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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7년(1987)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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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생애와 사상(7) : 천지공정(天地公庭)을 펴다

천지공정(天地公庭)을 펴다



  상제(上帝)님께서는 신축(辛丑,1901)년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열어시고, 임인(壬寅)년에 들어서는 탐음진치의 네가지 마(魔)의 극복을 동량(棟樑)으로 삼고 천지공정(天地公庭)을 펴셨다. 그것은 無極大運을 열어 말세(末世)를 당해 고해(苦海)에 빠진 창생들을 건지기 위해서 천지(天地)를 개벽하고 선경을 여는 공정이었다.
  괴롭기 한량이 없는 이 대 과업을 상제님께서는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라, 천지신명이 모여 내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하므로 어찌 할 수 없이 맡게 되었다. 내가 맡지 아니하면 天下가 비겁에 쌓여 운명을 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대 과업을 수행하시기에 앞서 상제님께서는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기 때문에 명부의 재 창조가 이룩됨에 따라, 이 세상의 온갖 일도 해결된다는 相生의 원리를 좇아 명부공사를 보시고, 相生은 相克을 풀어 놓아야 하는 전제가 따르므로 신명들의 노여움을 풀어야 했고, 그들을 위무하고 진안하여 맺힌 한을 풀어 주었다.
  壬寅년이 지나 癸卯년이 되었다. 강세하신지 33년이 되는 해다. 정월에 날마다 두서너장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불살라 하늘, 땅, 사람의 세계를 개벽하는 공정에 신명들을 불러 처결하셨다.
  그해 3월 어느날, 대원사의 주지 박금곡이 찾아와 李 京五가 걷지 못하는 것을 아뢰이고, 神方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 청을 받고 전주 花亭洞으로 李 京五를 찾아가, 그를 보더니 괴상한 병이라고 진단하시며, 이 병을 표본으로 삼아 天下의 질병을 다스리겠다고 하시고, 손으로 기둥과 같이 빳빳한 두 다리를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려 가셨다. 그렇게 하였더니 아침에 부기가 내리고 오후에는 다시 붓기 시작하는 그 증세가 가라앉아, 3년이나 걷지 못하던 걸음을 다시 걷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상제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청에 따라 의술을 베풀어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의술은 단지 사람의 진맥과 치료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하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것이 진정한 의통이라고 일러 주셨다.
  4월 어느날, 박 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여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조정에 발각되어 그 당원들을 색출하여 검속하기 시작했다. 병욱이 그 혁명에 연루되어 당황하였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조정에서 포교들이 그를 잡으러 내려왔으나, 한발 앞서 상제님께서는 병욱을 불러내어 가죽신을 벗기고 짚신을 신게 한 다음 뒤를 따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포교들이 전주를 떠나 남원에 도착할 때에 남원을 벗어 나온 것을 알고, 병욱은 상제(上帝)님의 혜안에 탄복했으며, 그 분이 神人임을 알게 되었다.
  계묘(癸卯)년이 저물어 갈 무렵, 종도들이 시좌하고 있었을 때에 상제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딜까.」 하고 한숨을 지으시니, 옆에 시좌하고 있던 김 보경이 「무엇이 그렇게 더딥니까」고 물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신명을 시켜 眞人을 찾아 보았더니, 이제 겨우 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이 이렇게 더디구나」 종도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무용지물이며 헛되이 따랐다고 불평을 하자, 상제님은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타이르시며 「때에도 그 때가 있고, 사람 중에도 그 사람이 있노라(時有其時 人有其人)」 란 시 한수를 읊으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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