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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3년(1993)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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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무심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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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心』의 경지

 

             

김재필 <선무ㆍ상주6방면>

         

  『어떻게 하는 것이 도를 가장 잘 닦는 것인가?』 나는 이점을 다음의 일화를 통해 생각해 보았다. 『열자(列子)』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시대에 기창(紀昌)이라는 젊은이가 천하제일의 궁사가 되고자 결심하고 그 시대에 제일가는 궁사인 비위(飛衛)를 찾아갔다. 비위의 궁술은 백보 밖에서도 버들잎 하나를 능히 맞추는 기막힌 것이었다.

  기창이 그를 스승으로 모셨으나 궁술은 가르쳐 주지 않고 먼저 눈을 깜박이지 않는 연습부터 시키는 것이었다. 기창은 집에 돌아가 곧 처의 베틀 밑 발판에 누워 눈을 깜박이지 않는 연습을 했다. 2년이 지나자 칼끝이 그의 속눈썹에 와 닿아도 깜박이지 않게 되었다. 기창은 다시 비위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으나 비위는「아직 덜 됐다. 보는 것을 반드시 익혀야만 한다. 즉 작은 물체를 큰 물체로 볼 수 있고, 불확실한 물체를 확실히 보이게 되거든 다시 찾아 오라」고 했다.

  기창은 다시 집에 돌아와 이 한 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매일 온 정신을 모아 바라 보았다. 석 달이 지나니 이가 누에처럼 커진 듯 싶더니 또 일년이 지나니 마치 돼지처럼 커지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와 삼년 후에는 큰 소만한 크기로 보였다. 그가 문을 나와 자기가 타는 말을 보니 마치 우뚝 솟은 산이요 보는 것마다 비할 바 없이 크게 되었다.

  기창은 흥분하여 그 길로 비위를 찾아가 이 사실을 고하니 비위도 기뻐하였다. 그 때부터 기창은 본격적으로 비위에게 활쏘기를 배워나갔다. 그 결과 기창은 백보 밖에서 동전의 가운데를 꿰뚫었으며 실수라곤 전혀 없었다.

  또 백 개의 화살을 연이어 쏘면 첫 화살은 과녁 판 중심에, 둘째 화살은 첫 화살의 꽁무니에… 이렇듯 눈 깜짝할 사이에 백 개의 화살이 과녁판에서 활시위까지 일직선을 이루었다. 이렇듯 기창은 궁술은 이미 천하무적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뇌리엔 또 한명의 더 높은 상대가 있었으니 그의 스승 비위였다. 어느날 들판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긴 스승을 보던 기창은 좋은 기회라 여겨 즉각 활을 당기니 비위도 튀듯 몸을 돌려 대응했다. 서로서로 활을 쏘아대니 둘의 중간 지점에선 서로의 화살이 맞부딪쳐 수도 없이 떨어졌다.

  그런데 비위의 화살이 먼저 바닥나고 말았다. 기창은 마지막 남은 한 자루의 화살을 날려 보냈다. 그러나 비위는 스승답게 날랜 솜씨로 그 오는 화살을 이빨로 꽝 물어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결국 둘은 다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활을 내던지고 서로 포옹하여 부자(父子)의 연을 맺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위는 기창에게「내 비법은 네게 다 전수했지만 도(道)다운 궁술이라면 내 스승 감승노인에게 배워야 해! 우리 궁술은 그 분에 비하면 어린애 걸음마일 뿐이니 곽산으로 가 그분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창은 험산절벽을 넘어 곽산에 올랐다.

  기창은 감승노인을 뵙고 예를 갖추며 사사받기를 청하니 감승노인이 기창의 솜씨를 보고자 한다. 기창은 얼른 활을 들어 공중에 높이 날쌔게 날으는 새를 한방에 서넛을 떨어 뜨린다.

  이에 감승노인은「쓸만해. 허나 그댄 아직 쏘지 않는 궁도(弓道)는 배운 적이 없지? 날 따라오게」하였다. 기창이 감승노인과 간 곳은 매우 심하게 요동쳐 서있기 조차 어려운 바위 위였다. 감승노인이 기창에게 여기서 아까처럼 활 솜씨를 보여 달라고 하니 기창은 엄두도 못 내는 것이었다.

  「무엇이 참 궁도인지 보여주지」 감승노인은 목표를 향해 그냥 손가락만 움직이니 그냥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참 궁술은 활과 화살을 쓰지 않는 법!」기창이 그 연유를 스승인 감승노인께 여쭈었다.

  「너는 유심(有心)으로 활을 쏘지만, 나는 무심(無心)으로 활을 쏘는 것이다.」

  그 후 기창은 9년 동안 감승노인게 궁도를 배웠고 십년 후 그가 귀향했을 때는 사람이 완전히 변해 이전의 고집 세고 오만한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활 솜씨를 자랑하지도 않았고 함부로 살생도 하지 않았다.』

 

 

  위의 일화의 요점은 유심과 무심이 된다. 그러면 유심은 무엇이고 무심은 무엇인가?

  유심(有心)으로 쏘는 것은, 활과 화살이 내 마음과 완벽하게 일체를 못 이룬 것이니, 활과 화살에 내 마음을 실어야 되는 것이요, 주위가 흔들리면 제대로 못 쏘는 것이다.

  무심(無心)으로 쏘는 것은 활과 화살이 내 마음과 온전히 일체가 된 경지이지, 내가 곧 활과 화살이요, 활과 화살이 곧 나인 것이다. 그러니 그냥 활과 화살이 없이도 내 마음가는대로 쏘아 맞추는 것이다. 주위가 흔들려도 내 마음이 안 흔들리니 그냥 명중이다.

  바로 일체인 경지요, 그대로인 경지다. 물론 유심의 경지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이나 무심의 경지가 되었을 때 비로소 궁술(弓術)이 아닌 궁도(弓道)를 터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修道)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유컨대, 유심으로 수도하는 것을 나는 스스로 수도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만일 위에서 명이 떨어지면 스스로 나름대로의 명분(名分)을 찾고, 실리(實利)를 찾고, 당위성을 내세워, 사고한 후 이해하여 비로소 움직이고 강력히 실천하는 것이다. 즉 나름대로의 명분, 실리, 당위성을 행동실천의 원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것도 훌륭하고 참 하기 어려운 것이나 아직 부족하고 헛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만약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자신이 어리석어 미쳐 그 명분, 실리, 당위성을 찾지 못했을 경우는 어려워진다. 알게 모르게 실천, 행동하는 힘이 떨어질 것이요, 또 알게 모르게 불평불만과 의심이 싹틀 것이다. 상하(上下)간에 서로 마음에 문(門)이 있는 것이다. 부르는 사람은 반드시 똑똑 노크를 해서 자신을 알려야 되고, 안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누군지 확인을 한 뒤 열어주어야 서로 통하는 경지다.

  그러면 반면에 무심(無心)의 경지는 무엇인가? 상하(上下)와 표리(表裏)가 일체된 경지다. 그냥 그대로요, 초월 승화된 경지다. 명분, 실리, 당위성, 사고이해를 초월 승화한 단계이다. 심우도에서 5번째까지는 소가 있지만 6번째에는 소가 없는 것은, 소 즉 도(道)와 일체가 된「道卽我 我卽道」의 경지를 나타낸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냥 걸릴 것 없이 자연스럽게 통하는 경지다. 서로의 문이 없으니 노크할 필요도 없고 확인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는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고 주위가 흔들릴 때에도 그 흔들림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동기 부여적인 행동을 초월했기에 실천에 강하고 약한 것이 없고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는 것이다.

  『전경』예시편의 십년 머슴살이한 청년이 물위에 뻗은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뛰어내려 승천한 경지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무심하자 해서 되는 경지가 아니다.

  부단히 수도의 제반과정을 통해(즉 입도, 포덕, 교화, 수의, 참배, 월성, 공부) 각고의 성경신을 다하고, 진심갈력하여 도력(道力)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 경지이며 수도의 열매요, 결실이며, 도즉아 아즉도의 도통이다.

  또, 부단히 서로 승상접하가 되고 상하통정이 되어서 통하고 통하는 경지가 되어야 하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며,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전경』예시편에 나오는 머슴에게 스승을 찾자마자 스승이 오냐 이리 오너라 하고 연못으로 데려가서 뛰어내리라고 한들 뛰어 내렸겠으며, 설사 뛰어내렸다고 한들 도통이 되었겠는가? 나타난 현상적인 껍데기는 모방할지 몰라도, 본질적인, 무심을 통한 심법(心法)의 전수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다.

  드러난 껍데기가 같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요, 본직적인 심법(心法)을 알아야 되고, 논리, 사고, 이해, 명분, 실리만이 소중하고 전부가 아니다. 성경신을 다한 각고의 수도 속에서 얻어진 진실한 무심의 경지와 소중한 깨달음이 진정 더 큰 것이고 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바로 이 모두가 모든 분쟁, 갈등, 문제의 씨앗인 이 이기적인 집착, 교만, 아집, 사심(私心)을 각골정려의 수도를 통해 버림으로써, 유심의 경지를 뛰어넘어 지극한 무심의 경지에 모두 이르러 위의 뜻을 참으로 잘 받드는 그런 진실되고 올바른 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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