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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6년(1986)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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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대순사상의 역사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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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사상의 역사적배경


인존이 싹트는 근세사회의 태동기

전쟁의 와중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새로운 빛이



군포방면 선감 민 운 기

    
  인류의 길잡이인 종교가 그 맡은바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혼란에 빠지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늘은 천도(天道)의 법칙에 따라 성현들을 인세(人世)에 보내어, 새 시대를 창조해 왔다. 이렇게 세워진 종교는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여, 인류로 하여금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왔다.
  인류의 역사가 근세로 접어들게 됨에 즈음하여 인류는 인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근세도 왕조의 붕괴에 따르는 서민의 승평운동(升平運動)에서 시작되었다. 종교적으로 볼 때, 성현들의 종교가 붕괴되고, 인간을 사사물물 중의 으뜸자리에 놓기 위해서, 신명(神明)적인 초월자가 직접 인간세상에 출현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하는 인간사회(人間社會)의 실현이란 인존승평(人尊升平) 사회가 태동되면서 한국의 근세는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학(東學) 운동으로써 열린 한국 근세사회의 가치좌표는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란 가치가 아니라 「사람을 높이도록 신명들이 사람을 시봉(侍奉)한다」는 가치에 있었다. 그 새로운 가치좌표를 일컬어 대순사상(大巡思想)이라 한다. 이 새로운 사상이 근세 초기를 열어놓은 동학의 바로 뒤를 이어, 서민 대중속에서부터 횡행(橫行)하여 일어났던 것이다. 


    

(1) 대순사상에서의 시대구분


  『상제께서 구천(구천)에 계시사, (ㄱ) 신성·불·보살들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ㄴ)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 오셔서 삼계(三界)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大巡)하시다가, (ㄷ)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시면서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大道)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에 스스로 세상에 (ㄹ) 내리시기를 정하셨다.』(예시1, 부호는 필자주)
  여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상제께서 강세하시기 까지에는 네 단계의 과정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 네 과정 중에서 연대적으로 뚜렸한 부분은 동토에서의 30년과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리신 시점, 그리고 상제께서 직접 강세하신 부분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동토에 이르신 시점인데, 30년을 지내신 후에 천명과 신교를 내려주신 것으로 볼 수도 있고, 30년을 지내시는 기간중에 그 일을 하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필자는 전자를 택하여, 동토에 임하셨던 30년을 1830년부터 1860년까지도 보아 시대 구분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ㄱ)과 (ㄴ)의 행위는 1830년 이전의 역사가 될 것이다. 즉 신성·불·보살들이 호소하게 된 역사적 배경은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시작하여 1830년 까지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과거로부터 (ㄱ)(ㄴ)까지를 한데 묶고, (ㄷ)과, (ㄹ)로부터 천지공사를 시작하시기 전인 1900년까지, 그리고 1901년부터 화천(化天)하시기 까지인 1909년까지, 이렇게 네 과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성·불·보살의 호소와 삼계 대순


  천지신명은 왜 상제께 호소하게 되었으며, 삼계를 둘러보신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그 동안의 인류의 역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던 투쟁의 역사였다. 국가와 국가간의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전쟁, 인간의 정복욕에서 오는 전쟁은 차지하더라도, 부족과 부족간에 그들 나름대로 믿고 있는 신(神)들의 우월성을 대변하기 위한 전쟁은 얼마나 많았는가. 신을 믿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여, 자기들이 믿고 있는 우월성, 유일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타 부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부터 인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에서는 수 많은 신명을 인세에 보내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시켰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그것을 잘 운용할 줄 모르고, 종교 본래의 목적과 수단을 상실한 채,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중요시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이른바 종교전쟁이라는 아이러니를 낳는 비극을 맛보았던 것이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생활이 나아졌고, 급기야는 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말미암아 문명의 발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여 일찌기 보지 못했던 풍족한 생활을 맛보게 되었으나, 인간은 결국 이러한 이기(利器)를 평화를 위해서만 사용할 줄 모르고, 결국에는 전쟁의 이용물로 쓰게 되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상제께서는 『세계의 모든 족속들은 각기 자기들의 생활 경험의 전승(傳承)에 따라 특수한 사상을 토대로 색다른 문화를 이룩하였으되 그것을 발휘하게 되자 마침내 큰 시비가 일어났도다. ……』(전경 교법 제3장 23)고 말씀하셨으며, 『선천에서는 인간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전경 공사 제1장 3)는 말씀도 하셨다. 또한 『삼계가 착란함은 명부의 착란에 있다.』고 말씀하시어, 천지신명의 호소가 인간뿐만 아니라 신명까지도 잘못되어 있음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밝혀주셨다.


   

(3) 東土에 임하신 40년


  일찍 과학문명을 발달시킨 서양의 모든 국가들은 경제적인 부를 동양에서 얻고자, 아직 개화되지 않은 동양을 넘보기 시작했고, 신식무기를 지닌 소수 민족들은 각기 저마다 독립을 외치니 서양의 대륙은 일대 전쟁의 와중이었다. 조선과 인접한 청나라는 발달된 영국군의 침략을 받아 상해(上海)를 빼앗기고, 잇달아 남경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자 영국에 항복하고 남경조약을 체결하고 말았다.(1842년) 유럽에서는, 프랑스에서 두 차례나 혁명이 일어난 끝에 국민들이 국왕을 내쫒아 버리고 프랑스 국가를 세우니 이른바 7월 혁명이다. (1879년) 벨기에가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도 각기 제 나라를 세우는 전쟁을 일으켰다. 국민들에 의해 봉건 왕권이 무너지는 이른바 「자유주의에 의한 국민운동」이었다. 이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미합중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남북전쟁을 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1861~1865년) 남아메리카에서도 자기 나라를 세우는 전쟁에 휘말렸다. 1820년대부터 1870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나라들은 살륙전쟁이 소용돌이 치는 격동의 시기였다.
  한편 조선(당시의 대한민국 명칭임으로 그대로 쓰기로 한다.)은 어떠하였는가. 청나라 침략에 성공한 영국은 군함을 앞세우고 전라도 해안을 순양한 것을 기점으로, 프랑스 군함이 충청도에 입항하여 천주교도 김 대건을 처형한데 대한 문죄서(文罪書)를 제출하고 가더니 다음 해에 다시 오는 등 제집 드나들 듯했다. 북쪽에서는 러시아 선박이 함경도를 침공하여 주민을 살상하고 도망쳤다. (1861년) 1852년 계속되는 흉년으로 유민(流民)이 속출하는 가운데 최제우가 동학(東學)을 창시(1860년)하여 유민구제에 나셨다. 만주로 이민하는 사람은 늘어났다. 이 사이에도 민란이 진주로부터 일어나(1862년) 전국에 퍼졌고 민정(民政)은 극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동토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양 전체에 걸쳐 일었다. 게다가 상제께서는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주었지만, 그가 대도의 참뜻을 펴지 못하므로, 신미년에 직접 강세하시기게 된 것이다.


    
(4) 강세 후 30년


  『서양 사람이 발명한 문명이기를 그대로 두어야 옳으냐, 거두어야 옳으냐고 상제께서 물으셨다.』『그들의 기계는 천국의 것을 본 딴 것이니라』(전경 공사 제1장 35) 미국의 태평양 함대가 조선국을 침략하여 한강으로 들어와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강화섬을 공격하여 신미양요란 난을 일으켰으며(1871년) 이를 본딴 일본이 역시 미국의 흉내를 내어 운양호, 정묘호라는 이름의 군함을 이끌고 부산을 시위포격하고는 통상을 요구했고(1875년) 또 강화도를 공격한 뒤에 병력을 상륙시켜서 약탈 살육을 자행했다. 말하자면 저들이 하늘의 것을 본따서 만든 문명이기를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악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명이기에 수반되는 문물이 조선국에 들어와서 신문화를 심게 되었다.


   
(5) 천지공사


  ① 통정신과 문명신
  『상제께서 서양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 이제 배에 실어오는 화물표에 따라 넘어오리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전경 권지1장 11) 문물교류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보면 앞에서 본 열강들의 조선국 침범을 역으로 조선민족의식의 성장을 고취하여 문화계발의 의식을 드높인다. 경제의 침략이란 측면을 무시할 수 없으나, 철도가 부설되면서 기차등 文明利器의 혜택을 누리게 되고, 지하자원을 개발하여 보다 풍부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는 유교의 구습을 타파하는 개화사상을 이 땅위에 심게 되었다. 양반과 상놈의 차별을 철폐하여 인권 평등의 사상이 대도되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왕조의 정치가 보였던 군신관계는 권리가 국민에게 있고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사상으로 전도되었다.
  『상제께서 지금은 해원(解)시대니라 양반을 찾아 반상의 구별을 가리는 것은 그 선령(先靈)의 뼈를 깎는 것과 같고, 망하는 기운이 따르느니라. 그러므로 양반의 인습을 속히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戚)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오리라.(전경 교법 제1장 9)』『이 후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해라.』 (註:인권존중) (嫡庶差別철폐) (舊制度改正) 또 이제는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인존시대가 왔으므로 천한 사람이 구제되고 귀하게 될 것이며 대장부(大丈婦)라고도 하셨다.』(전경 교법 제2장 56, 57)


  ② 해원공사
  사명기(司命旗)를 세워 전명숙과 최수운의 원을 풀어 주셨고(전경 공사제 3장 2) 『千世千世 千千世, -萬世萬世 萬萬世, -日月崔益鉉, -千胞千胞千千胞, -萬胞萬胞 萬萬胞, 蒼生 朴泳孝』(전경 공사 제2장 22) 최수운과 전명숙은 조선의 근세를 열어 놓기 위하여 동학란을 일으키다가 목숨을 바치면서 나라에 대한 한(恨)을 품은 의사들이고 최익현과 박영효는 조선국의 천자를 옹호하려다 적에게 희생된 충신들이다. 그들의 업적은 역사에 빛나고 있다. 이제까지 상제께서 강세하시게 된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보았듯이 수많은 사람이 피맺힌 원한을 품고 죽어갔다.
  미국의 제임스는 인류의 역사를 피의 목욕탕이라 했다. 인류의 역사는 상극으로 인한 원의 발달이요, 이 모든 원한이 천하에 가득차서 장차 전 世界를 폭파하여 인류를 전멸 시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원혼들을 해원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인류의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며 또한 영원한 지상낙원, 극락, 선경도 실현되기 어려움으로 상제께서는 『한 사람으로라도 원한을 품으면서 능히 천지기운을 막으리니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한을 품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하셨다. 이제 신명계와 인간계를 대순사상의 이법(理法)으로 정음(正陰), 정양(正陽)에 정립(正立)시키고 즉, 사람이나 신명이 자기 맡은 바 소임을 다 하였을 때 해원상생(解相生)의 도로써 과거의 모든 이념, 이법, 질서, 규법등을 일대 수정하는 대작업을 단행하셨다. 상제께서는 陰陽合德, 神人調化, 解相生, 道通眞境의 새로운 진리로써 解과 報恩으로 비겁에 빠진 신명과 재겁에 빠진 천하창생을 건지시려고 천지운로를 뜯어고치고 신도를 바로잡아 만고의 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서 선경을 열고 지상천국을 세워 하염없는 덕행으로 음해와 시기 질투가 완전히 배제되는 후천 세계를 三界公事로 이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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