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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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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神道의 意味와 修道의 姿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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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道의 意味와 修道의 姿勢

 

우리 道는 인위적인 邪道가 아닌 神道임을 깨달아 無自欺를 근본으로 성(誠)·경(敬)·신(信)을 다하는 수도 자세를 가져야…

 

 

- 안동방면 선감 鄭勳鳳

        

- 들어가는 말 -
  우리의 도(道)는 신도(神道)라고 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단순한 의미의 도(道)라는 말과는 확실히 그 의미(意味)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世上)에는 그 취지, 목적, 그리고 우주에 대한 이해 수준의 차이에 따라서 각기 다른 수많은 도(道)가 있다. 본래 우주의 이치는 하나로서 우주적 차원에서 볼 때 도(道)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수많은 도(道)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 모두가 인위적(人爲的)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도(道)를 신도(神道)라고 명명함은 그에 따른 마땅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를 명확히 아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올바른 도(道)를 닦을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수도(修道)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진리(眞理)이든지 그것을 성취하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기 거기에 상응하는 방법과 길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도(道)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독특한 목적과 깨달음이 있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특이한 수도법(修道法)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고 큰 운수를 받으려면 반드시 먼저 신도(神道)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고, 다음 그 목적과 취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여 그에 알맞은 수도법(修道法), 행법(行法)에 따라 일심(一心)으로 성 ․ 경 ․ 신(誠敬信)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 수도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必要)한 일일 것이다. 이에 本人은 이것에 대한 본인(本人) 나름대로의 생각과 각(覺)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



- 신도(神道)의 의미 -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임을 누차 말하였으나 깨닫지 못함은 신도와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를 구별하지 못한 까닭이다」(대순지침 39쪽)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는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와 신도(神道)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들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올바른 신도(神道)의 각(覺)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에 맞는 수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인간들은 천지(天地)의 존재법칙(存在法則), 운행법칙(運行法則) 즉 우주(宇宙)의 이치(理致)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성인(聖人)들은 하늘이 내려준 우주(宇宙)의 이치(理致)를 보고 깨달아 인간들이 그것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가 전해지는 과정(過程)에서 인간들의 욕심과 아집, 편견, 독선 등으로 인하여 그 본래의 이치가 변질되고 올바르게 전해지지가 못하였으니, 이렇게 해서 생긴 수많은 소산물(所産物)들을 우리는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 사도(邪道)는 어느 정도는 진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많은 부분이 변질되어 하늘과 땅의 이치를 거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들로 하여금 인간 본래의 무욕청정한 마음자리로 돌아가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인간들을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하며, 또한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반면에 신도(神道)라는 것은 인위(人爲)가 아닌 신위(神爲)의 차원(次元)에서 이루어지고 운용(運用)되는 도(道)를 말한다. 신(神)은 진리(眞理)에 지극하다는 상제(上帝)님의 말씀처럼 신명(神明)은 인간처럼 편견 · 오만 · 아집 등이 없으니 천지(天地)의 이치를 어그러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는 「…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공사 1장 3절)라는 말씀과 같이 모든 일을 근본적으로 신도(神道)로부터 해결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세상에는 신도(神道)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교법 3장 2절)라는 말씀에서 보더라도 천지만물이 신도(神道)안에 포용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우주 만물이 신(神)으로 구성되어 있고 만사(萬事)가 신(神)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므로 모든 것은 신(神)의 일이고 모든 도(道)는 신도(神道)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도(神道)란 보다 깊고 높은 뜻이 담겨져 있다. 조그마한 신(神)의 차원에서 말하는 신도(神道)가 아니라 우주를 관장하는 높은 우주적 차원의 신명(神明)을 통한 신도(神道)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理解)하기 위해서는 상제(上帝)님께서 행(行)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잠시 살펴보아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의 하소연에 의해 천하(天下), 온 우주(宇宙)를 대순(大巡)하신 후 인세(人世)에 강세하셨다. 그리고 천 ․ 지 ․ 인(天地人) 삼계(三界)가 너무나 깊이 병들고 도수가 어그러져 이것을 뜯어 고치는 대역사(大役事)를 하신 것이다. 선천(先天)의 세상(世上)이 지나친 상극(相克)으로 인하여 온 우주에 원이 가득 차 있어 이것을 뜯어 고치고 원을 풀어 상극(相克)도수를 상생(相生)도수로 바꾸시는 것을 천지공사(天地公事)라 한다. 즉 온 우주(宇宙), 온 천지(天地)를 개조(改造)함에 있어서 사사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신명(神明)들 즉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의 참관 하에 공적(公的)으로 처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주관하는 것은 오직 우주의 조화주(造化主)이신 상제(上帝)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것을 함께 도울 수 있는 신(神)은 바로 우주의 운행도수를 맡을 수 있는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이다.
  이와 같이 하여 상제님께서 주관하시고 천지(天地)의 모든 대신명(大神明)들이 참여하여 짜 맞추어진 도수는 천부적인 종통(宗統) 계승에 의해 그 맥이 전해지게 된다. 우주개조(宇宙改造)를 위해 삼천(三遷)의 이치(理致)로서 맞추어진 도수로 인해 그 완성의 임무가 도주(道主)님, 도전(都典)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 도수(공사 3장 37절 참조)로써 도주(道主)님의 종통계승은 확정되었으니, 이를 알려주시기 위해 「…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행록 5장 29절)라고 말씀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때로 금산사의 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 이름 하시고 세속에 있는 말의 양산도와 비유하시기도 하셨도다.」(예시 15절)라는 기록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법이란 서울로부터 만방에 펼쳐 나가는 것……」(예시 46절)이라고 하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의 출현(出現)이 예시되어 있으니 이와 같은 것을 천부적 종통계승이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도(道)를 신도(神道)라 함은 상제님께서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을 대동하고 우주를 뜯어 고쳐 새로운 후천(後天)을 창조하는 공사(公事)를 행하셨는데 이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천부의 종통계승으로써 현재의 대순진리회가 창도 되었던 것인 바, 바로 이러한 우주적 차원의 신명(神明)에 의한 도(道)라는 뜻으로 신도(神道)라고 하는 것이다.



- 수도(修道)의 목적(目的) -
  우리가 수도(修道)를 하는 목적은 무자기(無自欺)를 통해서 우리들 자신을 완성시키고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 들어가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천하(天下)를 화평케 하기 위함이다. 상제님께서 공사(公事)를 행(行)하실 때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놓으셨으니 새롭게 지어진 천지(天地), 새롭게 완성되는 우주에 우리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합일(合一) 시키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개조 시키고 정신을 개벽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천지(天地)의 위치가 바로 세워져 재조정되어야 하고 이제까지 쌓여왔던 모든 원은 모두 풀려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천지(天地)의 크나큰 공정 참여하여 우주완성에 기여함으로써 우리들 스스로가 완성되고 개벽 되는 것이다.

  이로써 선천의 모든 상극과 원이 풀리고 오직 상생(相生)의 이법(法理)이 무르익는 지상선경, 후천선경이 열리게 되는 바, 이때는 인간이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되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인 것이다. 이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의미가 처음으로 실현되는 것을 이른다. 이제까지 인간은 모든 일을 천지(天地) 안에서 천지(天地)의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 왔다. 즉,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하늘이 허락을 하지 않으면 일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그만큼 인간이 천지(天地)의 기운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모든 신명(神明)이 천지(天地 : 하늘과 땅)에 응해 있었던 선천(先天)에는 이것이 당연했던 이치다. 그러나 이제 상제님의 공사로 인해 신(神)이 인간(人間)을 떠받드는 시대(時代)가 열리는 것이다. 즉, 신봉어인(神封於人)이 되어 모사재천(謀事在天),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이치가 완성된다.
  이처럼 우주가 완성되고 신(神)이 인간(人間)을 받드는 후천이 도래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도(道)를 제대로 닦아 몸과 마음을 새로운 후천의 우주운행 원리에 합일(合一)시키면 이로써 신인(神人)이 조화(調化)되어 도통(道通)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이 목적은 천지(天地)의 움직임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이 조화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 수도(修道)의 자세 -
  우리는 수도를 함에 있어 우리들 자신을 항상 경계하고 근신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니 수도를 바르게 하지 못했을 때는 도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대순지침 37쪽), 또는 「도통은 도인들 자신의 수도 여하에 달려 있느니라.」(대순지침 37쪽)라고 하신 말씀 등은 수도 자세의 중요성을 지적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자세로 수도에 임해야 할까? 무릇 우주에는 우주의 법도(法道)인 리(理)가 있고, 이 리(理)가 각각의 사람에게 내려진 것을 성(性)이라 한다. 그리고 이 성(性)을 밝히고 발휘하는 것은 바로 심(心)이다. 마음(心)을 잘 움직여 쓰면 성(性)을 잘 발휘해 천리(天理)를 깨닫게 하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품성(品性)을 갖추어 천리(天理)를 거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는 「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행록 3장 44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신(神)이 통하는 문이며 도로인 마음(心)을 잘 다스려 천지(天地)에 어그러짐이 없어야 한다. 상제님께서 공사로써 새롭게 짜 놓으신 도수에 따라 우리들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상제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따라 마음(心)을 바르게 하고 성(性)을 곧게, 밝게 하여 공사(公事)의 대의(大義)와 해원상생의 법리를 올바로 실행해야 할 줄 안다. 우리 도는 신도(神道)이므로 자존자만을 버리고 겸허로써 인위(人爲)를 항시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성(性)은 마음이 밝아져야 천품성을 깨닫는다(開心見性, 개심견성) 하였으니, 참된 성품을 살펴서 허망한 일을 하지 않는(眞實無妄, 진실무망) 지성(至誠)에 이르면 신(神)과 같아지느니라.」(대순지침 75쪽)라고 하신 말씀은 이것을 강조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고로 마음이 참답지 못하면 뜻이 참답지 못하고, 뜻이 참답지 못하면 행동이 참답지 못하고, 행동이 참답지 못하면 도통진경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대순지침 76쪽)도 이를 밝혀주신 말씀이다. 우리의 일은 「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대대세세 천지귀신수찰)」(공사 3장 40절)이라고 하신 바와 같이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이 항시 살피고 있으므로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이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성 ․ 경 ․ 신(誠敬信)을 다해 일심(一心)으로 노력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곧 도통(道通)의 길이요, 완성의 길이다.



- 맺는말 -
  우리가 수도를 해 나가면서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많이 하고 있다. 이는 우리 도(道)의 특징을 잘 밝혀 주는 것으로 수도의 엄격성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혹간 이 신도(神道)라는 말을 자신의 잘못된 언행(言行)을 합리화(合理化)하는 데에 무심코 쓰게 되는 경우도 있고, 단지 신비주의에 치우쳐 사사로움을 감추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도가 말 그대로 신도(神道)임을 깨닫는다면 천지(天地)의 이치(理致)를 올바로 느끼고 모든 일을 경위에 맞게 처리하고 무자기를 바탕으로 어두운 방에서도 결코 자기를 속이지 않는 진실성을 가지고 수도에 임하게 될 것이다.
  신도(神道)라 함은 인간이 사사롭게 지어낸 도(道)가 아니라 우주를 조화(造化)하시는 상제님께서 우주의 모든 대신명(大神明)들을 대동하고 우주를 개조하기 위해 공사(公事)를 행하시고 이에 따라 수도를 할 수 있도록 짜여진 도(道)를 말한다. 이러한 도(道)를 행(行)하는 목적은 인간개조, 정신개벽으로 신인조화(神人調化)를 이루어 우주의 모든 이치에 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시 인위(人爲)를 경계하고 심(心)을 곧게 세워 성(性)을 올바로 발휘함으로써 천리(天理)의 지극(至極)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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