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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1년(1991)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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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과욕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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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을 버리자

 

     

 손 종 익 <교령ㆍ신암방면>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인 까닭에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매시간 살기 위해서 바둥거린다. 생명의 목표는 사는 것이요 결과는 죽는 것이니 어느 누가 죽음을 목표로 살고자 하겠는가.

  그런데 산다는 것, 삶에의 의지.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소박한 견지에서 볼 때 살려고 하는 의지에는 이미 욕망의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이란 단적으로 말해 하나의 「욕구의 존재」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차 많은 욕구를 갖게 된다. 생존에의 욕구, 물질에의 욕구, 명예에 대한 욕구, 사랑내지 존경받고 싶은 욕구 등 수많은 욕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욕구의 존재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의외로 건전한 기초를 마련해 준다.

  『욕망이란 바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성격 또는 존재 의의를 결정짓는 바 그것이다.』라고 스피노자가 말한 의미도 거기에 있다고 할수 있다.

  본래 욕구는 근면의 박차이면서 운명의 에네르기적 요소이다.

  삶의 동력으로서 욕구는 언제나 발휘, 신장시켜야 하는 것이며 욕구의 소망스러운 면을 보다 확충하는 것도 긴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욕구는 끊임없이 증대되는 까닭에 이 욕구의 충족을 위한 집착 역시 멎을 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본래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무한에 가 닿으려 함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문제는 진퇴존망(進退存亡)에 정위(正位)를 잃지 않으려는 욕구절제의 능력이 일반 사람에게는 희소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희소의 욕구를 억지로 충족시키려 하면 남의 욕구를 가로채든지 아니면 방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욕심을 잉태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 사망을 낳는다고 하여 욕구를 경계해 왔다. 성현의 말씀가운데 항상 「욕심을 버리라」는 교설이 등장한다. 이 같은 주문은 인간생활에 끊임없이 귀감이 될만한 하나의 당위, 요청인가하면 다른 한편 이는 인간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무조건 욕심과 집착을 다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릇된 욕심, 그릇된 집착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이러한 뜻에서 맹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함은 그래도 물고기를 얻지 못할뿐 후환은 없지만 만일 당신이 하려는 방법으로 당신의 욕구를 추구한다면 죽도록 애쓴 뒤에 반드시 화가 따를 것이다.』(綠木求魚는 雖不得魚나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로 求若所慾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리이다 孟子:梁恵王章句 上篇)

  더 나아가 그릇된 욕구는 나와 남을 같이 고통케 하고 패망에 이르게까지도 한다. 나아갈줄만 알고 물러설줄 모르며 자신이 얻으려고만 하고 잃는 것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의 방욕(放欲)은 인류를 진멸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상제께서는 교법에 이르기를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교법 1장 1절)라 하여 재화와 같은 물질적 욕구에 의해 천하창생이 멸망케 되었다고 하셨다. 과욕은 금물이다.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라 하였으되 제갈량(諸葛亮)은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와 박전십오경(薄田十五頃)의탓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느니라』에서처럼 천하를 위하는자가 적은 욕심알도 남겨두면 성공치 못한다는 의미이다.

  지나친 욕구는 절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易의 마지막과 末爻는 인류・퇴폐의 원인을 욕구의 「不知節」한 데에 있다고 규정한다. 결국 道가 크게 패해 거의 망한다 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튼튼한 포상에 매어 달릴것이라 했다. (易曰其亡擊干包桑: 擊辭傳下五章) 포상(包桑)은 뽕나무의 무성한 뿌리로 매우 견고한 것이다. 상전벽해의 선후천 교체기에 이르러서야 포상과 같은 튼튼한 생명줄을 잡게될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과 같이 욕구에 가리워 무도한 상극법칙이 누적된 사회에서 욕구에 대한 진퇴법을 바로 알아 성사(成事)하는데 연한이 없도록 힘써야 함을 명심케하는 말이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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