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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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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아들이 찾아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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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찾아준 길

 

 

 

영일방면 외수 석 수 길

 

1. 처음에
  제가 감히 펜을 들게 된 것은 아직도 참된 삶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대순진리를 알고도 의심이나 망설임으로 행하지 못하고, 현실의 物慾에 집착하는 愚를 범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서 입니다.

 


2. 入道前의 암울했던 시간들
  비교적 엄한 儒敎的 家庭에서 태어난 나는 부모님, 친지들의 사람과 기대를 받으며 대학 · 대학원을 거치면서 사회정의를 俱現해 보고자 여러 해 동안 司法考試 준비를 했으나 뜻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처음에는 격려해 주던 친지들도 이젠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해 여름, 사랑하는 아들 승호를 얻는 기쁨을 맛보았으나 아내가 職場生活을 포기하여 극심한 生活苦를 겪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청천벽력이 우리 가정에 떨어졌다. 날이 다르게 쑥쑥 자라던 귀여운 승호가 百日이 지난 며칠 후 온 몸에 불덩이 같은 열이 나며 젖을 먹지 못하였고 四肢는 뼈가 없는 양 흐느적거려 병원을 찾아 일주일간 입원을 시켰다. 그러나 병세는 차도가 없었고 담당 의는 원인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듯하여 흰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던 추운 날 우리 내외는 타고 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병원문을 나서야 했다. 그 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찾아 다니면서 병원을 나설 때는 한결같이 암담할 뿐이었다. 現代醫術의 限界를 실감하면서도 오로지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一念 하나로 한의원을 찾고 민간요법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 무당을 찾아 굿거리를 하는 등 정말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장이 멈춰진 듯 돌이 가까웠는데도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였으며 체중 역시 百日 때와 별차이가 없었다. 뒤집지도 앉지도 않으니 남들은 「애기가 3 · 4개월 되었느냐? 뇌성마비가 아니냐?」며 무심코 던지던 말을 듣고 아내는 입에 담지 못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암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생명부지의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上帝님에 대한 얘기를 듣고 半信半疑하며 따라 나섰던 그 길이 永生의 길이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3. 先覺의 인도와 입도치성
  아주머니(선무)를 따라 간 곳이 절이 아니라 「대순진리회」라는 종단임을 안 순간 내용도 모르고 사이비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눈짓을 하여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중하고 참되어 보이는 안내를 뿌리칠 수 없어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니 또 한 분의 아주머니(선각)께서 반갑게 맞아주면서 승호를 받아 안고 걱정스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때 승호는 법수함이라는 조그만 상자를 보며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은 듯 연신 까르륵 웃어댔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10개월짜리 승호는 분명 감지했다는 것을 승호와 함께 생활해온 우리는 경험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아주머니로부터 「상제님께서 모든 神聖 · 佛 · 菩薩들의 호소로 진멸지경에 빠진 세상을 解相生의 道로 구제창생 · 광구천하 하시고자 119년 전에 오셨다」는 大巡眞理會의 信仰槪要를 듣고 九天上帝님의 일대기가 기록된 성화를 본 후 정성어린 입도치성을 드리고 呪文을 받아 드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내는 밝은 표정으로 믿겠다고 좋아했지만 난 여러 가지 의구심에 휩싸였다.

 

     
4. 믿음의 싹이 트고
  입도한 다음날부터 우리에게 쏟아주는 선각들의 정성과 정성껏 모셔주는 밤 기도에 성스러움이 깃 들었고 조금도 힘들거나 귀찮아 하지 않았을 때 나는 道를 믿고 안 믿고 를 떠나 그 마음 씀에 감복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기도 후 먹였던 법수물의 造化는 즉시 승호에게 나타나 곧 몸 속에 있었던 厄이 순식간에 머리 밑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염 꽃이 되어 피어났고 그렇게 토해내던 젖을 토하는 일도 없으며 이제는 무엇이든 먹지 못하는 것이 없다. 또한 그렇게도 흐느적거리던 팔다리에도 힘이 솟는지 얌전히 있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흐리던 눈빛도 반짝거리기만 한다.
  이웃들도 승호의 놀라운 변화에 의아해 한다. 아직 진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은 없지만 전경 교법 제1장 5절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도 못하며 無神論者를 자처해온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지루하게 느껴지던 도담도 차츰차츰 가슴에 와 닿았다.


        

5. 여주 수도장 참배
  入道한지 한달 여 만에 선각의 아낌과 배려로 道人의 요람이라는 여주 수도장 참배에 동석할 수 있었다. 「6개월 만에 완공되었다는 여주 수도장은 과연 어떠할까」하는 설레 이는 마음으로 출발하여 여주 수도장에 도착한 나는 웅장한 그 자태에 아연해져 버렸다. 처음 보는 靈臺와 靑鷄塔의 거대함과 단청과 조각의 섬세함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았고 한복차림으로 줄을 이어 一念橋를 지나는 道人들의 行列, 참배에 온 정성을 쏟는 道人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리고 있음을 느꼈다.
         

 

6. 내 人生의 轉換點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되어 왔던 우리나라에 서구 물질만능주의의 영향으로 날로 허물어져 가는 도덕성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權力慾 · 名譽慾 · 物慾에 현실과 타협해온 나는 이제 誠 · 敬 · 信의 참됨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陰陽合德 · 神人調化 · 解相生 · 道通眞境의 宗旨와 인간개조 · 정신개벽의 목적을 修道를 통하여 몸소 실천하며 無自欺로써 바른길로 나아가자는 至高無上한 眞理를 담은 大巡眞理會에서 교화와 선도로 사람을 일깨우고 살리는 일을 하고자 한다. 아직도 道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날로 전진하여 上帝님의 降世하신 참된 뜻을 깨달아 올바른 修心修行으로 地上仙境 건설에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야겠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저를 바로잡아 주시는 여러 선 · 교감분 들과 선각들의 정성어린 보살핌과 배려에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모두 천지대도에 동참하여 참된 삶을 살아간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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