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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이야기 : 함안 반구정(伴鷗亭)
함안 반구정(伴鷗亭)
<교무부> 연구소제공
▲ 반구정 전경
낙동강과 정암강이 합류하는 도흥진(道興津) 옆에는 암벽이 층층을 이루고 뒤에는 용화산(龍華山)이 좌우로 감싸 안아 천하의 절경을 이루는 곳에 반구정(伴鷗亭)이 아늑히 자리 잡고 있다. 앞마당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세월의 여파로 초라해진 정사와 달리 해마다 그 위용을 뽐내고 마당 왼편 언덕으로는 높이를 가늠키 어려운 감나무 가지가지마다 붉은 감들이 매달려 주인을 기다린다. 절벽 아래로는 새파란 낙동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넓은 평야위로 곡식들이 움을 돋우고 있다. 이는 군북면 월촌리와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사이에 있는데 강 가운데 바위가 있어 그 모습이 마치 솥 위에 겹겹이 쌓인 바위와 같다고 정암(鼎巖)이란 명칭이 생겼다.
▲ 伴鷗亭記 현판
둔궤는 원래 정읍 대흥리에 있던 것인데 도주께서 통사동 재실로 옮기셨다가 다시 반구정으로 옮긴 것이다. 반구정과 관련된 일이 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도주께서 경신년에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 불식하면서 공부하시던 중 이월 열 이레에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려져 있었도다. 그 속에 호피(虎皮) 한장과 반쯤 핀 국화 한송이가 그려있고 양피(羊血) 스물넉점이 궤에 찍혀있고 오강록(烏江錄) 팔문둔갑(八門遁甲) 설문(舌門)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도다. 그후 둔궤는 도주께서 함안 반구정에서 공부하실 때 그곳에 옮겨졌도다. 그러나 당시 심복자이던 창원 사람 조주일(曺周一)이 둔궤를 훔쳐 갔는데 훗날에 종도들이 이를 알고 매우 안타까와하니 도주께서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니라. 둔궤(遁櫃)의 둔(遁)자는 도망 둔자이도다」고 그들에게 이르셨도다.』(교운 2장 20절) 반구정에서 도주께서는 공부를 하시고 또 여러 도수를 보셨다. 『갑자년 여름에 도주께서 배문걸을 데리고 밀양 종남산 영성정(靈聖亭)에 이르러 폐백도수(幣帛度數)를 밤 열시부터 다음 날 아침 여섯시까지 다섯달 계속하시고 다시 함안 반구정으로 옮겨 마치셨도다.』(교운 2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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