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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8년(1998)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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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 신명의 생애 : 견담(堅鐔) 神明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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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담(堅鐔) 神明열전

            

 

 

  견담(堅鐔)은 자(字)가 자급(子伋)이고 영천군(潁川郡) 양성현(襄城縣) 사람이다. 군현리(郡縣吏)를 지내다가 세조가 하북(河北)을 토벌할 때 견담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어서 왕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왕은 그의 관리로서의 능력을 참작하여 주부(主簿)로 삼았다. 또한 그를 편장군(偏將軍)으로 배수하여 왕을 따라 하북(河北)을 평정하게 하니 견담은 따로 여노(廬奴)에서 대창(大搶)을 격파하였다. 세조가 즉위한 후, 견담을 양화장군(揚化將軍)으로 배수하고 은강후(濦强侯)로 봉하였다.
  여러 장군들과 함께 낙양(洛陽)을 공격하였는데 주유(朱鮪)가 따로이 동성(東城)을 지키는 사람들을 이끌고 모반하여 견담과 은밀히 약속하길 새벽에 상동문(上東門)을 열기로 하였다.

  견담은 건의대장군 주우(朱祐)와 함께 아침을 틈타 들어와서 주유와 무기창고 아래에서 크게 싸워 죽이고 다치게 한 자가 대단히 많았다. 아침식사 먹을 무렵에야 전투가 끝나니 마침내 주유가 항복하였다. 또한 내황(內黃)을 공격하여 평정하였다.
  건무 2년 우장군(右將軍) 만수(萬修)와 남양(南陽)의 여러 현들을 순행(徇行)하였는데 도향(堵鄕) 사람인 동흔(董訢)이 완성(宛城)에서 모반하여 남양(南陽)의 태수 유린(劉驎)을 잡아 가두었다. 견담은 군대를 이끌고 완성으로 달려가 용감한 병사를 선발하여 밤에 성으로 올라가 문지기를 참수하고 쳐들어가니 동흔이 마침내 성을 버리고 도향으로 도망쳤다. 등봉(鄧奉)이 다시 신야(新野)에서 반란을 일으켜 오한(吳漢)을 대파하였다. 그 때 만수(萬修)가 병들어 죽으니 견담이 홀로 고립되어 남쪽으로 등봉을 막고 북쪽으로 동흔을 제지하였는데 일년 만에 도로가 막히고 식량이 도착하지 않아서 견감은 채소를 먹으면서 사졸들과 고통을 함께 하였다. 매번 급할 때마다 몸소 돌과 화살을 막으니 몸에 세 번이나 상처를 입으면서 그의 군사들은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왕이 남양(南陽)을 정벌하여 동흔, 등봉을 격파하고 나서 견담을 좌조(佐曹)로 삼아 항상 정벌에 따라다니게 하였다. 건무 6년 합비후(合肥侯)로 정하여 봉해졌다. 건무 26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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