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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9년(1989)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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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대순진리회의 도인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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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의 도인이 된 이유

                  

택시운전기사에서 대순의 버스를 운전하게 된것은

나 자신의 보이지 않는 엄청난 발전임을 깨달아

 

 

잠실4방면 선무 김 진 국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道人으로서 신기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이 글을 쓰게 됐다.

  入道하기 전 나의 직업은 택시 운전기사였다. 나는 하루하루 예전과 다르게 몸도 마음도 변해가고 있었다. 사회의 탁한 것에만 물들어 간다고나 할까? 택시 사업법에 금지되어 있는 합승이나 승차거부는 서슴없이 하는 것이 몸에 배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었는데 회사측에서 동료들과 비슷한 사납금을 요구하면서부터 그들과 같은 방식대로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하게 되니 자연 손님들과 다툼이 생기고 합승, 승차거부, 신호위반 등으로 경찰서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나의 마음은 점점 사회에 대한 회의와 나 자신에 대한 환멸감이 몰아쳐 왔다. 그러던 끝에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고 이윽고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다.

  여러 약국을 돌아 다니며 약을 사모아 다량의 약을 복용했다. 한참 후에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저 멀리서부터 검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분과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人命은 在天인지 죽음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후 난 후유증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시골에서 몇 달을 쉬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와 택시회사에 다시 들어가 운전을 하던 중 지금의 선각을 만나 도문에 입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입도를 하게 된 동기는 대순진리회의 眞理보다는 入道를 하여 수련을 하면 무슨 병이든 다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터라 그 진리가 맞건 틀리건 나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러자 자연 나는 교화를 듣기를 거부했고 수련을 통해 내 몸을 치료하자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수련이 끝나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연락소를 나서곤 했다. 그런데 수도를 하면서 가끔씩 이상한 체험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시간이 되면 그때를 내 몸이 알려 줌으로써 시계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수련기도가 몸에 익숙하게 되자, 나는 수련기운을 통해 몸이 거의 완치가 되면서 고맙고 신비한 생각으로 진리를 알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차를 타는 손님에게 道에 대한 것과 대순진리회의 진리에 대한 것 등 여러가지를 묻다가 손님이 어느 단체에 있다고 하면 차를 세워 놓고 예기를 하고 또 그 단체의 집회에도 참석을 하여 그 고시에 대한 것도 알아보고 하면서 여러가지를 비교 분석도 해 보았다. 그런데 그 많은 단체를 다니면서 많은 공통점을 느끼게 되었는데 대순진리회는 다른 단체와 전혀 다른 특이한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제는 대순진리회 안에서 진리를 알아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화를 열심히 듣게 되자, 다른 어느 곳에서 듣던 얘기보다는 다른 충족감이 와 닿았다. 그 전에 내가 대순의 진리를 파악하지 않은 이유는 대순 안에서 진리를 찾다 보면 거기에 맞는 것에만 빠져들어 마음의 최면이 걸릴까 두려웠던 생각으로 밖에서 알아 보았던 것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후회감이 앞선다.

  그러던 중 방면 선감께서 대순버스를 운전해 보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듣고 나는 약간 망설였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전부터 택시운전을 그만 두고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이왕이면 대순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진연합회와 학생회에서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대순진리회에 그 많은 버스 중 안동방면 버스가 선택된 것이다. 처음엔 버스를 운전한지 얼마 되질 않아 장거리 여행이 약간은 불안했지만 상제님의 자취를 좀더 가깝게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은 희망으로 바뀌고 말로만 듣던 금산사, 송광사를 보면서 그간 교화를 통해 듣던 것이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과 실감이 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아직도 내 마음에 가장 기억이 남는 일은 銅谷藥房에 들렀을 때 그 마을 할아버지께서 상제님 재세시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해 주실 땐 전혀 의심이 가질 않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순백한 시골 할아버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고 같이 간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편안히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움직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하나의 고난이 닥쳐왔다. 차가 가면 갈수록 브레이크가 듣질 않고 브레이크를 3번 가량 밟고 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 관계로 여러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곡예운전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 속리산 법주사를 가는데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법주사로 들어가려면 말티재라는 꼬불꼬불한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산중턱의 길이 너무 급커브 길이어서 단번에 돌수가 없어 한번 수정을 해서 가야 하는데 경사가 심한 곳이라 브레이크를 다 밟았는데도 차가 밀릴 때는 정신이 아찔함을 느꼈다. 그래서 도인들을 모두 하차를 시키고 빈차로 정상까지 올라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참배를 마치고 내려올 때 아까 그 자리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상제님의 덕화가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운전을 하여 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고속도로를 접어들게 되었다. 그 후 정비공장에서 안 일이지만 브레이크 드럼이 금이 간 상태에서 운전을 한 것이었다. 정비사의 말인 즉 이차는 100미터도 못 가서 사고가 날 차인데 무사히 용케 왔다고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번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또 일심을 가지고 일을 대하면 어떠한 일이든 상제님의 덕화가 있다는 것을 재삼 느꼈고 그리고 상제관과 종통까지도 잘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갈 길이 道의 길이며 天命을 받들어 가는 길이라고 느끼어 만약 도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조금이나마 있고 나의 갈 길이 이 길이 아니라면 아마도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은 우리 道가 믿기 어렵고 따르기 어렵다 해도 생각을 잘하여 바른 진리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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