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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8년(1988)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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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일심(一心)에 대한 소고(小考)

일심(一心)에 대한 소고(小考)

 

一心은 修道의 目的을 달성하는데 있어 필수요건

 

 

연구위원 차선감 황 현 하

      

1. 서론
  나는 과거에 수도 전기 시설이 안된 인적이 드문 곳에서 홀로 기거하며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그 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추웠는데 벌판에는 눈이 30cm이상 쌓이고 달빛이 유난히도 밝아 푸르른 밤이었다. 나는 밤이 깊도록 촛불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동네 청년이 불빛을 보고 찾아와서 “추운 방에서 홀로 생활(生活)하니 무척 외롭겠습니다.” 한다. 청년이 놀다가 돌아간 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전혀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그 청년은 내가 외롭게 보인 모양이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외로움이란 본래 없다는 것을…” 그와 같은 생각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낸 외로움이란 사실(事實)을 깨달았다.

  결국 모든 인간(人間)은 이 외로움이라는 착각 속에서 자기(自己)의 업장(業章)을 만들며 그 업(業)으로 인하여 전생(轉生) 윤회(輪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위의 깨달음에서 우주(宇宙) 삼라만상(森羅萬像) 뿐 아니라 일체의 현상계 나아가서 모든 생각 자체도 오직 마음의 작용(作用)이라는 개념(慨念)을 참고하여 상제님 말씀을 중심(中心)으로 일심(一心)에 대하여 논(論)하여 보고자 한다.


              

2. 본론
  우리가 도(道)를 닦아 나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수도(修道)의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요구되는 것이 일심(一心)이다. 일심(一心) 이란 말의 뜻은 한 마음, 통일(統一)된 마음, 변함없는 한결 같은 마음, 본연(本然)의 청정(淸淨)한 마음, 진여(眞如)(우주만물의 실체)등 여러가지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일심(一心) 에 대한 전경(典經) 말씀을 발췌 해 보면 다음과 같다. 
   “…前約… 최익현의 거사로서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血誠)의 감동에 인함이나…후략…(공사1장24절)”, “물과 불만 가지면 비록 석산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공사2:18)”,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교법2:4)”,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 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교법2장5절)”,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 하느니라.(교법2장7절)”, “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일심을 가지는 자에게 빠짐없이 찾으리라.(교법2장13절)”, “일심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알 밑에서 임낙안(林樂安)은 죽고 최면암(崔勉庵)은 살았느니라. 이것은 일심의 힘으로 인함이니라. 일심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을 튕겨도 능히 만리밖에 있는 군함을 물리치리라.(교법3장20절)” 위의 상제님 말씀과 같이 일심(一心)을 가지면 천지신명(天地神明)을 감동케 하여 움직일 수 있으며 마음 먹은 것은 반드시 실현되며 또한 일심(一心)은 만복(萬福)을 구하는 근원이며 상제님을 향한 일심(一心)을 가진 자는 천지신명(天地神明)도 두려워하며 상제님께서 빠짐없이 돌보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일심(一心)을 갖는 것은 죽기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면 왜 일심(一心)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으며 또한 일심(一心)을 갖는 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것인가?


                   

1) 일심(一心)을 갖기가 어려운 이유
  지구(地球)와 인간(人間)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공간에는 탐(貪), 음(淫), 진(瞋)과 각종 불결한 念의 파동(波動)들이 물결치고 있으며 선천(先天)을 지배하고 이끌어 오던 신명(神明)들 그리고 조상신(祖上神) 및 원한(怨恨神) 그리고 각종 인연 있는 영혼들이 해원(解)코자 찾아오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은 이들 念의 파동(波動)들과 본인(本人)과 조상(祖上)들의 업(業)으로 인하여 원하지 않는 생각과 잡념 망상(妄想) 등으로 본심(本心)을 잃고 정신이 분열 분산되어 통일(統一)된 마음을 유지하기가 지극히 어려우며 항상 유동적(流動的)인 마음을 갖고 생활(生活)한다. “조석지변(朝夕之變)”, “작심삼일(作心三日)”, “변소갈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 등 쉽게 변하는 마음을 표현(表現)하는 말들은 상당히 많다. 상제님께서는 “심야자(心也者) 귀신지(鬼神之) 추기야(樞機也) 문호야(門戶也) 도로야(道路也) 오심지(吾心之) 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행록 3장 44절”라고 말씀 하셨다. 즉 마음은 신(神)이 용사(用事)하는 중추 기관이며 또한 마음은 천지(天地)까지도 포용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 먹은데로 신(神)이 응하는 것이니 그것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주파수를 맞추는 데로 방송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수도인(修道人)은 마음의 컨트롤을 잘 해야 만이 되는 것이다.
  즉 자기마음은 자기(自己)가 주인(主人)이 되어 자기 임의(任意)로 주관, 통용(通用)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원(願)치 않는 수 많은 인연 있는 신(神)들이 침입하여 자기(自己) 마음을 주관하려고 하는 데서 혼란이 일어나 자기(自己)마음을 본심(本心)대로 지키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2) 일심(一心)을 가지면 불가능(不可能)이 없는 이유(理由)

                
  ① 우주만유(宇宙萬有)는 마음의 현상화(現像化)이다. 일찍이 수 천년전 관음보살이 선정(禪定)에 들어서 우주만물(宇宙萬物)의 본질(本質)을 파악해 논 선약경(船若經)이 있는데 이 경(經) 속에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문구가 있다. ‘색(色)’은 눈에 보이는 그리고 형체(形體)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뜻하며 이의 본질(本質)은 공(空)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 이론(理論)을 물리학적(物理學的)으로 고찰(考察)해 보자. 본질(本質)을 잘게 부수어 분해하면 화학물질(化學物質)의 최소(最少)단위인 분자(分子)가 되며 분자(分子)를 다시 분해(分解)하면 원자(原子)가 되며 원자(原子)는 원자핵(原子核)과 전자(電子)로 되어 있으며 원자핵(原子核)은 陽子(양성자)와 중성자(中性子)로 되어 있으며 이들을 다시 분해(分解)하면 모든 물질을 이루는 최소(最少)입자인 양자(量子)로 되어 있다. 이 양자(量子)가 빛(光)으로서 공간을 진행할 경우를 광양자(光量子)라고 한다. 또한 이 양자(量子)는 에너지로 되어 있는 것이다. 쉽게 표시(表示)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물질(物質)은 에너지 즉 기(氣)이며 기(氣)는 공(空)이며 마음이라고 표현(表現)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은 마음의 응축체(凝縮體)인 것이다. 상제(上帝)님께서는 “천용지용인용통재어심(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행록 3장 44절)이라 말씀하셨다. 즉 천지인(天地人)이 마음 작용(作用) 하나에 달려있다는 말씀이다. 석존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말씀하셨다. 우주 만물(萬物)은 마음의 현상화(現像化)라는 이론(理論)은 3차원(次元)의 물질계(物質界)뿐만 아니고 체(體)로서 존재(存在)하는 일체(一切)의 신명계(神明界) 즉 4차원 5차원 나아가서 무형(無形)으로 존재(存在)하는 무한차원(無限次元)의 세계(世界)에 까지 적응된다.

          


  ② 인간(人間)의 생애(生涯)는 우주에 녹화(錄畵)돼있다. 살아 생전에 쌓아놓은 모든 행적(行蹟)은 그대로 우주공간에 녹화돼 있다고 한다. 티베트 밀교(密敎)의 교전(敎典)인 『死者의 書』를 볼 것 같으면 사람이 죽어서 심판자의 앞에 가면 어떠한 거짓말도 통(通)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사자에게 살았을 때의 모든 행적(行蹟)이 그대로 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판자는 거짓말하는 사자(死者)앞에 녹화된 필름을 돌리면 영상화 되어 모든 잘 잘못이 눈앞에 전개되니 사자(死者)는 죄의식과 부끄러움에 그 장면으로부터 도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화면은 자기의 행적이기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사자(死者)는 도망가다가 지쳐 결국은 도피처를 찾아 몸을 숨기는데 이곳이 바로 인간 혹은 동물의 자궁(子宮)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환생(還生), 윤회(輪廻)한다는 것이다. (환생, 윤회는 극히 일부임)위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人間)의 살았을 때의 모든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은 그대로 우주 공간에 남아 존재(存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歷史的)으로 잘 나타나 있지 않은 위대(偉大)한 인물(人物)들의 행적(行蹟)을 알아 보려면 깊은 명상 속에서 자기 마음의 파장을 그 인물(人物)의 살았을 때의 파장에 맞추어 보면 역사(歷史)에 기록돼 있지 않은 잃어 버린 그의 일생(一生)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어떤 요기(yoga master)는 역사(歷史)와 성경상(上)에 기록돼 있지 않은 13세~29세 까지의 예수의 행적(行蹟)을 이와 같은 깊은 명상을 통(通)해 알아낸바 있다.

                   


  ③ 마음의 결정은 사진 찍는 이치(理致)와 같다.

  앞에서 언급(言及)한 바와 같이 우주만유(宇宙萬有)는 마음의 현상화(現像化)이다. 즉 마음으로 배정하면 현실적으로 현상화(現像化)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 찍는 이치(理致)와 같다. 마음으로 결정(結定)하면 사진을 찍는 이치(理致)와 같으며 이 사진은 광원(光源)을 통하여 영상화 되어 눈앞에 전개되는 것과 같은 이치(理致)다.
  교법 2장 2절, “대인의 말은 구천(九天)에 이르나니 또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잘 믿으라” 의 말씀과 행록 4장15절, “…내가 하는 일은 농담 한마디라도 도수(度數)에 박혀 천지(天地)에 올려 퍼지니…”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인(大人)은 일심(一心)의 소유주(所有主)이기 때문에 대인(大人)의 말은 그대로 천지신명(天地神明)에 의해 신명계(神明界)에는 즉시 실현되며 물질계(物質界)에는 시(時), 공(空)의 과정을 통(通)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현실화(現實化)되는 것이다. 그런데 삼계(三界)의 주재자(主宰者)이신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은 죽은 자(者)를 살리시고 떠오르는 태양을 멈추시며 일(日),월(月),성(星),진(唇),풍(風),운(雲),우(雨),로(露),상(霜),설(雪),뇌(雷),전(電) 을 임의로 주관 운용(運用)하시는 권능의 소유주(所有主)이며 대인(大人) 중(中) 대인(大人)이시기에 농담 한마디라도 도수(度數)에 박혀 천지(天地)에 울려 퍼져 신명계(神明界)에는 즉시 이루어지며 현실계(現實界)에는 人, 時, 處에 따라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실현(實現)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뭇 창생(蒼生)들은 혼탁(混濁)하고 산만(散漫), 분열(分列)되며 쉽게 변(變)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生活)하기 때문에 찍힌 필름 상태가 불분명(不分明)하기에 마음먹은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먹은 마음 다시 먹고 하여 잡념 없는 마음으로 응집 통일(統一) 시켜야만 본인(本人)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법 1장 21절, “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 들어 복을 이루지 못 하나니라.” 교법 1장 32절, “창생이 큰 죄를 지으면 천벌을 받고 적은 죄를 지은 자는 신벌 혹은 인벌을 받느니라.” 교법 2장 3절, “眞心堅守 福先來” 교법 2장 44절, “속담에 무척 잘 산다 이르나니 이는 척이 없어야 잘 된다는 말이라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짖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의 말씀과 같이 마음의 법칙(法則)은 철저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法則)아래 털끝만큼의 사사(私私)로움도 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방향(方向)이 잘못된 마음가짐은 스스로 화(禍)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상제님을 향(向)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선하고 남 잘되게 하는 마음으로서 일심(一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결론
  지금까지 고찰(考察)해 본 결과 일심(一心)은 우주와 신명계(神明界)의 중심(中心)이 되며 그들을 지배(支配)한다는 사실과 우주만물은 마음의 형상화(形象化)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상에 있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선천(先天)을 이끌어온 신명들과 조상신(祖上神) 및 원한신(怨恨神) 및 척신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으므로 오직 상제(上帝)님의 도문소자(道門小子)가 되어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해원상생(解相生) 대도(大道)의 법방(法方)을 통한 수도로써 만이 진정한 일심(一心)에 도달(到達)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상제님께서는 9년간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통하여 후천선경(後天仙境)의 완전(完全)한 청사진(靑寫眞)을 설계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이미 신명계(神明界)에는 후천선경(後天仙境)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칙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무위이화니라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仙境)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예시73)”의 말씀과 같이 상제님께서 설계해 놓으신 청사진의 필름이 돌아 가는 데로 후천선경은 다가와 반드시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 모든 도인들은 더욱 분발, 수도에 정진, 포덕천하하여 다가올 후천선경(後天仙境) 세계에 모든 창생들과 함께 참여토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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