(1) 9, 19 = (2) 5, 10 + (3) 4, 9” 이 새 세상의 장(場)은 3・8, 木에서 받게 되고 또한 생장의 중(中)인 五土와 통일(統一)의 중(中)인 십토(十土)에서 받아 중앙(中央) 오십토(五十土)로서 완성시킨다는 수상(數象)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즉, 사(四), 구금(九金)의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강세(降世)하심과 13자 몸으로 오리라 하신 곳에서 삼팔목(三八木)으로 이어지고 오십토(五十土)로 종결지으시는 분이 나오심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목불(木佛)의 본원(本源)은 정(鼎)에 있게 되며 금산사 미륵금불 역시 정(鼎)위에 조성되어 있다. 鼎은 청림도사(靑林道師)로서 도주(道主)님께서 조정산(趙鼎山)이란 호로서 이 세상을 건지실 두번째의 계승자로써 나오심을 말한다. 또한 오십토(五十土)로써 완성의 기(氣)를 가지고 새로움을 창조시키는 것은 상제(上帝)님의 말씀대로 원형이정봉천지도수약국(元亨利貞奉天地道術葯局) 재전주동곡생사판단(在全州銅谷生死辦斷)이라고 하셨듯이 약간이나마 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곡(銅谷)은 중심(中心)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의 360度 생성도(生成圖)를 보면 새로운 세상의 전개도 1에서 시작하여 9까지 기화작용(氣化作用)이 일어나고 10에서 토(土)의 統一의 氣를 받아 11에서부터 본격적인 형화작용(形化作用)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구상을 하시고 도주(道主)님께서 구상에 따른 법(法)을 짜시기 까지가 기(氣)의 형성(形成)과정이라고 보면 실제적인 형화작용(形化作用)은 11에서부터 일어나야 하므로 11월에이 세상에 오셔야 하며 또한 완성시키시기 위한 11월의 만도수를 채우는 30일이에 나오셔야 하는 이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완성되는 도(道)를 포괄하시는 분이 도전(都典)님 이시다. 다시 말하면 상제(上帝)님께서 이미 이 세상에 강세(降世)하실 때 상제(上帝)님, 도주(道主)님, 도전(都典)님께 이어지는 종통계승(完統繼承)의 맥을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삼위가 일체를 이루고 일체가 삼위(三位)를 이루면서 삼천(三遷)하는 이 우주를 완성(完成), 결실(結實)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수상(數象)이야말로 분열된 선천의 모든 도수를 통일(統一)시키고 만물(萬物), 만상(萬象)을 결실(結實)시켜 후천(後天) 오만년(五萬年) 청화지세(淸化之世)를 이루어나가는 절대적인 진리가 나타나는 수리(數理)이며 현상(現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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