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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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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논단 : 신종교 인식에 대한 비판적 분석

신종교 인식에 대한 비판적 분석

 

   

전국대학 대진연합회 회장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4년 박상규

   
Ⅰ.
  근래에 들어 우리의 고유한 얼을 되찾자는 움직임과 더불어 민족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관심과 함께 우리 한반도에서 순수하게 우리의 손으로 창시된 신종교(新宗敎)에 대한 구구한 해석과 오해가 뒤따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종교 특히 민족종교(民族宗敎)에 대한 많은 논문과 서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객관적 시야를 가지고 연구한 것은 그 수가 적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의 종교를 연구하는 주체적인 인물들이 서양의 종교학과 서양식 교육에 많이 물들어서일 것이다. 신종교, 특히 민족종교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식의 연구가 가져온 핍박과 오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 종교인은 그로 인하여 심리적 열등감 속에서 살아온다. 이 문제는 이들 종교에 있어서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았고 현재도 그러하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서양의 가치와 기준에 의해 비하시켜 왔으며 우리나라 우리민족에게 자생적으로 성립된 민족적 사상 · 종교들을 부정스럽게 보아왔고 부끄럽게 여기는 이해 못할 일이 생겼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 속에서 아직도 그 정리의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민족적 전통이 서양의 것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사회의 창조적 발전을 보기 위해서는 고유 및 민족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착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믿는다.


        
Ⅱ.
  우리 민족은 반세기에 가까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서구화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서구화된 일본식 제국주의에 의한 간접적 서구화의 과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동양진출과 동시에 진행된 기독교계 선교사들에 의한 서구화의 과정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구한말 이후 서양의 문화를 접촉하고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무력으로서 우리나라의 정신을 말살하고 지배하려는, 또는 자기 문화사상 종교를 타민족 타 문화에 강요하여 정신적인 지배를 유도해 내려는 어떤 분명한 저의를 가진 세력에 의해서 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의도는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는 강렬했고 이것은 강력한 무력을 배경으로 한 서구화의 강요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은 크게 퇴색하였고 낯선 서양의 가치관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진행되었다. 조선의 전통적 왕조가 붕괴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와 전혀 다른 서양식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서양식의 헌법으로 사회가 통제되기 시작하자 우리의 사회는 서양식의 사고관념과 생활방식으로 심하게 윤색되어 갔다. 이러한 결과 서양의 가치와 문화의 단점은 제쳐두고 장점만을 가지고 찬양 되고 우리의 것은 그 장점은 묻어두고 단점만을 드러내어 비판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즉 서양의 과학과 합리주의가 강하게 득세하고 우리의 것을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것들로 비판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관심인 종교의 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종교사를 하나의 계통적 진화의 관념적인 도식으로 본, 역사적인 구체성이 희박하고 모호한 종교진화론, 그리고 기독교를 위시한 이른바 고등종교에 근거한 종교이론과 개념이 한국종교의 이해와 분석에 함부로 적용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종교의 많은 부분이 왜곡, 굴절, 비하 되었다. 종교진화론과 같은 유럽인에 의해 주장된 유럽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세계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폭 넓은 연구로 인해 그것은 유럽인의 자문화 중심적인 편협한 사고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그 실상이 밝혀지고 정당성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즉 세계 각 민족의 종교에 관하여 보다 폭 넓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종교에 대한 이해는 이제 더 이상 그 우열을 논하지 않고 그것이 그 문화 사회전반에 걸쳐 가지는 기능 상징 등에 집중되고 있다.



Ⅲ.
  일방적이고도 급속한 서구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 신앙인 무속신앙(巫俗信仰)과 구한말이래의 민족신종교는 심한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일제에 의한 기독교의 박해는 그간 매우 강조되어 왔으나 이들이 당한 일은 민족종교가 당한 그것에 비하면 그리 주목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일제에 의한 민족종교 탄압으로 수십만 교인이 희생되었고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내지 사이비종교로 비하시켜 버렸으며 후기에는 심지어 강제로 해산시키기까지 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민족신종교에 대한 연구는 일제시대 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연구의 방법과 목적이 문제였다. 조선총독부는 민족종교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1935년에 <조선(朝鮮)의 유사종교(類似宗敎)>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그것은 민족종교를 효과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전국의 경찰력을 동원한 자료 조사집의 성격을 띤 것이다. 거기에는 민족신종교를 종교로 보지 않고 종교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책은 결국 그 후의 조선 총독부 황국 신민화 정책에 따른 민족종교 말살 정책의 기본적 자료로 이용되었으니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순수한 목적과 방법으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저들의 목적을 위해 이미 시작과 결론을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자료를 선택해 넣었던 것에 불과하다. 해방 후에도 신흥민족종교는 여전히 유사종교라는 말 그대로 지칭되었다. 이는 유사종교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일제의 용어를 그대로 도용한 것이다. 유사종교란 종교와 유사하면서 실상 참다운 종교가 아닌 사이비종교 또는 정교(正敎)에 대한 사교(邪敎)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건국 이후 민족종교가 받은 사회적 오해와 핍박은 외세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서 더욱 안타깝다. 이 시기는 정치, 사회면에서도 그러하였겠지만 민족종교의 상황도 몹시 혼란한 때였다. 민족신종교가 당시의 사회 상황을 십분 반영하고 있음이 여기서도 확연하다. 갖가지 사상과 가치가 사회에 혼재하고 속출하는 동안 민족종교 또한 대거 등장하였다. 그러나 과거 일본 사학자들에 의해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종교적, 사상적으로 비하, 격하된 민족신종교는 일제에 결탁했던 소수의 봉건지배계층이나 동조적 식민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다시 한번 핍박과 오해를 받아야 했으며,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자유주의 사상 등 본격적인 외래사조의 유입은 민족종교를 무조건 이단이나 사이비로 몰아버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구되어진 신종교 연구서적과 자료가 가지는 내용은 결코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다. 소수종단의 잘못된 면만을 보고 이외의 한국신종교의 전체교단을 추측하며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종교를 연구하는 이들은 서양의 종교개념을 기준 하여 신종교를 연구하는데 쓰고 있다. 한심스럽게 그지없는 노릇이다. 종교는 각기 나름대로 그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고 그 사회에서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며 그러기에 그 나름의 특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Talcott Parson의 종교의 의미에 대한 명쾌한 분석은 우리에게 어떻게 신종교를 연구해야 하는가라는 교훈을 준다. 「동서를 막론하고 아무런 결점 없이 발달한 종교운동은 없다. 종교운동은 모두가 추상적 사상 속에서만 자라온 것이 아니며 심리적, 역사적인 고유한 힘에도 뿌리를 박고 있다. 종교와 사회, 종교와 민족적 특징, 종교와 역사, 종교와 풍토 등의 여러 관계는 항상 상관관계인 것이다. 오늘날의 동양을 형성한 하나의 요소는 종교이며 현재의 동양의 여러 종교를 형성한 것은 동양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지금까지의 신종교 연구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첫째 문제는 종교진화론의 관점에서 기성종교를 우위에 두고 신종교를 연구하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게 될 때 신종교는 사회에서 소외된 몇몇 인물이 일으킨 조잡한 종교운동으로 보이게 되고, 그 사회적 의미는 소외된 자들의 탈출구로 인식된다. 종교를 현상학적으로 보면 기성종교도 역시 한 때 신종교의 과정을 거쳤거나 또는 그 과정에서 탈피한 모습에 불과한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교도 처음에는 신흥하였던 것이 종교발전을 거듭하면서 기성화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나 공자나 예수는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었으며 그들의 초기 교단은 사회에서 소외된 불만 계층이 모인 집단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그러한가? 신종교는 기존의 종교가 기성 되어 더 이상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그것과 결별하고 민중의 새로운 가치로 일어선다. 신종교의 사회적 의미는 그러한 사회성에서 찾아져야 한다. 한국의 신종교 중에서도 특히 민족혼을 견지해온 동학의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 등은 일제의 암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족발전에 기여해 온 역할자들이 다라는 어느 신종교 연구가의 말은 신종교의 기능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할 것이다.
  둘째 문제는 자료의 비판 없는 수용이다. 신종교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자료는 1935년에 출간된 <조선(朝鮮) 유사종교(類似宗敎)>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앞에서 밝힌 바 그대로다. 또한 해방 후 행해졌던 신종교에 대한 연구가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서 행해졌는지도 앞에서 기술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어떠한 사람이 행한 연구결과를 수용하기에 앞서 그 연구자가 어떠한 의도로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연구를 행하였는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러한 세심한 주의가 결여되어 있다. 보도 자료에 대한 비판 없는 수용도 큰 문제이다. 신종교는 새로 일어난 종교이기에, 또한 그것이 급격한 사회변동에 대응한 종교운동이기에 결점 없이 발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서구화의 영향 속에서 민족신종교와 관련된 사건을 사실에 대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책임 없이 보도해 왔다. 이러한 일은 최근에도 발생하고 있다. 근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某 종교적 사건도 나중에 확인 결과 보도진의 무책임한 보도자세로 인해 이에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던 경우가 있었다. 이 사건을 놓고 볼 때 한국의 언론이 과연 어떠한 자세로 신종교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어 왔는가란 사실을 제 인식 할 수 있을 것이다. Talcott Parson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동서를 막론하고 아무런 결점 없이 발달한 종교운동은 없다.」


  
Ⅳ.
  사회적 Anomie가 극한 상황에 이르거나 기성종교가 민중으로부터 멀어질 때 종교의 평가 기준을 달리하는 인간들이 새로운 의미로써 가치창조의 의욕을 돋군다. 특히 전쟁, 재난 또는 저열한 사회 풍조에 따라서 민중의 정체감과 사회적 응집력이 약화될 때 대중은 낡은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요구한다. 신종교란 이러한 때 기성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의 제 문제를 떠맡고 대중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면서 일어나고 발전한다. 이러한 신종교에 대한 평가는 그 종교 나름의 사회적 기능과 상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독선과 선입견에 의한 평가는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왜 우리 민족종교의 창시자는 세계사적 성인이 될 수 없는가? 왜 우리 민족의 종교가 세계인의 종교가 될 수 없는가? 우리는 이제 우리의 것을 부끄러워할 때는 지났다. 우리의 것에 감추어져 있는 참된 보배는 이제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의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많은 자료의 이용으로 [주]가 필요하나 회보의 지면상 여건으로 생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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