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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1년(1991)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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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지난날의 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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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감회


대순진리회가 날로 새롭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감개무량함을…


   

권 중 락 <평도인ㆍ공주방면>
    

  어떤 민족이든 그 민족 고유의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나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듯 타민족의 문화에 흡수되거나 동화하여 소멸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옛 선조들은 안팎으로 수 많은 외침과 풍파를 겪는 등 눈물겨운 고통 속에서도 우리 고유의 정신과 사상을 잃지 않고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물려 주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 서구의 외래문화가 범람하면서 우리의 것이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태의 추이에 견주어 볼 때 나는 대순진리회의 고귀함에 다시금 숙연해짐을 느낀다. 상제님의 진리가 도주님께 이어져 무극도(無極道)에서 태극도(太極道)가 태동하고, 다시금 태극도에서 대순진리회로 이어져 도전님의 영도 하에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하고 있다.

  이처럼 대순진리회가 날로 새롭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문득 지난 세월의 감회가 새로와 이렇게 펜을 들었다.

  나는 어린 소년시절에 무극도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지배 하에 있었을 당시 나의 부모님과 숙모님은 한민족 고유의 것인 「무극도 」를 믿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 순사들은 부모님과 숙모님을 끌고가 온갖 수모와 학대를 했던 일들이 지금도 이 가슴에 생생히 응어리져 남아있다.

  나의 인생팔자도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해방 후 6.25사변이 일어나 학교 교정에서 집도 돌아가지 못하고 혈서지원군(血書志願軍)에 입대하여 나흘간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직격탄을 맞았으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일을 지금 생각해 보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상제님을 믿고 일제치하에서도 온갖 고난을 이기며 무극도를 닦았던 부모님의 공덕이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 후 나는 군에서 제대하여 법학도로써 고등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부득이 포기하고 법무부산하 공무원으로 부산 지방법원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때 부산 감천동에 있던 「태극도 」본부를 알게 되었고 후일 그것이 무극도의 후신임을 전해 듣게 되었다.

  당시의 도인들은 삼동(三冬)에 국산 베옷을 입고 초근목피하면서도 일심으로 상제님을 믿고 혈심으로 도를 지키던 그야말로 천지공사의 일꾼들이었다. 그때 그분들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전통을 지키고 천하만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성스러운 군자의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지금 나는 나의 흘러간 인생과 무극도를 믿으셨던 부모님 그리고 태극도에서 수도하셨던 도인들을 생각해 보며 말할 수 없는 심정과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세월은 흐르고 나도 늙었지만 상제님의 진리는 만고불변으로 온 나라에, 아니 전 세계에 퍼져가고 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시간을 따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삼 느끼며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든 일심과 혈심으로 믿어 정성을 다하는 도인의 자세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다시금 나는 상제님으로부터 크나큰 덕화를 받았음을 알고 부족한 마음이나마 상제님의 덕화선양에 온갖 정열을 다하여 하루 속히 지상선경을 이룩하는데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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