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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0년(1990)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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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고(苦)의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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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苦)의 의미에 대하여

 

마음은 기초동량이고 심령신대이며 천지의 중앙

 

                    

김 현 중 <교령ㆍ남대구 방면>

           
  가끔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마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수많은 상념들이 한데 어울려 호숫가의 물결처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우리 마음속에서 일렁인다. 그러나 선명하지는 않다. 따사롭고 포근한 물결이 있는가 하면 서늘하고 찬 흐름도 있고 밝게 움직이는가 하면 금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은 순간순간의 상태를 반영하며 부단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속에는 그 흐름의 방향이 있고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한 추구가 짙게 깔려져 있다. 추구의 대상을 뭐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다. 자기실현도 좋다. 소박하게 행복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어떤 표현이 되든지 우리는 그것을 위해 힘쓰고 고민하며 애처로운 몸부림 속에서 안타까운 몸짓을 하며 신음하고 있다.

  긴장과 대립, 무지와 편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고 참다운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하여 이토록 어렵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리는 살고 있다. 착하고 티없이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데도, 우리가 순수한 삶을 사무치게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삶이란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찬 고해의 바다인지도 모른다. 고통을 없애기 위하여, 괴로움을 잊기 위하여 우리는 또다시 고통과 괴로움을 수반하는 즐거운 일에 몰두하게 되는 수레바퀴속에서 괴로워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어떤이는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전문가를 찾아 상담이나 치료를 받기도 하며, 자포자기 속에서 술과 도박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와같은 현실들이 부인할 수 없는 지금 우리들의 애처로운 실상이다. 추구하는 바를 가지고 그것을 절실히 원하는데도 이에 역행하는 일을 하게 되는 비애와 비통함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고달프다.

  믿음ㆍ우리가 진실로 믿을 수 있다면 고통을 이기는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 믿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편안하게 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것 같다. 상제께서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 (秋無義)라. 농가에서 추수한 후에 곡식 종자를 남겨 두나니 이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이니라. 그것이 곧 믿는 길이니라』고 하셨다. (교법 2장 45절) 농부는 토지를 믿고서 내년의 추수를 위해 곡식종자를 남겨 둔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서(Hermann Hesse)의 「데미안」에서 『새는 껍질을 깨는 고통을 이겨야 이 세상에 태어난다』라는 구절이 있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밝은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이 새는 껍질을 깨는 아픔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에릭시갈의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인 조나단은 쉽고 평범하게 다른 새들과 어울리면서 살아갈수도 있었다. 하지만 날개를 펄럭이며 피나는 비행연습을 하였다. 그리하여 주위의 비난과 조소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들이 사는 곳보다 더 높은 곳에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세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했던 것이다. 날다가 떨어지고하여 절망도 하고, 포기할려고 하였지만, 이상세계에 대한 믿음이 강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드디어 성공하였다. 그에게는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리의 수도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에는 도(道)가 좋아서 하다가, 자기에게 행하기 어려운 책임이 주어지면 해보지도 않고 먼저 겁을 먹고 회피하려고 한다.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도에 대한 믿음의 부족 때문이다. 이 믿음은 선각의 교화에 의해서 생길수도 있으나, 자기 스스로가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할 때 더욱더 강해지리라고 본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나는 왜 도를 닦는가」에 대한 합당한 논리와 명확한 이치가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자기 스스로가 잘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기초동량이고, 심령신대(心靈神臺)이며 천지의 중앙이기 때문이다.

  후천세계, 도통진경에 대한 믿음이 갈매기 조나단처럼 강렬하다면 현실의 고통과 외로움은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만일 우리가 하나됨의 진리를 믿고 그곳을 향하여 정진을 계속 할 수 있다면 고통은 이미 고통이기를 그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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