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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1년(1991)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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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無自欺는 도인의 玉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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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自欺는 도인의 玉條

 

신명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

 

             

고 남 식 <교령ㆍ부평방면>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자기자신이 마음속으로 가졌던 생각, 행동으로 일으켰던 일 그리고 육신에 속해 있는 눈・코・입 등의 기관으로 지었던 작용 등의 모든 것을 있었던 그대로, 행했던 그대로 간직하거나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진실」이라는 것도 위와같은 취지하에 나타나는 일관성있는 작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왜『무자기는 도인의 옥조』가 되는 것일까? 이점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가령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맡았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 일에 따른 상황들이 전개될 것이다. 일을 맡은 사람은 그 상황들속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또 스스로 잘한 일이 있기도 하고 잘못한 일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 경우에 잘한일을 묵묵히 음덕으로 간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한 일은 있는 그대로 남에게 보고를 잘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잘못한 일 혹은 자기에게 피해가 오는 일에 대해서는 있었던 그대로 행했었던 그대로 보이거나 얘기하지를 않는 것이 바로 문제가 된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즉 개인적 생각으로 사욕에 빠져 있었던 그대로 행했었던 그대로를 왜곡하고 상대를 속이게 되며 그러므로서 진실이 없게 된다. 또한 나중에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는 망신을 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되며「불신의 화살」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와같은 예를 흔히 본다. 특히 매스컴이나 대인 접촉속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수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몸으로부터 일어나는 작용들이 모두 기록되어지고 있으며 관찰되어지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른 수도인이 본 것은 그들이 알고 있고 남아있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지 않은 것은 없어지고 조금 속여도 되겠지하는 의식자체를 모두 완전히 지워버려야만 한다.

  그 이유는 우리 도는 신도(神道)이기 때문이다. 신도라는 것은 인간적 차원의 것을 모두 포함하여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미지의 세계의 것들을 모두 다 알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신도로써 관찰할 수 없다면 공사(公私)의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없을 것이다. 행동으로는 예절을 취하나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모른다면 진실과 경위의 파악이 올바르게 되지 못할 것이다. 상제님께서『신명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예시 67절)라고 하신 말씀은 신도의 의미를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역으로 우리가 보이지않는 곳에서 일으켰던 마음과 행동을 아무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자.

  나는 어린시절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은 기억이 있다.

  『옛날에 갑(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이 보는 곳에서는 무엇인가를 얻기위해 타인을 의식해서 철저히 잘 처신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않는 곳에서는 다르게 마음을 먹고 다르게 행동했었다. 어느덧 그 사람은 보이는 곳에서 행동하고 처신한 대가로 결국 그의 목적을 이뤘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甲)의 다른 한쪽면이 목적 성취와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남앞에서 잘 처신하고 양심적이던 그가 속였던 마음과 행동들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많은 이들은 고통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일 위와같은 일이 수도의 과정속에서 일어난다면 우주의 질서와 도의 근본이 세워질 수 없을 것이며 천하는 또 다시 어지러워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나는 확신해본다. 그러니 결국 갑(甲)과 같은 사람에게는 운수가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갑(甲)과 같이 스스로를 속이고 두가지 마음으로 두가지 행동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상제님의 진리안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것이 불을 보듯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도에 있어 무자기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도인에게 있어 가장 보물이요 보배인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제님께서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 』(권지 1장 19절)『아주 크고 무척이나 미세한 일들을 천지귀신들이 살피고 있다(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공사 3장 40절)라고 하신 말씀과 훈회에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조목들은 아무도 보지않는 어두운 방에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하는 무자기(無自欺)의 중요성을 보여주시는 말씀들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펜을 놓으며 나는 수도생활속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꼭 실천해야할 참 진리(眞理)의 말씀을 적어본다.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를 엄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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