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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8년(1988)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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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후회스러웠던 지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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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스러웠던 지난날

 

 

                                     대전 제 1방면 장 옥 점

 

  나는 이 진리를 알기 전에는 남을 미워한 적도 표시 나게 했었고, 욕심도 있었고, 남편의 잘못을 저주하며, 이 삶을 후회의 열등의식 속에 빠져들어 숨돌릴 여유조차 없는 어지러움 속에 지냈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길다면 한없이 길기만 한 병원 침대에 묶인 채로 있을 때 나는 인간의 생사에 대한 책인 극락과 지옥, 성경, 주역, 예언서 집에 관한 책 등을 읽으면서 지냈다. 나는 욕심과 욕망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병이 나아 퇴원하여 정상인이 되고서도 나의 재생에 대해 스스로 고마워 하는 자세가 아니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사무실에 나가 남편의 일을 돕고 있었는데, 버스가 하루씩 걸러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한차씩 싣고 와서 기름을 주유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교인들이 몰려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며칠 후 주유소에 정전이 될 때 가동되는 발전기 부속이 고장 나서 남편이 대전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했으나 헛탕을 쳤다. 할 수 없이 서울에 가서 갈아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 기계를 들여 다 보고 있는데, 대순버스가 들어와서 주유를 했다. 그때 주유소의 사무실로 들어온 분(선무)에게 “그 차 서울 갑니까?” 물으니 “네, 서울 가는데요” 하면서 “서울 가실 일 있으시면 타세요 제가 서울까지 태워드리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기계를 싣고 서울 간 것까진 알았지만 갔다 오고 난 남편은, 선무에 이끌려 중곡동 대순본부까지 다녀왔다고 하면서, 책꽃이에 전부터 보아왔던 “상제님 강증산” 이란 책을 빼어서 내 앞에 놓는 것이었다.
  “대순 진리야말로 괜찮아. 바로 강증산님을 뫼시는 곳인데, 전에 책을 읽어 보고 괜찮아서 대전 xx에 있는 xx교에 내 스스로 가보았지만, 그 때는 별로였는데 대순진리회 본부에 가보니 천지신명이 모이신 곳에 한복을 단정하게 입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아 타 종교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할 종교더라” “남자들도 있나요?” “음 그곳에 가니까 남자들도 많았어.” “남자들도 한복을 입고 있어서 옛날 우리 조상들의 근엄한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어”
  남편은 어려운 시골출신으로 대학까지 다니기는 벅찬 집안이었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마쳤었다.

  그러나 대학 나왔다고 다 출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혼례를 치루고 가진 것도 없고, 뚜렷한 직장도 없는 상태로 월셋방부터 시작하였다.

  세를 살자니, 내 자식은 주인집의 가시처럼 느끼게 되었고, 주인집엔 나이가 비슷한 아이가 셋이나 있어 더욱 어려움이 컸다.

  하루는 비가 철철 오는데 주인집 식구들이 마루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처마끝에서 비를 맞으면서 TV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속이 상해 그 죄없는 아이를 끌고 들어와 화풀이하듯 때려댔는데 그 일은 지금도 무척 후회가 되고 있다.

  이제 집도 마련하고 나니 자식의 병마와 저의 교통사고, 남편의 잦은 외도 등으로 우리는 머리 아픈 일 투성이었다. 친구들을 만나 여행이나 다닐까 하는 허황된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순진리를 어느 정도 알고 기도상 앞에 앉아 기도 올릴 적마다 나는 생각나는게 있다. 나는 과거에 선사, 선무께서 “회관에 가서 입도하자”는 권유와 재촉을 피해 그 소리 안들을려고 그 분들을 보기만 하면 숨고 피한 일이 있다. 그 당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요즘은 남편과 마주 앉기만 하면 “전경” 과 상제님의 진리를 이야기 하고 토론하며 지난날의 그릇된 생각과 잘못을 뉘우치면서 수도에 열중하고 있다.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 진리를 어느 정도 깊이 알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신하였다. 남의 어려운 곳엔 서슴없이 나서서 해결해주려고 노력하고 가정에 들어와서는 자식과 아내를 깊이 이해해주고 아낄 뿐 아니라 우리 부모에게도 자신의 부모 이상으로 섬기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워 치던 화투며 술도 삼가 한 것이었다. 그러한 일들을 남편 스스로 행하는 점에 고마워 나도 기도를 열심히 모시고,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단계가 되었다. 남편도 대순진리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나 책이며 노트에 적어가며 밤새는 날이 빈번해졌기에 나도 무엇인가를 알고 열심히 행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반성하며 다짐하고 있다.
  언제나 새벽 1시 기도 때에는 그 어두웠던 내 마음을 밝혀주는 촛불 심지를 가슴 속에 담고 상제님과 화답하며 두 손 모아 머리숙인다. 그러노라면 세월로 점철된 지난날의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삶을 씻어내듯 마음이 정돈된다. 법수로 맑아진 생명수를 마시면 비로소 산다는 보람을 느끼며, 모든 것이 새로와진다. 마음을 비우고 진리의 뜻을 한아름 담아 채워 나가면서 나의 몸과 마음을 합해 스스로 행하게 되었다.

  대순진리야 말로 우리의 참 스승이요, 이 땅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을 갖고 따라야 한다. 상제님의 진리를 깊이 터득해서 가슴마다 해원보은생생의 푯대를 가슴에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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