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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1년(1991)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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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사상 강화 : 禮에 대한 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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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에 대한 小考

 

       
한 만 수<선감ㆍ김해방면>
   

  「예기」에 의하면 예는 「무슨 일이든지 그 정도(正道)를 넘지 않고 또 항상 남을 공경하여 침범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으며 남에게 버릇없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버릇없이 가까이 하면 자연 경이(輕易)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공자 또한 예를 「무슨 일이든지 적중(適中)하는 것」이라 하여 절도를 말하였으니 이는 일반적으로 예(禮)에 조화로운 절(節)이 합하여 「예절」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예가 잘 활용되려면 조화적인 요소가 따라야 한다. 조화만 잘되면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지게 되고 인간 상호간에는 화목한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든 것이 예와 관련 있다 하여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또한 순자(筍子)의 수신편을 보면 「공경함을 몸가짐으로 하고 충신(忠信)을 마음가짐으로 하며, 예의를 법으로 삼고 애인(愛人)을 정(情)으로 하라 」고 했다.

  그리고 설문해자를 보면 예는 신을 섬겨 복을 비는 일이니 인간이면 누구나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행례(行禮)중에 제(祭)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示(땅귀신 기)에다 행례(行禮)의 기물인 豊(잔대 풍) 더하여 禮자를 만든 이다. 祭라는 글자 또한 손(又)으로 고기(月)을 들고 신(示)에게 바친다는 뜻이니, 곧 제사(祭祀)이다.

  그러나 예는 선령신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니 위로는 신명(神明)과 상제(上帝)에까지 미친다. 그러한 근거는 과거의 많은 임금들이 일차적 임무로서 자연과 조상에 제사를 지냈었고 이차적으로는 제천의례를 통해 하늘(神)과 인간을 서로 통하게 하는 행사를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 하늘을 숭모(崇慕)하는 경천사상(敬天思想)을 밝혔고 모든 행사에서 천지신명과 상제께 감사 드리는 치성을 드렸던 것이다. 따라서 예는 단순히 인간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에 근거를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대순에서 말하는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일생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할 때나,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起居動精)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주는 인도(人道)를 갖추는 것을 이른다』(대순지침 68쪽),

  『예는 평범하면서도 적중(適中)하여야 위의가 서고 질서가 이루어져 화합의 바탕이 된다』(대순지침 69쪽),

  『비굴하게 억지로 하거나,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아첨하지 않는 것이 예이다』(교법 3장 47절),

  『경위는 예절이니 경위가 바르면 질서가 유지된다 』(대순지침 85쪽),

  『조상을 받들고 신명(神明)앞에 치성을 드리는 일에도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사념(邪念)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대순지침 69쪽)
  다음으로 대순에서 실천코자 하는 예의 수행방법을 몇 가지 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해야 한다.

  이는 어진 덕을 닦고 사람을 예로써 공경하라는 말이며 비록 상대가 비천한 존재일지라도 공경 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성을 구하러 다니나 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 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교법 2장 20절)에서 처럼 예를 갖추면 진멸지경에서 피난할 수 있는 길이 되며 또한 예를 갖춘 만큼 덕이 되어 복이 따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상제께서는 교법 1장 10절에 보이는 바와 같이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대말을 쓰신 것이다.

  그리고 상제께서는 당신에 대하여 심히 비방하고 능욕하는 사람에게도 예로써 대하셨다. 종도들이 불경한 자를 예우하시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기에 상제께서 말씀하시되 『저희들이 나에게 불손 하는 것은 나를 모르는 탓이니라. 그들이 나를 안다면 너희가 나를 대하듯이 대하리라. 저희들이 나를 알지 못하고 비방하는 것을 내가 어찌 개의하리오』(교법 1장 12절)하셨으니 이는 대인의 마음이고 대순의 수칙에 있는 『남이 나의 덕을 모름을 개의치 말 것』의 음덕(陰德)을 짓는 것과 함께 대인지심(大人之心)의 표본이니 이것은 앞의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입장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어떤 일을 묻는 자에게 그 사람이 듣고 실행하느냐에 상관하지 말고 바른대로 일러주라.』(교법 1장 59절)는 말씀 처럼 남의 이목에 구애됨이 없이 진실하게 남을 대하는 곳에 예가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 생각된다.

 


둘째, 말을 후덕(厚德)하게 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속담이 있다. 말을 좋게 하면 그만큼의 이로움이 있다는 속담이다. 말은 가급적이면 삼가고 무게를 지니는 것이 이롭다. 조금만 마음이 나태해지면 헛말이 나오게 되고 격의 없이 한 말이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킴은 물론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것이 척을 맺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말을 하되 말에 덕을 붙여야 한다. 남을 잘 말하면 복이 되고 나쁘게 말하면 화가 미친다는 다음의 구절을 보자.

  『김갑칠이 항상 응석하여 고집을 부리나 상제께서 잘 달래여 웃으실 뿐이고 한번도 꾸짖지 아니하시니 그는 더욱 심하여 고치지 않는도다. 형렬이 참지 못해 「저런 못된 놈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으니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언행이 아직 덜 풀려 독기가 있느니라.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惡將除去 無非草 好取看來 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니라』(교법 1장 11절),

  내가 말을 하는 대로 상대의 말이 거울에서 반사되는 것처럼 돌아온다. 그래서 「가는 정 오는 정 」의 이치처럼 내가 얼마나 후덕한 말을 하였느냐에 따라 내게는 덕이 되고 또한 복이 쌓인다.

 


셋째, 겸손해야 한다.

  겸손이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상태이며 따라서 교만하여 남을 얕보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남을 대함에 있어 항상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남의 말을 소중하게 듣고 그 의사를 높이며 존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수행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자세일 뿐만 아니라 내가 남으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기초가 되며 더욱이 서로 이해하고 화목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

 

 

넷째, 보은(報恩)해야 한다.

  은혜는 남이 나에게 베풀어 주는 혜택으로서 그 은혜를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저절로 공경하는 자세를 지닐 수 있다. 이제까지 개개인은 주위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고 자라왔다. 나의 복록과 수명은 하늘의 은혜이니 성경신 으로써 천지보은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간의 도를 다하여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이 은혜를 알고 보은하지 않으면 배은망덕이니 상제께서는 배은망덕은 만사신(萬死神)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도는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이며 경위가 법이다. 이 중 사람의 도는 예를 체로 삼아 모든 윤리 도덕, 심지어 일에서까지 용사하게 된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는 신명과 조상, 부모, 사회, 국가, 스승, 수도에 있어서 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예는 남을 공경하는 것인 만큼 자신이 대우를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우해 주고 내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이 듣기 좋듯이 남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예를 갖추면 수도인이 갖추어야 할 밑바탕을 갖추게 되고 그 바탕 위에 지혜 용력을 발휘하여 도통과 더불어 천지의 보은(報恩)에 일조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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