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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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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온 우주를 풍요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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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온 우주를 풍요롭고 이롭게

       

온 우주를 구원하시려는 상제님의 大巡하신 眞理를 모든 종교와 이념,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天下에 알리고자

 

 

 용산방면 교령 김 진 수

        

  1988년 1월 7일 오후 4시 중곡동에 있는 한 연락소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던 둘째 누님과 함께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고 구령자의 지시에 따라 입도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이윽고 구령자가 엎드려서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라고 말하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귀일심원 요익우주(歸一心源 饒益宇宙)」라는 심고를 드렸다. 집사자의 주문 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道와 깨달음 그리고 궁극적 진리에 관하여 구체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학 2학년 때였다. 당시 광림교의 대학부 회장을 맡고 있었던 중에 예수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현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깨닫고 심각한 신앙적 고민에 빠져 들게 되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예수의 진리와는 동 떨어진 오늘날의 교회 모습에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진리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한국종교를 비롯하여 인도철학, 불교, 유교, 도교 등 동양종교사상에 관한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는 동안 여러 가지 깨달음이 내면에서부터 용솟음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처의 가르침과 공자의 가르침,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진리를 가리키고 있다는 깨달음과 진리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存在의 본질 자체가 곧 道이며 眞理라는 깨달음이었다. 특히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 사상과 인도철학의 「범아일여(梵我一如‥우주와 나 자신이 하나이다)」 사상, 그리고 원효의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풍요롭고 이롭게한다)」는 대승불교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이러한 사상들을 우주적인 차원에서 다시 종합하여 「귀일심원 요익우주(歸一心源 饒益宇宙‥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온 우주를 풍요롭고 이롭게 한다)」를 궁극적인 삶의 목적으로 삶게 되었다. 또한 한민족의 밝은 미래에 관한 서적들을 접하면서 앞으로 이 한반도에서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종교가 출현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같은 생각들을 좀더 논리적으로 검토하고 체계적으로 확립 시키기 위하여 대학 3학년 때부터 전공인 불어불문학은 옆으로 치워놓고 종교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종교들의 진리를 탐구하면서 점점 나의 생각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림으로써 수많은 종교와 이념들이 뒤섞여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사회에 공헌하고, 물질문명 속에서 가치관의 혼돈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더욱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종교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이와 같은 결심을 하기까지는 더욱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가정 문제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체험들을 많이 했다. 항상 불화 상태였던 부모님 사이에서 집안이 평안할 날이 없었고 누님 세 분이 차례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 그 상태가 심각해질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다니곤 했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도대체 왜 그럴까?」,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간의 내면적 심리와 정신과 영혼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학교에 다니면서도 남들과 별로 어울리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느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정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와 더욱 가까워졌다. 특히 기독교를 오랫동안 믿어온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기독교 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불교와 유교 등 동양종교로 관심이 바뀌게 되었다.
  1988년이 되자 종교학과 대학원 시험을 앞두고 2년 동안 준비해 오던 나는 일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 동안 사귀어 오던 여자친구가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당하여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남동생 마저 정신적인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집안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1월 15일 예정인 대학원 시험에 자신감을 잃고 완전한 무력감에 바진 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야말로 어디론가 아주 사라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학교선배가 우리 가정 문제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운명철학관에 점을 보러 가자고 권유했다. 그 곳에 가서 보니 우리 가정의 문제는 신명계의 조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뿌리인 조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 선배가 이르기를 한국민족종교인 대순진리회라는 종단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조상을 받들며, 또한 내가 종교학을 공부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1월 6일 저녁 위급한 마음으로 공중전화의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대순진리회를 찾아 아무거나 보이는 번호를 돌렸다. 어떤 남자분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짜고자 어려운 문제가 있으니 상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이 그러면 중곡동으로 와서 종무원 연구실의 안보정을 찾으라고 말했다. 둘째 누님과 친구와 함께 택시를 잡아 타고 밤늦게 종무원에 도착하여 당시 연구위원으로 계시던 안담 보정(현 재단법인 대순진리회 이사)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월 7일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 입도치성을 드렸던 것이다.
  대순진리회와 인연을 맺고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한지 이제 1년 남짓 되었다. 여러 선각 임원들의 교화를 통해 大巡眞理가 바로 그토록 염원하고 꿈꾸어 왔던 그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온 우주를 구원하시려는 상제님의 大巡하신 眞理를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곧바로 포덕사업에 뛰어들었다. 교회 장로이신 아버지와 더욱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형제들을 비롯하여 주위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마침내 어머니를 입도 시켰다. 그 동안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이 道를 위하여 언제든지 목숨을 바치리라는 각오로 부족하지만 誠 · 敬 · 信을 다하고자 했다. 이제 1989년을 맞이하여 상제님의 덕화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종교학과에 합격되었고, 게다가 뜻하지 않게 교령으로서 종무원의 연구위원 임명을 모시게 되었다. 앞으로 한마음을 다해 모든 종교와 이념,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大巡眞理를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서 天下布德의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온 우주를 해원시켜 풍요롭고 이롭게 하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 天地大道로 이끌어 주신 상제님과 천지신명 그리고 조상신명께 감사 드리며, 道를 깨우치게 해 주신 모든 선각과 후각들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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