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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8년(1988)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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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본자리, 믿는 자리, 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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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자리, 믿는 자리, 한 자리

 

도와 참 믿음의 근본자리

현세의 황금만능주의는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남을 잘되게 하는 人尊思想이 바고 평화사상이라는 都典님의 말씀 속에 깊은 믿음의자리가

 

 

오룡2방면 교령 구 정 찬

        

  철이 들면서부터 하나의 의구심이 있었다. 그 의구심을 떨쳐 보고자 열심히 노장(老莊)철학에 빠져있었다.

  노장(老莊)에 이은 도연명의 싯귀에 흠뻑 젖어 젊은 인생의 한 부분을 아낌없이 할애했다. 노자의 <도덕경> 을 나름대로의 분석도 해 보았었다.

  그리고는 하나의 결론, 즉 천지간에는 반드시 우주자연의 질서를 운행하는, 무엇이라고 꼭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기운이 있음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무신론으로 기울어 갔다.

  하나의 결론은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 노자는 이 법칙을 道라고 했다.- 이려니 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 또한 세파에 시달리면서 자연의 법칙을 차츰 잊어가고 있었다. 어느 소설가의 얘기처럼 “악해야만 세상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인륜이 오염되고, 양심을 논할 수 없는 세태에 분노했다.

  참으로 많은 회의와 분노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후 3생의 인연 자락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무엇을 알았으랴!

  이 인연의 끝 자락을 따라 중곡동 도장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그 당시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인간의 심리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끈끈한 인연의 자락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도리어 칭칭 휘어 감으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어떤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무엇인가를 찾아 보아야 하지 않느냐? 연후에 행동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해서 전경을 펼쳐 보았다.
  “하늘도 땅도 사람의 마음도 고쳐서 쓰겠다”는 상제님의 말씀에서 막연하나마 근원을 생각케 되었다. 그제서야 세상을 사느라고 아득히 잊고 있었던 자연의 법칙을 가까스로 소생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자연의 법칙을 실행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처지에서 하물며, 그때에 있어서는 더 무엇을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도를 실행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상제님과 도의 근원자리”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찾을 것인가?
  입도하고 난 후부터 근 일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 의문 해소에 힘을 쏟았다. 우리의 생활에 가깝고 중요한 문제를 절실하게 묻고 깊이 생각 하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그 이후에 나의 모든 것을 재창조하기로 했다. 세파의 티끌, 잡념의 먼지를 털어버리기로 했을 때 새로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은 그 고통은 끈질긴 것이었다. 인연의 끝 자락을 따라 구도의 길을 나선 것처럼 육체의 끈을 따라 끊임없이 뒤따르는 고통의 엄습을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인내로 또 때로는 명상의 문턱에서 삭혔다.

  도가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없고 체득도 못한 상태에서 굳이 구도의 길에 나섬은 그렇게 오랜 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세파에 시달리면서 겪은 감정의 부산물을 씻어내고자 하는 것, 이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회의와 분노 그리고 쌓여만 가는 척과 겁기(劫氣), 이것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변질시켜 왔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약간의 변질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변질된 본성은 선진국의 문턱에 선 우리에게 있어 가장 위험스러운 것이다. 국민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철학이나 사상 또는 정신적인 뒷받침 없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 선 나라는 하나도 없다. 선진국에 들어 선 나라라도 정신이 물질의 우위에 서지 않으면, 결국에는 황금만능주의를 초래하여 인간을 물욕의 노예로 전락케 하여 수 많은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즉, 사치와 쾌락, 탐욕과 이기심만이 팽배하는 상황 하에서는 인륜과 도의를 논할 수 없다. 인륜과 도의는 입과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실행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욕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누군가의 희생이 있더라도 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닌 국민적인 정신이나 철학은 살아 있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 민족에게는 반만년 역사를 이어 내려온 정신이 있다. 이런 정신의 소생을 위해서 대순진리가 나타나 바른길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의 문턱에서 “이제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물샐 틈 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니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이하여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죄를 조심하고 남에게 척을 짓지 말라….(교법 3장 4절)”은 상제님의 말씀에서 가을의 결실기에 수확을 준비하는 농부의 순수한 마음을 공감하고,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것 처럼 이 길을 조심스레 걸어 간다. 또한 도주님께서 “있는 말 없는 말을 꾸며서 남을 유혹하지 말고 올바르게 진리를 전하라. 혹세무민하는 행동은 천지안에서 용납할 길이 없도다.(교운 2장 59절)”라 하신 말씀에서 광제창생한 포덕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생각이나 행동의 하나하나에서 거짓을 멀리 한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수행과정에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 서로가 신뢰할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짐으로 화목할 것이며, 척을 짓지 않는 데서 시비가 끊어질 것이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데서 배은망덕이 없을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니 우리 도가 인존사상이며 이것이 바로 평화 사상인 것이다” 라 하신 도전님의 말씀에서 완성을 본다.
  때때로 어려움이나 고통에 직면하더라도 믿는 바 있으니 그것은 “대인의 말은 구천에 이르나니 또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잘 믿으라.(교법 2장 2절)”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다. 상제님께서 행하신 공사를 일일이 밝히시기에는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상제님을 믿는 마음에 따라 심신을 다하여 세계창생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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