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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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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산 기행 : 道場과 大眞大學敎의 현장

왕방산 기행

道場과 大眞大學敎의 현장

 

신선이 책을 읽는 仙人讀書 穴이 전해 내려와

     

   

▲ 진동고개: 대운동장 옆 영대로 오르는 길에 솟아있는 고개

 

 

  포천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산으로는 단연 왕방산(旺方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포천에는 왕방산 외에도 백운산에서 뻗어내려오는 많은 산들과 지장봉, 청계산, 수원산 등 빼어난 산들이 많이 있지만 대진대학교(大眞大學敎)가 위치하고 있는 왕방산은 많은 전설을 간직한 산으로 유명하며 또한 기암괴석이 많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길을 알려거든 길을 지나가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잘 알 수 있고 산을 알려면 산을 자주 오른 사람에게 물어보란 말도 있다.

  마찬가지로 왕방산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지역 주민중 오랜 세월동안 왕방산을 집과 같이 삼아 오르고 내렸던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다행히 「왕방산 일대에 내 발이 안 미친 곳이 없다」고 자부하는 선단리(仙壇里) 묘소부락에서 8대 약 300년 간을 살아오신 백진현씨를 만나게 되어 왕방산과 대진대학교에 대해 이모저모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분처럼 왕방산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 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는데 백진현씨 같은 분을 만나게 되어 그 분과 답사팀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나눈 일문일답은 진지하면서도 명쾌한 것이었으며 대화 속에서 나오는 기쁨이란 실로 문자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움이 있다.

  기쁨을 뒤로 하고 주요 문답을 하나하나 정리하기로 한다.

 

             

『대진대학교가 위치한 동네 이름이 선단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선단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만약 거기에 의미가 담겨 있다면 자세히 들려 주십시오』

 

- 왕방산에는 옛날부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방산 중턱의 큰 흑송(黑松)아래에 제단을 마련하여 해마다 한번씩 제사를 지냈습니다. 신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다고 해서 선단리(仙壇里)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일주일전부터 목욕재계를 하며 부정을 멀리 했습니다. 만약 제단 주위에서 부정한 짓을 한 사람은 세 발짝도 못 가서 화를 당하였으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동네에도 재앙이 왔습니다. 그리고 제사 지낼 때에는 사흘 전부터 다른 동네 사람들의 출입은 일체 금했습니다.

 

  

▲ 관모바위: 비위윗부분이 관리들이 쓰는 모자같이 생겼다.

 

      

▲ 구융바위: 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구유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구융이다.

 

   

『대진대학교가 왕방산에 들어섰는데 그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 과연 어려운 시절 선단리 사람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학벌이 어떠냐고 물으면 「왕방대학 지게과 다닌다」라고 하였고 동네 사람들이 산에 나무하러 가자고 할 때에는 으레 「왕방산 대학에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자」말해 왔습니다. 그 말이 지금 와서는 꼭 들어 맞는 것 같네요.

 

         

『대순진리회 영대가 있는 곳은 어떤 자리라고 보십니까』

 

- 그러면 영대가 놓여 있는 자리를 한번 봅시다.

  영대 앞자리에 새 을(乙)자 모양의 고개가 있는데 진등 고개라 합니다.

  즉, 참이 있는 고개라는 말인데 대진대학교(大眞大學敎)가 들어섰으니 그 이름을 꼭 빼 닮은 것 같아요.

  그리고 지역 풍수사(風水師)들 말로는 영대(靈臺)가 있는 자리가 선인독서혈(仙人讀書穴)이라 더군요.

  양팔을 벌리고 양반다리를 한 후 책을 보고 있는 형국인데 영대 자리는 책이 놓여 있는 서안(書案)인데 풍수에서는 그런 자리를 좋은 명당으로 보지요. 이 자리가 좋았음인지 과거 일본 사람들이 대진대학교 진입로와 대진대학교 정문에 있는 두 고개의 혈을 끊었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끊어진 곳에서부터 아래로는 지기(地氣)가 내려가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 위로는 지기가 모여들 수 있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 영대가 있는 곳이지요.

 

            

『대진대학교가 금년 개교하면서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이는 건축물로서도 뛰어나지만 장차 국제적 수준의 학교로 발돋움하리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견해입니다. 이에 대해 지역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대진대학교에 거는 기대는 어떠한 것인지요.』

 

- 무식한 사람이 무얼 알겠습니까마는 제 자신이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한(恨)이 많아요. 오죽했으면 지역 주민들이 「지게 지고 왕방대학 간다」고 했겠습니까.

  대학이 들어선 것만으로도 그 동안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진대학교에 거는 기대는 크지요. 제가 학교관계에 대하여 잘 모르는 점이 많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란 참 어렵군요.

  그러나 대학교 왕방산에 위치한 만큼 왕방산과 관련하여 비유로서 말한다면 진등고개 위에 위치한 만큼 학교 당국은 참으로 큰 진리를 세상에 알려야겠습니다. 왕방산의 왕방(旺方)이란 곧 「사방으로 왕성하게 알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선인독서혈에 자리를 정한 만큼 많은 대진의 젊은이들이 진리를 탐구하여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世界)를 이끌어 갈 주역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 장독바위: 고추바위라고도 한다. 우측에 3개의 바위를 합쳐 놓으면 음양 조화를 이룬다.

 

 

 

 

 

『지금까지 왕방산과 대진대학교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당국이나 종단에 부탁하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 저희 동네 주민들이 6.25이후에도 몇 차례 대진대학교 영대 뒤 제단에서 소를 잡고 제사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역이 학교 부지이기 때문에 관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예부터 우리마을에는 치성지내는 자리(仙壇)를 훼손한다거나 신령스러운 두 그루의 소나무(흑송, 적송)를 함부로 베게 되면 신벌을 받게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요.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벌을 받아 죽은 사람이 있었어요. 앞으로 저희를 대신하여 그곳을 잘 보존하여 주시고 신선(神仙)이 내리도록 하늘에 제사도 꾸준히 지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아울러 앞으로 대진대학교와 대순진리회 종단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한편 이분과의 대화 외에 연구실에서는 왕방산 일대를 대진대학교 기획과 및 홍보과에 연계하여 수 차례에 걸친 답사를 마쳤는데 지세나 지형에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그 중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모아 도인들에게 소개코저 한다.

 

 

▲ 제단석: 흑송아래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제단. 이곳에서 매년 천제를 지내왔다.

 

 

▲ 흑송·적송: 흑송(우측)아래에는 제단이 있으며 적송(좌측)은 붉은색을 띤 소나무이다.

 

 

▲ 박쥐동굴: 동굴은 자작리까지 연결되어 있어 동굴입구에 불을 피우면 3일후 그 연기가 자작리에서 피어 오른다고 한다.

 

 

진등고개와 영대

  진등(眞燈)고개는 참이 있는 고개란 의미인데 고개 위에 바로 영대가 서 있다.

 

 

관모(冠帽)바위

  관모는 관리가 쓰는 모자, 바위 윗 부분의 모양이 모자와 흡사하여 주민들이 관모바위라 불러왔다.

 

 

구융바위

  사진 왼쪽의 바위 모양이 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구유(경기도 방언으로는「귱」이라고 함)를 닮았다 해서 부르게 된 것인데 구유의 방언으로서 「구융」이나 「귀용」으로도 불린다.

 

 

장독바위

  사진 가운데의 바위가 장독모양으로 되었다 해서 장독바위 또는 고추바위라고도 한다. 산에서 내려다 보면 고추바위 우측에는 3개의 바위가 있어 이 둘을 합하면 완전한 음양(陰陽)의 조화물이 될 수 있다.

 

 

제단석(祭壇石)

  흑송아래에는 납작하면서도 사각형 모양의 자그마한 흰 돌이 있는데 여기에 소머리를 올려 놓고 하늘에 제사(祭祀)를 지냈다.

 

 

흑송(黑松)과 적송(積送)

  원래 이곳에는 4그루의 소나무가 있었으나 그 한그루는 벼락을 맞았고 또 한그루는 동네사람이 베었다고 한다.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것이 흑송인데 이 나무 아래에 제단이 있다. 그리고 적송은 사진의 왼쪽인데 가지가 붉은 색채를 하고 있다.

 

 

박쥐동굴

  동굴입구는 사람이 엎드려야 들어갈 수 있지만 입구만 통과하면 어른들도 허리를 조금 구부린채 걸을 수 있다.

  안쪽에는 굴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좌측에는 아래로 물이 흐르고 우측으로 난 굴은 자작리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의 말을 빌자면 동굴 입구에 불을 피우면 3일후 자작리 뒷산에서 연기가 나온다 하며 왕방산 중턱에서 발을 구르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하니 비어있는 증거이다. 지금은 양쪽다 암반이 내려앉아 드나들 수 없었다. 박쥐동굴이라 불리게 된 것은 동굴내에 박쥐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천 군민의 노래

우뚝 솟은 왕방산은 포천의 기상

문화고장 나라 이끈 큰 힘이라네

백운산 맑은 시내 포천의 인심

굽이굽이 포천팔경 우리의 자랑

아름답고 인심 좋아 살기 좋은 우리 고장

부지런히 배우며 가꿔 나라 발전 앞장서자.

전설 얽힌 축석령은 포천의 관문.

한내물 흘러 흘러 고을 살찌네

나라복판 자리잡아 문화의 중심

조상의 얼 더욱 빛내 나라 이끌세.

아름답고 인심 좋아 살기 좋은 우리 고장

부지런히 배우며 가꿔 나라 발전 앞장서자.

(지난 23호에 실렸던 포천군민의 노래가 이상과 같이 바뀌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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