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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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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잃어버린 삶과 다시 찾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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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삶과 다시 찾은 삶

 

3년간의 선원생활에서 잃었던 많은 것들을 道에 접함으로써 다시 찾게돼….

 

  

 잠실3방면 선무 조 충 환

  

  나에게는 지금까지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전환을 통해 나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치관이 바뀌었고, 그렇기 때문에 도문에 들어서서 내가 배웠던 많은 것들이 더 쉽게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이는 조상님들께서 나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첫번째 전환은 내가 대학 2학년 때 일어났다. 그때 나는 연극반에서 「다시라기」라는 마당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눈뜬 봉사 역을 맡고 있었다. 두 달 반 가량의 연습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을 때이다. 여건상 마당에서의 공연은 불가능했고, 특별반 무대장치 없이 무대를 최대한 관객과 가깝게 앞으로 빼내고, 의상과 소도구가 다 준비된 상태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실수하거나 대사를 빼먹어도 끊는 일없이 실제공연과 마찬가지로 가정하고 하는 연습이었다. 연극은 전남 진도지방에서 행하는 것으로, 초상집에서의 해학어린 이 연극은 놀이를 극화한 것인데,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저승사자와 봉사가 꽤 긴 시간 실갱이를 하는 부분이 탈춤으로 연출되었다. 수 백번 뛰고, 수 천번 휘 젖던 춤사위, 아무런 감정 없이 반복해서 추던 그 춤들…,

  그런데 그때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땀 흘리며 신명 나게 춤을 추고, 짧은 마지막 장면마저 리허설로 끝난 직후였다. 그때 나에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몸 속에서 일어났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어떤 神이 응했던 것 같다. 짜릿한 쾌감 같은 것이 일어나면서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엄청난 통쾌함이었다. 그것은 파도가 부서지는 듯한 충격이 감전이 되듯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감동하게 반복하던 그 춤사위가 미치도록 좋아지고, 애착이 가서 깨물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의 안도감과 허무함이 뒤섞인 그 순간에 내 속에서 쏟아져 나온 여러 느낌이 그 한번의 통쾌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두고 두고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 이전만 해도 난 우리 전통문화나 예술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연극 때문에 배운 탈춤도 거의 무용을 배운다는 식의 태도였었다. 허나 그 날의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 전통예술이나 문화에 대하여 끊임없이 파고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알고자 하는 지식욕의 발로였지 내 삶의 태도나 가치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서양적이고 서구적인 것들에서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것들도 탐구의 대상이 바뀐 것 뿐이었고 한국전통을 바라보는 시각도 극히 분석적인 태도와 서구적인 시각이었다.
  그 후에 두 번째 전환점이 일어났다. 우연히 선배의 서가에서 빼어 든 「마하무드라의 노래」라는 책, 그것이 내 삶을 그토록 바꿔놓을 줄이야! 나는 얕은 지식과 얕은 재주로 뒤적이던 수많은 잡다한 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생각과 말의 장난 속에서 소위 「개똥철학」을 가지고 아무런 行도 실천도 없는 머리싸움만 하고 있었다. 우리의 현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외국인의 책 속에서, 또 그네들에게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써낸 수 많은 껍데기뿐인 책 속에서 아무리 머리로 재고 싸워봐야 五十步, 百步였다. 그런데 「마하무드라의 노래」라는 책에서 내게 다가온 아름답고 꿈결 같은 그 언어들은 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던 동화같이 또한 환상적인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후로 라즈니쉬, 요가난다와 같은 인도 사람들이 20여년간을 머리 싸 메고 싸워온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후로 알게 된 「환단고기」와 같은 책은 더더욱 민족에 대한 자부심까지도 일깨워주었다. 허나, 그러한 기쁨도 즐거움도 준엄한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얼마 전에 일어났다. 대순진리회에 입도한 것이다. 3년간 외항선을 타고 다니면서 부딪힌 수 많은 갈등들, 육체적 정신적인 싸움들, 그러한 현실 생활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여유, 인간적인 면, 사랑, 문화적인 생활, 순진함,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들 대신에 내 손에 쥐어진 건 좀 여유 있는 돈과 비정함과 요령, 이기심과 책임회피 그리고 수 없는 트러블과 싸움들이었다. 직업이 기계를 정비하는 것이었기에 난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던 道나 정신세계, 그리고 내가 꿈꿔오던 이상적인 사회상 등도 모두 잊어버렸다. 허나, 결국 바다 위에서 고생한 3년이 액땜이었고, 업을 풀기 위한 시기였으리라 본다.
  그러나 도문에 들어와서 난 이십 수년간을 갈구하던 것을 발견하고, 그것은 그 이전의 다른 전환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로 내게 다가왔다. 또 그 모든 것의 합계이고 총정리이자 대단원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조상님께 감사하고, 신명들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불초하고 못난 자식을 이토록 엄청난 도문에 밀어주신 것이 감사하고, 흔들리고 부대끼며 방황하던 제게 평안과 안심 안신 할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것도 감사 드린다.

  이렇게 선천 인생의 종착역에서 발견한 이 도를 나는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나가련다. 수많은 태풍과 파도를 뚫고서 항구에 들어서는 배처럼, 퇴직하기위해 짐을 둘러메고 부두에 내려서는 나이든 선원처럼…,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진정으로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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