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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5년(2015)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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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연재소설 - 빈들에 서다(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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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대순문예전 수기 외 부문 금상
 
 
연재소설 -
 
빈들에 서다(Ⅰ)
 
 
 
 

울주 방면 정리 박종식

 
 
 
시작하며
  수도인 각자의 삶의 궤적을 쫓아서 그들의 잔잔한 수도 생활을 구현하고자 시작된 글이…. 개개인의 삶은 역사와 함께 투영되었고 역사는 그들의 삶의 본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역사 중에 민감한 부분을 글의 소재로 쓴다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고 글을 쓰는 내내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이 글은 사실을 근간으로 했지만 소설이라는 픽션(fiction)에 기대고 있으며. 내용상 마땅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독자의 포용력에 의지할 뿐, 달리 뜻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방면이나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다 허구임을 표명합니다.
 
 
1
  하나의 씨앗이 바람에 날려 긴 터널을 지나 햇빛이 쏟아지는 허공을 가로지르고 또 날려 자갈밭 돌 틈. 먼저 안착한 흙먼지에 내려앉자 뒤에 오는 흙먼지에 쌓이고 쌓여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도 모른 채 정적에 기대어 시간을 흘려보내고 홀연히 이슬 한 방울에 태동이 되어 파란 이삭이 대지를 뚫고 허공과 조우하여 어린싹으로 세상의 수화풍(水火風)을 견디어 내고 견디어서 어른이 되고 동량(棟梁)의 재목(材木)을 넘어 그 향기가 사해(四海)를 넘는 거목(巨木)이 되기까지….
 
 
 1986년 6월 어느 날.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 남고산성 산자락 밑에 자리한 행정구역상 전주시 동서학동일 뿐이지 농업에 종사하여 사는 사람들이 없을 뿐, 흡사 시골과 다름없는 동네이다. 산자락 사이의 골짜기를 올라 가다 보면 천하영웅 관운장을 모신 관성묘가 있고 이 산꼭대기에서 강증산(姜甑山) 상제님(上帝任)께서 49일 동안 러일전쟁 공사(公事)를 보신 곳이기도 하다. 위대한 역사적 대종교가이신 강증산 상제님의 유래는 그러하나 하루 벌어 하루 살기가 버거운 소위 숟가락만 들고 왔다는 동네 사람들과 그네들의 자녀들에게는 삶을 짓누르는 굴레를 담고 있는 울타리 없는 감옥과 같은 곳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고 벗어나리라. 다짐하는 그러한 곳, 중학교 3학년인 전서열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을 빼면 십 대 남학생들이 늘 그러하듯 힘으로써 서열이 정해지고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 보려고 어설프고 과장된 가오(폼)를 잡아 보려는 여느 또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가 싫다. 가난이 모여 만들어진 동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집안의 가난, 그러한 환경의 이탈(離脫)은 동네를 벗어나는 것으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이 그에게 있어 비상구와 같은 것이었다. 오늘 그 일상의 탈출로 전주 시내 구석구석을 활보하려고 굳게 마음먹은 날이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대청마루에 앉아 운동화를 신으며 끈을 여민다. 마당에서 그의 세살 터울 남동생인 전정열이 중국 무술학원에서 가르치는 도복을 입고 제법 유단자답게 날렵한 동작을 구사하며 마당 감나무를 치고 있다.
“아비요!~~”
“시부!”
“혀~엉”
“우리 사범님이 이소룡이 성룡을 이긴데! 난~ 성룡이 이길 것 같은데?
“난~ 커서 중국 숭산(嵩山)에 갈 거야! 거기에 소림사가 있데….
“어디가?”
  전정열의 과장된 몸짓과 힘찬 목소리에 한 번 눈길을 줄 법도 하지만 남 일인 듯 전서열은 약간 들뜨고 가벼운 얼굴로 마당을 나선다. 여름날의 햇살. 그러나 결코 여름처럼 뜨겁지 않은 온도. 빽빽하게 붙어있는 건물들. 어디론가 힘차게 걷는 사람들. 기계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 이런 도시적인 모습들이 전서열에게는 미소를 자아낼 만큼 좋게 느껴진다. 문명의 혜택이 스며들지 못한 궁벽한 동네의 가난한 집안에 대한 반감을 숨길 수 없는 자신의 의사표현이기도 하였다.
  사실 전주는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사는 그에게는 자신의 눈으로 소유할 수 있는 도시의 전부이며, 문명과 소통하는 창구인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한 곳 없이 길 따라 걷고 골목골목 샅샅이 놓치지 않고 걷는다. 그러다 우연히 멈춰선 곳을 바라보니 영화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극장가였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며 모여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비슷한 행동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있고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서로 받으려고 빠른 몸짓들을 보였다. 이 생소한 광경에 전서열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그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받으려 했던 그 무엇을 나에게도 줄까 하는 받고 싶은 마음과 이 무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에게도 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보고 표를 왜 받느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조금은 떨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받고 싶은 욕심에 발길은 점점 그들에게 다가갔다. 서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제 그와 눈이 마주치면 받든 안 받든 어떻게든 되겠지.’ 전서열은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 이제 곧 전서열의 차례다. 그 사람과 눈만 마주치면 된다. 이때 알 수 없는 힘이 전서열의 팔을 끌어당긴다. 목적을 이루려는 찰나의 시간은 아득히 멀리 떠나가고 전서열은 자기보다 강한 힘에 이끌려 힘의 근원지를 향해 돌아섰다. 30대의 건장한 남자가 전서열을 바라보고 있었고 전서열은 놀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고 더군다나, 집을 떠나 익숙지 않은 곳에서의 낯선 이와 대면이기도 하다. 그 사람은 전서열에게 무언가를 건네준다.
 “자~ 이제 꼭 봐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사람은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전서열의 손에 쥐어진 것은 바로 피카디리 극장 영화 초대권이었다. 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받으려고 “웅성웅성” 거리며 기다렸던 바로 그 초대권이다. 초대권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화평(和平)의 길”이라고 쓰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2
  무술(1958)년 음력 3월 6일 미(未)시…. 후대는 그날을 바람의 시작이라 했다.
 
 
“서러워 말라. 서러워 말라. 나 없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금지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박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이니라. 그는 종전의 시봉 도전과는 전혀 다르니라”
 
 
  태고(太古) 이래 이보다 더 어길 수 없고 명확한 명(命)은 없었다. 무겁고도 엄중한 50년 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의 명(命). 그 명을 어김이 있거나 말씀을 받들지 못한다는 것은 영겁(永劫)의 윤회(輪回)속에서 이보다 더 역(逆)하는 일은 없으리라.
 
 
거역(拒逆)
  천지도수(天地度數)가 차오르고 자신들의 몫이 아닌 천부(天賦)의 탐(貪)함에, 도전님(都典任)께서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분별되는 자아유지(自我由之)속에 주어진 명(命)에 따라 믿지 않는 자들의 욕심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진리(眞理)의 명(命)을 쫓는 이들과 함께 기유(1969)년 4월에 서울 중곡동 용마산 아래 종단대순진리회(宗團大巡眞理會)를 창설하셨다. 종교 활동과 연차적 사업으로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선포하시며 추진하신 이래,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대진대학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할 바 없는 그 영도력(領導力) 앞에 믿고 따라온 이들도 매번 이 분이 진정한 종통(宗統)계승자(繼承者)임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敬畏)했다.
  그날…. 바람을 함께 맞으며 도전님을 따르던 무리 속에 선각도 수반도 없이, 이름 석 자만 걸치고 남루하게 따라오던 김민철 선감은 방면의 수임원으로서 수도인이 가야 할 본(本)에 가까운 사람으로 수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한 학식은 물론 언어의 구사에 있어 거침없는 입담으로 힘 있는 교화에 탁월하였다. 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수반들 앞에서 가르칠 때에는 더러는 위엄을 세워 임원과 수반들을 보듬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모습을 탓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신뢰와 믿음을 수반들에게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수반들 또한 그런 긴장감속에 자신들의 도심이 굳건해지는 것을 기뻐했다.
  “연원(淵源)과 연운(緣運)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김민철 선감은 이렇게 수의(守義)의 시작을 『대순지침』의 도전님 말씀으로 수반들의 도심을 아우르며 연운(緣運)과 혼동하지 말라며 그 특유의 유려한 말솜씨와 삶의 현장감 있는 교화를 전 한다.
  “태극도 때에 정말 똑똑한 사람 많았습니다. 똑똑하다니까. 말하는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똑똑함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때 우리 같은 사람은 그 똑똑한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 했습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지금 여러분의 도심과 그들의 도심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차~암…. 무슨 복이 많아서 여기에 앉아있는지 여러분이 복자입니다.”
  김민철 선감은 수반을 낮게 폄하하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복이 두터움을 말해 수반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 교화에 힘을 얻는 듯 따뜻한 기운이 마음과 몸에 서리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기운을 감당하기 힘들어 조는 이도 있게 되는데 대개 수반들이 그럴 경우 알고도 모르는 체 넘어가나 임원이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교화를 멈추고 이유를 묻거나 살펴 그 이유가 합당치 않으면 꾸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패턴(pattern)을 모를 리 없는 이제 서른인 김덕중 교감이 연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다.
“어제 뭐~ 했어요?”
“김덕중 교감은 나이는 어려도 수반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지 않겠어요?”
김민철 선감은 교화를 하다말고 연신 졸고 있는 김덕중 교감을 향해 훈계했고,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어서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나 위에서 하는 말씀이어서 늘 그 말씀의 진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상 임원들의 몫이었다. 말씀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수반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김덕중 교감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것이다. 훈계 소리에 김덕중 교감도 졸음에서 깨어 이 상황을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기에 급급하였다.
“김 교감 어제 뭐 했어요? 김 교감은 젊으니까 말해 보세요! 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포덕을 많이 하고 상제님 천지공사를 잘 받들 수 있겠는지 말해 보세요.”    
대개 이런 경우 빈 말이라도 답변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긴장 상태의 김덕중 교감은 딱히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변의 시간이 지체될수록 주위의 분위기는 무슨 말이라도 해서 이 분위기를 전환시키라는 자기보다 높은 상급 임원들의 눈치가 김덕중 교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로 나가 포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여지책으로 말 한 듯해도 사실은 도전님께서 대진 대학교 공사 현장에 나오셔서 대진대학교 공사에 대해서 하신 말씀 중에 “대학교를 짓는 것은 세계포덕을 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과 그 말씀을 토대로 세계포덕에 대한 약간의 사색을 걸쳐서 급조한 김덕중 교감의 답변이었다.
  “세계포덕? 김 교감 포덕 얼마나 하셨어요? 말 해봐요. 여기서도 못 하면서….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면 안 샙니까.”
  “김 교감이 옛날에 날 죽이려 했던 일 기억나요! 당장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시켰더니 어디서 노가다 운전을 배워가지고 앞에 차가 있으면 참지를 못하고 달리는데 앞 차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왜 달리지 못해 안달해요! 주위 상황에 맞게 운전하면 여러 사람이 편하잖아요. 핸들만 잡으면 어른도 안 보입니까!
  오늘의 좋은 수의 분위기는 김덕중 교감의 졸음으로 훈계가 이어졌고 상임원들은 불똥이 번질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김민철 선감의 훈계가 멈추기를 바라며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다 다시 분위기가 교화 분위기로 돌아오면 모두 조금 안심 하다가도 다시 생각난 듯 김덕중 교감에게 훈계로 이어지면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도전님께서 말씀은 하셨으나 전반적인 도의 시국은 세계포덕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저 말씀으로만 존재하는 시절이었다. 아직 수도인의 역량이 국내에 머물러 있었고 국외 포덕은 그 방향성조차 가늠하지 못하던 때이므로 김덕중 교감의 말은 실감할 수 없는 너무 앞선 말이었다.
  수의는 그렇게 끝이 났으나 무거운 분위기를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했다. 수반들은 회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웅성웅성” 거리고 로비에서는 김민철 선감을 배웅하려는 모습으로 모두 서 있는데 김민철 선감은 임원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점심을 살 테니 임원들은 따라 나오라고 지시한다. 이런 일도 간혹 있어오던 일이라 깨끗이 털어내지 못했던 오늘의 분위기를 완전히 씻을 수 있는 좋은 자리임을 다들 눈치로 알고 있었다. 김민철 선감이 앞서 회관을 나서고 그 뒤로 임원들이 나서는데 임원들이 오늘의 죄인 아닌 죄인인 김덕중 교감에게는 여기 있으라는 눈치를 준다. 괜히 식당에서도 분위기 험해질까 염려해서다. 김덕중 교감도 그 말에는 스스로 수긍이 되어 서운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은 가봐야 무겁고 버거운 자리이다.
  김민철 선감은 앞서 가면서 임원들이 잘 따라오는지 뒤를 바라보았다. 다들 간격을 맞춰 잘 따라오는데 회관 앞에서 따라오지 않는 김덕중 교감을 무심결에 발견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김 교감은 아직도 잡니까.  빨리 안 와요.”
  그 말에 임원들이 돌아서서 김덕중 교감에게 빨리 오라고 연신 손짓을 한다.
 
 
3
  그녀가 등을 보이며 떠난다. 그녀가 먼저 돌아서지 않으면 다시는 보지 못할 얼굴,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의 가슴에 새겨질 그녀. 이별을 선언하고 떠나는 이제는 옛 애인이 되어 버릴 그녀를 바라보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정민수 교정의 가슴에 뼈아프게 새겨지고 있었다. 차마 도심(道心)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지만 가슴은 울고 있었다. 좋을 때는 살갗이 따뜻하기 그지없고 헤어질 때는 살갗을 허락 없이 닿을 수 없는 남녀의 분별이 극명해지는 생별(生別)이다,
  이별을 고하고 떠나는 여인은 정민수 교정이 입도 전부터 결혼을 언약하던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운명의 묘리가 묘(妙)해서 현실 속의 사회를 떠나 도를 닦는 그를 인정하지 못해 양자택일의 강수(强手)를 던졌다. 사랑하는 그녀를 놓칠 수 없었던 그는 사랑의 순정으로 그녀를 다잡으려 했지만 끝내 그녀의 강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은 도를 닦겠다는 스스로의 대의(大義) 앞에 사랑을 도려내야만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일반 사회에서의 공사현장에서는 이런 날씨면 공사는 중단되지만 도(道)에서 이루어지는 공사(公事)는 다르다. 특히 철근 일은 비가 오면 미끄러워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2인 1조로 철근을 짊어지며 4층으로 철근을 나르던 정민수 교정은 15일 일정으로 대진대학교 공사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하루에 두 시간을 자고 일을 한다는 곳.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두 시간의 잠은 천근만근의 무거움이다. 도인들이 찰나 같은 시간만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조는데 이런 모습은 작업상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신명(神明)과 함께하는 이 도 판에서는 그런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판 밖의 일로써 정말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체험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면 일의 진행속도는 더디어 지기 마련인데 그런 모습들이 발견될라치면 각조 조장들은 빨리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한쪽에서는 상판 콘크리트를 치고 또 한쪽에서는 철근을 매고 그 앞 선(先) 작업에서는 거푸집 형틀목수가 오늘 콘크리트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진땀나게 작업을 한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그 누구 하나라도 그 소임이 흔들리면 신명과 함께 받든 천지공사(天地公事)도 근심거리로 남는 일이다.
 
 
 늦은 밤
  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도인들의 옷이 다 젖어있다 못해 빗물의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며져 있다. 눕고 싶다. 따뜻한 아랫목에 하염없이 눕고 싶고 눈이 떠질 때까지 자고 싶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생각의 전부일 수도 있는 그렇게도 차갑고 축축한 날씨이다. 정민수 교정의 뼛속까지 스며든 빗물도 가슴을 헤집고 후비던 사랑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 사랑이 있기는 했는가? 얼마 전의 일이 아득히 오래된 이야기인 것처럼 무디어져 있었고 떠나간 사랑 뒤에 다가온 사랑도 있었다. 수반 중에 박민영 선무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은 가고 생각지 못한 사랑이 왔다. 이렇게 남녀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엇갈리는 사랑의 감정들은 그저 혼선이었다. 박민영 선무에게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다며 정중하게 거절 했지만 그것이 진정 자신의 마음인지 아닌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해 이곳 작업현장으로 무작정 향했다.
  야간에 주어지는 ‘야참’시간이다. 시간은 15분 정도, 이제 숨 한번 몰아쉬고 빵이나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시간 정말 천금 같은 시간이다. 환경이 변하면 입장도 변한다더니, 여기 와서 보니 ‘사랑앓이’는 정말 철없는 이의 사치였다. 내수들은 작업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수로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길 정도이다. 누군가 밥그릇에 담긴 커피를 정민수 교정에게 건넨다. 여기서는 이런 밥그릇에 주는 커피 한잔은  “커피를 음미하면서 먹을 정신이 있습니까! 시간이 없어요. 우리가 늦었어요.”
  조장의 말에 놀라 커피를 물을 마시듯 연거푸 목구멍으로 넘겨 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로 재빠르게 달려간다. 황금 같은 시간은 그렇게 티끌처럼 사라져 갔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마음이 맞는 수반 몇 명과 청주(淸州)로 개척 사업을 나온 지 일 년여가 흘렀다. 허름하지만 방 세 개인 포덕소도 장만했고 일꾼도 더러 나오고 포덕이 끊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시간 동안 자연히 상처는 아물었고 과거는 과거의 영역에 숨어 없는 듯 나오지 않았다. 정민수 교정은 같은 몸으로 새 인생을 사는 듯 모든 아픔들을 떨쳐버리고 있었다. 8월 한 여름 누군가의 말이 생각이 난다  정말 작지만 뜻밖의 기쁨이다. 비는 오고 몸은 축축하고 차가운 기운은 살을 넘어 뼈를 타고 들어온 지 오래 되었다. 커피 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그 특유의 향과 단내…. 이 한 모금이면 온종일 내린 비를 이길 것 같다.
  “커피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인사가 약간 늦은 듯했지만 고마움에 신분을 물어본다. 언뜻 보니 매우 수려하고 잘 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다.
  “예~ 오늘 철근 조에 들어온 동서 방면 박정호 교령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예 저는 서서 방면 정민수 교정입니다.”
  이 둘은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 정(情)을 트면서 커피를 먹는데 가까운 곳에서 철근조의 조장이 이 둘을 바라보고 소리를 친다.
  “공부하지 않으면 더우면 더운데서 일하고 추우면 추운데서 일한다.”
  한 여름에 더운데서 일하는 사람이 이 소리를 들으면 뼈아픈 말일 것이다. 이런 잡생각으로 한 낮에 포덕소를 지키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면 선감이다. 정민수 교정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 서울에 계신 방면 선감이 지방으로 수반을 만나러 올 때는 반드시 연락을 하면 그 곳의 수반들은 방면선감의 교화를 듣기 위해서 입도한 수반들을 다 모이게 하는 분주한 시간을 갖기 마련인데 방면선감이 예고 없이 온 것이다. 정민수 교정은 기쁘기도 하지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서 왔다가 정 교정한테만 할 말이 있어서 연락 없이 왔네요. 그런데 날씨가 덥네요. 물을 좀 마시고 싶은데….”
  방면 선감은 뜻밖의 상황을 이렇게 이해시켰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이 없다. 한 여름이라 물의 소비가 많아 물이 없는 상태였다. 마누라 패던 날, 장모님 오신다더니…. 그렇다고 수돗물을 드릴 수도 없고….
  “그럼 가게에서 생수라도….”
  정민수 교정의 주머니에는 성날에 모실 맞춰놓은 성금은 있지만 사사로이 쓸 백 원 하나가 없었다. 돈이 없다는 말은 못하고 그렇다고 성금을 모시려고 맞추어진 돈을 쓸 수도 없고 참으로 정민수 교정의 심정이 난감하였으나 까닭 모르는 방면선감은 물을 가져올 그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일단 정민수 교정은 밖으로 나왔다. 구멍가게 가 보인다. 몸은 가게로 걸어가면서 성금을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걸어가는 내내 진땀 흘리며 고심했다. 가게에서 생수를 만지작거리는 순간에도 생수 값으로 가게 주인에게 만 원을 건네는 순간에도 그의 고민은 처절했다. 돈으로만 따진다면 천 원이지만 그 돈에 부여된 의미가 성역(聖域)에 있는 돈이기 때문이었다.
  정민수 교정의 속도 모르고 방면 선감은 물을 시원하게 마신다. 연거푸….
  “어~어 이제 좀 시원하다.”
  이 한 여름에 정말 시원한 물맛이었을 터이다. 정민수 교정의 표정을 살피며 운을 뗀다.
  “정 교정도 이제 대체 임원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군요. 결혼도 하고….”
  임원이라는 말은 포덕도 어느 정도 일구어 놓았고 해서 크게 놀랍지 않으나 결혼이라는 말은 뜻 밖의 말로 다가오고 있었다.
  “임명이야 상신하면 될 일, 결혼이 문제네, 사귀는 사람은 있나요?”
  “저…. 선감요. 결혼은 반대하는 거 아니셨습니까?”
  정민수 교정의 말에는 약간의 섭섭한 반감이 들어있는 어투였다.
  “정 교정 앞에 여러 임원의 생각이 달라요. 그중에 몇 명이 정 교정한테 그런 말을 했을지라도 그것이 방면의 생각은 아닙니다. 우리 도는 관왕(冠旺)의 도이고 도전님께서도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도를 쉽게 닦으려는 생각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 사귀는 여자는 있어요?
  “네…. 사귀는 여자 없습니다.”
  “음~그래요. 서울에서 사업하고 있는 정 교정 수반 박민영 선무 어때요?”
  “박 선무도 정 교정이 좋다고 하던데….
  “학교도 인물도 그 정도면 도인 중에서 마음 둔 사람이 줄을 섰을 겁니다. 박 선무가 정 교정을 마음에 두고 있으니 잘 생각해보세요. 배우자는 뜻이 같은 곳을 향해 있어야 좋습니다. 남녀가 언제까지 얼굴 뜯어먹고 살겠어요. 마음 맞은 사람끼리 의리로 살아야지.”
  방면 선감과 정민수 교정은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방면 선감이 일을 다 보았다며 다른 곳을 둘러볼 참이라 말하고 정민수 교정이 배웅하려는 중이다. 이왕 물값으로 성금을 쓴 김에 선감 차비도 좀 모시려 했지만 선감은 끝끝내 받지 않았다. 포덕소로 돌아와 물 값으로 천 원을 써 버리고 받은 구천 원을 바라보며 천 원을 어디서 구하나 고심하며 구천 원을 한 장 한 장 세어보다 정민수 교정은 깜짝 놀란다. 구천 원이 아니라 천 원짜리 열 장인 만 원인 것이다. 아무리 세어 보아도 만 원이었다. 가게 주인이 구천 원을 잘못 세어 만 원을 준 것이다. 정민수 교정은 빙그레 웃는다.
  “신도(神道)구나 신도….”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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