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신앙 : 수도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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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자세 안동방면 박 정 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왜 이런 생을 살며, 너는 왜 그런 생을 사는가, 인간으로 태어남은 왜이며, 축생으로 태어남은 왜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 가면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한번씩은 생각한다. 가장 神을 닮았다는 人間, 그래서인지 인간은 絶對者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안고 태어난다. 인간이 처음 난 이후로 지금까지 추구하는 慾望이 있다면 完成된 人間이 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超越的 自我의 完成, 宇宙와의 合一的 存在, 神적 存在에로의 挑戰은 의식있는 인간들의 전 인생을 통하여 행해 온 바였다.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의식세계에까지 이르렀다는 석가모니나 공자나 예수와 같은 성인들, 이 모두가 이를 위하여 살아왔으며 그런 가운데 깨달은 바를 무릇 세상에 펴왔다. 그러면 확신은 무엇에서 오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절실한 체험이다. 우리 도는 전생의 인연과 조상신의 음덕이 있어야 찾아 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도와 수련을 하는 과정에서 조상신을 만나기도 하고 체내의 기의 흐름이나 선각과의 인연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체험이 있어야 확신이 설 수 있는데 체험의 정도에 따라 확신과 의심의 정도가 달라진다 하겠다. 어쨌든 체험을 하게 되면 완전한 확신은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의 믿음은 생기게 된다. 이것은 곧 뭔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道之覺이요. 道之行이라 했다. 알게 되었으면 행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견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어 완전한 확신에 이를 수 있으며 일심 또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믿음이 생겼더라도 행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체험한 것조차 회의하는 진중함 (?)내지는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든가, 그 자의 마음에 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안다고 모두 행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바로 그 길이 진정한 각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끝없는 자기성찰만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다. 자기 성찰하는 자세와 겸허한 자세를 가진 자는 誠과 敬을 가진자이며 여기에 信이 합해진다면 진정한 도인이라 할 수 있다.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하나씩 채워 나갈 때 진정한 완성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른 것 없듯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꾸준할 수 있는 마음, 이가 곧 誠의 마음이요, 도의 첩경이다. 삶에 성실할 수 있는 자는 삶을 믿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에 성실할 수 있는자 또한 도를 믿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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