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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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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5) : 상제님께서 금산사 미륵금불에 임어하시다

상제님께서 금산사 미륵금불에 임어하시다

 

 

글 교무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불·보살 등이 모여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劫厄)을 구천에 하소연하자, 천상계에서 가장 높은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신 상제님께서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직접 내려오시어 천하를 대순(大巡)하시었음은 이미 전술한 바와 같다.

  천하의 형편을 샅샅이 살피시던 상제님께서는 동방의 작은 나라인 조선에 이르신 뒤, 당시 전라도를 대표하던 사찰인 금산사(金山寺)01의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영(靈)으로 임어하시어 대략 1841년부터 1871년까지 30여 년을 지내시게 된다.

  상제님께서 조선에 머무신 이유는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의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권지 1장 11절)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약자로 살았던 우리 민족의 원을 풀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 임어하신 금산사 미륵금불은 천여 년 전에 진표율사(眞表律師)02가 미륵의 강림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여 놓았던 것이다.

  진표율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718년경에 전라도 만경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출가03한 그는 27세에 전북 변산 의상봉 동쪽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위치한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3년간 망신참법(亡身懺法)04으로 처절한 고행을 한다. 목숨을 건 구도 끝에 드디어 진표율사는 지장보살로부터 계(戒)05를 받고 미륵보살로부터 『점찰경(占察經)』과 간자(簡子)06를 받는 이적(異蹟)을 경험한다. 산에서 내려 온 진표율사는 금산사에 들어가 연못을 숯으로 메우고 난 뒤, 솥[鼎]을 받침으로 걸고는 그 위에 철(鐵)로 된 미륵불을 건립하였다. ‘발연사석비(鉢淵寺石碑)’에 따르면 이때가 766년경이다.

 

▲ 변산 의상봉에 있는 부사의방

 

 

▲ 금산사 미륵전 미륵장륙상

 

 

▲ 금산사 미륵장륙상 아래의 솥

 

 

  이 미륵불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7년 미륵전을 중건할 때 다시 만들어졌는데, 이때 미륵불은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塑造像)에 도금을 한 것07이며 ‘山’ 글자 형태의 삼존불08로 봉안되었다.09 바로 이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10에 상제님께서는 30년간 영(靈)으로 머무르셨던 것이다.11

  진표율사는 금산사에 미륵을 건립한 이후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와 금강산 발연사(鉢淵寺)12에도 미륵을 세웠다. 이렇게 그가 미륵을 세 곳에 모신 이유는, 미륵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지상에 하생(下生)하여 3회의 설법을 한다는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 때문이라 한다.

  불교에서 미륵은 천상(天上)의 정토(淨土)인 도솔천에서 수행을 하다가, 약 56억년 후에 도솔천의 수명이 다할 때 지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13 아래에서 성도(成道)한 후 3회에 걸친 설법을 통해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첫 번째 설법에서는 96억 명, 두 번째는 94억 명, 세 번째는 92억 명이 일체의 번뇌를 파하는 아라한(阿羅漢)14의 경지를 얻게 된다고 한다. 이 세 차례에 걸친 설법 모임을 ‘용화삼회(龍華三會)’라고 부르고, 미륵을 따라 그 설법에 참여하고자 발원(發願)하는 것이 바로 미륵하생신앙이다.

 

▲ 금산사 미륵금불이 봉안된 미륵전(국보 제62)

 

 

▲ 방등계단과 사리탑(보물 제26)

 

 

▲ 방등계단에 조각되어 있는 천인상

 

 

  진표율사가 미륵하생신앙에 따라 미륵을 봉안하였으므로, 훗날 정유재란 때 소실된 금산사의 미륵전을 재건할 때도 미륵하생신앙의 표상(表象)이 미륵전에 그대로 나타나게 했다고 한다. 즉 금산사 미륵전은 겉으로는 3층이지만 내부는 위아래가 모두 통하는 1개의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미륵이 하생(下生)하여 3회의 설법을 하는 용화삼회(龍華三會)의 설법장이 곧 금산사 미륵전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미륵전 2층에 걸린 현판이 용화지회(龍華之會)인 것도 이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15

  한편 미륵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에 죽은 뒤 도솔천에 태어나 그곳에서 미륵과 함께 56억년을 함께 보내다가 지상에 내려와 설법에 참가하겠다는 신앙도 생겨났는데, 이를 미륵상생신앙(彌勒上生信仰)이라 한다. 금산사 미륵전 바로 옆에는 이것을 나타내는 건축물이 있으니, 바로 방등계단(方等戒壇)이다. 즉 미륵전이 미륵하생신앙에 의거하여 용화삼회의 설법장을 상징하여 건립된 것이라면, 미륵상생신앙에 의거하여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중생들이 거주할 도솔천궁(兜率天宮)으로 건립된 것이 바로 방등계단이라는 것이다.

  미륵상생신앙의 표상답게 미륵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방등계단은 상하 2개의 기단(基壇)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층의 기단은 길이 8.5m, 높이 0.6m이고, 하층 기단은 길이 12.5m, 높이 0.8m이며, 기단의 위에는 석가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탑이 있다. 기단 주변에는 많은 물형(物形)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들은 불보살상이나 신장상이 아니라 천인상(天人像)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조각상들이 입고 있는 천의(天衣)가 아래로 내려뜨려져 있지 않고 위로 날려 머리 부분에서 고리모양을 이루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렸다 위로 올라가는 양식으로 되어 있어서 도솔천에서 미륵보살의 교화 대상인 천인(天人)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하층 기단 주변의 난간은 도솔천과 그 아래의 천계를 구분하기 위한 경계이며, 난간 모퉁이에 세워진 사천왕상(四天王像)은 도솔천 바로 아래에 있는 사천왕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즉 방등계단은 도솔천을 상징하여 건립되었으며 미륵상생신앙을 표상하고 있는 건축물이라는 것이다.16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금산사라는 절은 단순히 미륵상만 모셔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솔천과 용화삼회라는 구체적인 미륵의 표상까지 갖춘 사찰이었다. 상제님께서는 혼란한 세상을 극복하고 중생을 제도할 미륵을 도솔천에서 기다리겠다는 민중들의 소망,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 땅에 출세하여 용화삼회를 열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이 깃든 이곳 금산사에 임어하셨던 것이다.

 

 

 

 


01 금산사는 조선후기까지 전라도를 대표하는 절로서의 위격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시대에 위봉사의 말사로 강제로 배속되는 등 사세가 위축되었지만 해방이 되고 나서 다시 그 위격을 회복하였다.(김광식, 일제하 금산사의 寺格, 근현대불교의 재조명, 민족사, 2000 참고)

02 진표율사의 자세한 생애는 진표율사와 미륵신앙(김성수, 상생의 길3, 2005, pp.8~25)을 참고할 것.

03 진표율사가 어렸을 때 버들가지를 꺾어서 30여 마리의 개구리를 잡아 꿴 일이 있었다. 놀다가 잊어버린 채 개구리들을 버려두고 집에 돌아갔는데, 이듬해 봄이 되어 진표율사는 우연히 작년에 꿰어 놓은 개구리들이 아직 살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놀란 진표율사는 얼른 버들가지를 끊어 개구리들을 풀어주었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개구리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준 데 대한 참회 등으로 인해 마침내 출가하게 된다.

04 돌로 몸을 찧거나 하는 고통을 통해서 과거의 죄악을 씻어내고자 하는 참회법의 일종.

05 중이 불도를 닦으면서 지켜야 할 계율.

06 점찰경은 과거의 선악업보(善惡業報)와 현재·미래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쳐서 흉수(凶數)가 나올 때 이를 참회하는 방법을 담고 있는 지장신앙의 중심 경전이다. ‘간자점찰경의 방법대로 점을 칠 때 필요한 점괘가 적힌 표찰이다.

07 금산사 사적기에 의하면, 766년에 진표율사에 의해 조성된 미륵불은 쇠로 만들어졌고, 1627년에 새로 조성된 불상은 흙으로 만든 상인 소조상(塑造像)에 도금을 한 것이었으며, 1938년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불상 역시 도금소조상(塗金塑造像)이다. (한국불교연구원, 한국의사찰, 금산사, 일지사, 1994, p.70)

08 가운데 미륵불상(11.8m)을 중심으로 좌측의 협시상(夾侍像)은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우측의 협시상은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며, 두 보살의 높이는 8.8m이다.

09 도전님께서는 솥 위에 얹혀있는 것은 모두 시루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솥 위에 자리하고 있는 미륵이 곧 시루[]에 해당이 되고, ‘글자 형태의 미륵삼존불로 서 있는 까닭에 솥 위의 미륵은 결국 증산(甑山)’을 표상(表象)하고 있다.

10 장륙상(丈六像)이란 보통의 불상보다 훨씬 큰 규모인 16(열여섯 자, 4.8m)의 거대한 불보살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11 현재 금산사에 있는 미륵금불은 1934년 원인모를 화재로 불에 타서(미륵전과 옆의 두 불상은 타지 않았음) 1938년 당시의 조각가 김복진에 의해 다시 조성되어 새로 모셔진 것이다. 그 후 양 옆으로 두 구의 보살상이 추가로 봉안되어 전체적으로 글자 형태가 되었다.

12 진표율사가 창건하여 법회를 열고 7년간 머물렀다고 하는 사찰로, 절 입구에 발(: 바리때, 중 밥그릇) 모양의 못이 있어 이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쇠락하여 작은 암자만 남아 있으며 유점사에 딸린 절로 되어 있다.

13 미륵보살이 성불하여 그 밑에서 용화삼회를 여는 나무로, 꽃가지는 용머리와 같고 나뭇가지는 보룡(寶龍)과 같다고 한다.

14 온갖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공덕(功德)을 갖춘 성자(聖者)

15 1층 정면에 걸린 현판은 대자보전(大慈寶殿)이고, 3층 현판은 미륵전(彌勒殿)이다. ‘대자(大慈)’는 미륵을 뜻하는 범어인 ‘maitreya(마이트레야)’를 한자로 번역한 말이다.

16 이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홍윤식이 지은 금산사의 가람과 미륵신앙(마한·백제문화9, 1986)을 참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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