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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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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탐방 : 대순진리회 중앙종의회 의장 정대진

대순진리회 중앙종의회 의장 정대진

 

 

취재 홍보팀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

필선노기심지(必先勞其心志)

고기근골(苦其筋骨)

아기체부(餓其體膚)

궁핍기신행(窮乏其行)

불란기소위(拂亂其所爲)

시고(是故)

동심인성(動心忍性)

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 『전경』 행록 3장 50절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부여하는 데, 거기에 앞서서 이 길이 옳나 틀리나 먼저 심기를 어지럽게 해보고, 그래도 도 닦는다고 하면 그 다음에 뼈마디가 아프고 힘줄이 당기고 오그라들게 하여 몸을 괴롭게도 해봅니다. 그래도 버티면 배가 고파 눈이 허얘져서 뱃속에서 개구리 소리가 나게 해보고, 그 다음에는 돈과 쌀이 들어오는 구멍을 다 막아 노잣돈이 한 푼도 없어 가도 오도 못하게 합니다. 그래도 하려고 하면 그 다음에는 하는 일마다 불란이 생기고 가는 곳 마다 싸움이 나곤 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 겪어야 비로소 높은 데는 깎아서 낮게 하고 낮은 데는 높은 것으로 채워서 메우고 그래 가지고 평등하게 고른다 이겁니다.

  그런 경험을 다 겪어야 도인들을 이끌어나가는 위치에 나아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배고픔을 모릅니다. 그 과정을 진정으로 다 겪어야 됩니다. 그리해야 알뜰한 도인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참다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옛말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논어』에 있는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과거를 익히고 새로움을 배워간다는 뜻이다. 우리도 수도를 하면서 과거를 더듬어 본다는 것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준비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우리들의 수도에 많은 도움을 얻고자 원로임원들의 발자취와 그 분들의 말씀을 전해 듣는 도인탐방 코너를 만들어 보았다.

  이번 호에는 부전방면 정대진 선감을 뵙고 말씀을 들어 보았다. 부전선감께서는 1933년 1월 17일 생으로 1958년 6월 17일에 입도하셨으며, 1978년에 선감임명을 받으셨고, 현재 중앙종의회 의장으로 재임 중이시다.

 

 

 

 

 

처음에 입도할 당시 상황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25세 때 하루는 한약방에 볼 일이 있어서 갔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이 당시 한약방 주인이었던 강영감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요즘 같으면 포덕하려고 교화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옆에 앉아서 그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당시에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저는 그 이야기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에 꼭 맞는 종교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툭툭 두드리면서 “여보, 내 같은 사람이 하면 안 되나? 그 이야기가 내 마음에 쏙 드는 데 내 같은 사람이 한번 해보자”라고 말을 하였고 그 자리에서 날을 정하여 6월 17일에 입도치성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결핵에 걸려 있었으며 이것을 외부에 말도 못하고 각혈을 숨기며 남몰래 약을 먹어온 지 10년쯤 되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하루는 병마에 시달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던 저에게 입도 후 알게 된 당시 서대원 포령(전 부산방면 선감, 포령은 현재 선무의 직책에 해당)이 찾아와 주문 책을 주면서 저에게 기도를 모시라고 하였고, 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할 일이 없었을 때니 하루에 열 번이건 스무 번이건 기도를 모셨고 그 때마다 제 신세가 한탄스러워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도를 모시고 있는데 서대원 포령이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와 제 뒤에 와서 앉았습니다. 당시 우리집 현관문이 낡은지라 문을 열면 자다가도 깰 정도로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었는데도, 기도 중에 있던 저는 아무 소리도 못 듣고 뒤에 누가 와 앉아도 모를 정도로 기도에 몰입했었습니다. 이를 보고 서대원 포령은 “당신이 정말 내가 온 줄도 모를 정도로 기도를 했나? 그럼 당신은 덕화로 나았다. X-ray 한번 찍어 봐라”라고 말하셨고, 그 길로 부산 중앙동의 이경용의원에서 X-ray를 찍으니 “한 달 전 사진과 지금은 너무 대조적입니다. 이건 신이 돌보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 나았습니다.”라는 말을 원장에게 듣게 되었습니다.

 

▲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의 연설 모습

 

 

수도 과정 중에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몸이 좋아진 후 종이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아주 잘 되어 상당히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후에 중곡도장을 지을 때 당시에 번 돈이 정성을 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68년도에 도전님께서 태극도에서 나오셔서 서울로 올라오셨고 저도 따라서 왔습니다. 허나 그 때까지 포덕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처음부터 포덕을 다시 시작하였고 이듬해부터 도인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1978년 8월 17일에 2,800호를 가지고 선감임명을 모셨습니다. 당시 저는 교령이었는데 도전님께서 부산선감에게 호수를 물어보시고 바로 선감임명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후 1980년에 부산방면에서 부전방면으로 방면의 호를 받으면서 78호를 가지고 또 다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항상 아침 9시만 되면 동상동 주훈재(동래방면 선감) 집에서 수반들을 모아서 교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교화하다가 물을 먹고 싶어도 혹시 소변보러 갈 동안 모인 사람들이 흩어질까봐 걱정 되어 먹지를 않았고 이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교화할 때는 아무것도 마시지를 않습니다. 매일 같이 교화를 했지만 항상 새로운 교화가 나왔고 어떤 질문을 받아도 점쟁이 말문 터지듯이 저절로 대답이 척척 나왔습니다. 정말로 신명이 도와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교화하고 밤 1시 기도 모시고 새벽 4시에 통행금지가 해제 되면 그 집을 나오는 겁니다. 당시 동래선감 집에는 방이 한 칸밖에 없었는데 내가 나가야 동래선감 아주머니가 들어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진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벽에 기대고 잠을 잤으니 참 저도 못할 짓을 한 겁니다. 일단 나오면 하루 종일 앉아 있었으니까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이 골목 저 골목 뛰어 다니며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7시가 되면 아무 도인 집이든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포덕 하게끔 교화하고는 다시 동래선감 집에 가는 겁니다. 이렇게 다니다 집에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못 들어가서 속내의가 까매지면 새것을 사 가지고 목욕탕에 가서 갈아입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포덕 사업을 하다가 300여 호가 되었을 때 연산동에 60평짜리 회의실을 얻었습니다. 당시에 방면 사람들 참말로 고생했습니다. 제가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밤새 교화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어떤 도인은 잠시 오줌 좀 누고 오겠다며 나가더니 아직도 안 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이름도 안 잊어 버려집니다.

  저는 수도는 고행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방면 도인들은 진짜 어렵게 수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도전님 말씀 중에 항상 유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도전님 말씀 중에 깊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항상 화합하고 융화하고 단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화합하고 융화하고 단결을 해야 총력이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장을 지을 때 모든 도인들이 단결하여 나오는 총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방면에서 회관을 지을 때나 크게 사업을 이루는 때도 화합하여 나오는 총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화합의 사상이 곧 상생의 사상이며 상생이 곧 화합이고 단결입니다. 도전님께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말을 예로 들면서 화합을 강조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너무 자기 방면만 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종단의 최고 임원들인 선·교감은 방면을 떠나서 더욱 화합해야 됩니다. 과거에 태극도 당시에는 도인을 만나면 그렇게 좋고 반가울 수가 없었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자기 방면 아니더라도 서로 아끼고 단합하여 모두가 하나가 돼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과 친해야 한다’는 것도 얼마나 많이 강조하셨습니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항상 이웃과 화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러한 말씀들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두고 있습니다.

 

▲ 태국 사회봉사단체 지원 자선행사 참여

 

 

현재 도장에 수호를 서고 있습니다. 수호에 대하여 당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주본부도장에 있는 도인들은 도장을 생명으로 삼고 수호를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8년이나 수호를 하면서 도장을 지켜 나오는 것 자체가 상제님의 덕화입니다. 상제님의 덕화로써 지금까지 유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장이 없으면 어디 가서 도를 닦을 겁니까?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여주본부도장을 철저히 수호를 잘 해나가야만 내일에 상제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수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훈시를 직접 모시지 못한 임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도전님을 직접 뵙지 못하고 훈시를 못 모셨다고 해서 너무 애석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석가나 예수는 몇 천 년 전의 사람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도전님을 못 뵙고 또 직접 말씀을 듣지 못했다 해도 『대순지침』이나 『포덕교화기본원리』 등 도전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책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남기신 도전님의 말씀들을 직접 도전님 대하듯이 생각을 하고 그 말씀대로 수도를 하면 과거와 조금도 차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통일대학원 학술발표회 강연

 

 

마지막으로 수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먼저 저는 어디를 가서 교화를 해도 제일 강조하는 것이 포덕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느 임원을 막론하고 포덕이 수도의 근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포덕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교화를 하게 되어 있고 교화를 하다 보면 상제님 사상을 연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연구한 것을 교화하면 그것이 내 가슴에 심어지게 됩니다. 자기가 교화를 안 하면 자기 것이 되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말한 대로 가슴에 심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은 일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를 한다고 하면서 눈치를 보며 여기서 얼쩡대고 저기서 얼쩡대는 그런 시간만 보내는 수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도라 하는 것은 일심(一心)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지 이심(二心)을 가지면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여주본부도장에 모여 함께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겪고 나가야 할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합하고 단결하여 한마음 한 뜻으로 일심으로 매진한다면 우리의 목적을 꼭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도인 여러분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세계종교지도자 대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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