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19년(1989) 10월

이전호 다음호

 

회보 1면 종무원장 말씀 생애와 사상(14) 논문 문단 종단소식 천계탑 학생코너 학생논단 설문지 분석 내가 본 대순진리회 알립니다

천계탑 : 식불언(食不言), 침불언(寢不言)

식불언(食不言), 침불언(寢不言)

          

 

 

교무부 제공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헐뜯는 말을 지나치리만큼 자주 듣는다. 심지어는 없는 사실까지도 있는 듯이 만들어 상대방을 모함하거나 궁지에 빠뜨려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비인륜적인 행위도 비일비재함을 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견주어「식불언(食不言)이라 하였으니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 (교법 1장 60절) 하셨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남을 좋게 말하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란 본능적으로 남을 좋게 말하기 보다는 헐뜯는 그 자체를 즐기는 속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브라함 링컨은 한때 남을 비평하고 비난하는 것을 즐기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남의 흉을 보는데서 큰 흥미를 느꼈고 또한 상대방을 힐난(詰難)하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고의적으로 그것을 길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상대방을 공박하는 편지를 신문지상에까지도 공개하였다. 

  이러한 그의 지나친 행위는 뭇사람들에게 반감을 샀으며 그러한 반감(反感)은 결국 생사(生死)와 직결된 극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링컨이 미국 일리노이주의 스프링필드라는 도시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의 일이다. 그는 그 지방의 제임스 실즈라는 정치인을 비난하는 풍자적인 글을 써서 신문지상에 공개한 일이 있다. 이에 격분한 실즈는 투서의 장본인이 링컨임을 알고 그에게 달려가 생명을 건 결투를 신청하였다. 다행히도 링컨은 그 결투가 시작되기 직전에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위기의 순간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실즈의 반감만은 그 누구의 중재로도 풀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링컨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이후로는 어떠한 경우라도 남을 비난하는 일만은 삼가 했다고 한다.

  이처럼 남을 비난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는 행위는, 타인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자신에게도 아무런 득(得)이 없다. 오히려 이러한 행위는 스스로가 불행을 자초하는 길이며 나가서는 척(戚)을 맺고 원한을 품게 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상제님께서는 남을 비방하는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제 노릇 제가 하는데 제 몸은 생각지 못하고 어찌 남의 시비를 말하리오」(교법 1장 20절)라고 하신 말씀이다. 시속에「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의에 의해서건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건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생각지 않고 오히려 남의 허물은 잘도 꼬집는다. 이는 한마디로 소인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小人之過也(소인지과야) 必文(필문) (論語(논어) 子張編(자장편))」이란 말이 있다. 이는「소인이 허물을 저지르면 그럴사하게 꾸며 댄다」는 말이다. 반면에 군자는 자신의 허물에 대해 책임을 지며 오히려 남의 잘못을 보면 그것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그 잘못을 통해 자신이 취할 바를 배운다고 한다. 마땅히 군자의 도(道)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 춘추 전국시대(BC 770∼BC 221) 제(帝)나라의 관중과 포숙아 간의 우의(友誼)를 말하는 것이다. 

  관중은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할 때에 자기의 몫을 포숙아 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포숙아는 관중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그의 가난을 걱정해 주었고, 관중이 전쟁에서 세 번씩이나 패하여 도망쳤을 때 포숙아는 그를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 말하였으며, 관중이 세 번씩이나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포숙아는 관중을 못났다고 비난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위로 했다는 것이다. 

  또 훗날 포숙아의 주군이 제나라의 왕위에 올라 그와 적대관계에 있던 관중을 처형하려 하자 포숙아는 이를 말리고 오히려 관중을 대부(大夫)로 추천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이 2500여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전해져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남을 좋게 말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더 이상 남의 허물을 들추어 꼬집거나 이를 기화(奇貨)로 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비양심적이고 비인륜적인 언행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무런 저의가 없는 말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은 그 말 한마디로 인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여 쌓아 올린 모든 공이 일시에 허물어지는 비운을 당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食不言(식불언) 寢不言(침불언)」
   

  이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회윤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해 주신 것이며 동시에 상생윤리의 지름길을 깨우쳐 주신 말씀이다. 상생(相生)의 길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남의 누행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감싸주며 남을 좋게 말하는 것이 상생인 것이다. 이렇듯 상생의 길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상제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늘 염두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