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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1년(1991)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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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신(神)과 인간(人間)관계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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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과 인간(人間)관계에 대한 소고(小考)

 

신과 인간의 관계는 신인조화로 귀결된다.
인간계의 분쟁은 신명계에 그대로 반영되고 신명계에서의 분쟁은
다시 인간계에 파급된다.

 

                     

신 일 호 <연구위원>

     
1. 머리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라고 표방하거나 인식되어지는 경우에 신에 대한 관념이 내재되어 있지 아니한 종교는 거의 전무(全無)하다. 만일 인간이 완전한 존재라면 종교내지는 신의 존재가 필요치 않겠으나 유한한 존재로서 한계를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신적인 존재와의 교섭이 불가피하다 하겠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있어서는 종교와 그에 결부된 신적인 존재가 인류역사의 시발과 함께 요구되어져 왔으며, 각각의 종교는 이러한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수용하여왔다. 이것은 인류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와 원리를 터득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기완성을 목적으로 한 신인조화를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수도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신인조화(神人造化)의 법리(法理)에 대해 잘못 인식할 경우, 수도의 과정에서 진정한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망각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무기력함에 빠져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상제님 말씀을 통해 신인조화의 가능성과 그 법리를 알아보고 이를 위한 수도인의 기본적 자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명적 존재의 특질

     
  전경의 신명에 관한 말씀을 종합, 분석하면 신명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 될 수 있다.

  첫째, 신명의 세계에서도 인간계처럼 상극적 상황이 발생되어서(공사 3장 1절) 신명계 상호간에도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각각의 경계가 존재 하였으며, 또한 서로 척이 맺혀온 바(공사 2장 4절, 교운 1장 9절), 이에 상제께서 신명에 대한 해원공사로써 신명을 조화하여(공사 3장 5절, 교운 1장 20절), 상생의 세계로 개조하고 있다.(예시 10절)

  둘째, 신명은 상제의 주재하에 천지공사에 참여하기도 하며(공사 1장 10절, 교법 1장 18절), 인간으로부터, 특히 상제로부터 일정한 예우를 받는 존재이다.(행록 2장 20절, 공사 2장 5절, 교법 1장 66절, 예시 69절)

  셋째, 신명은 인간의 윤리, 도덕에 대하여 심판자적인 성격을 지닌다.(행록 1장 38절, 행록 5장 4절, 교법 1장 17절, 교법 1장 29절)

  넷째, 신명계와 인간계는 밀접한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행록 3장 44절), 인간계와 음・양의 관계로써 규정되어지는 존재이며(제생 43절), 인간계의 일은 미리 신명계에서 작정되어지기도 하며(권지 1장 6절), 인간 각자의 기국에 따라 신명이 응하여, 이른바 신인조화의 형태로서, 대순진리회의 궁극적 목적인 후천선경의 세계로 향하게 된다.


       
3. 신과 인간의 관계

    
  대순의 궁극적 목적은 후천선경을 이루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선천의 상극적 상황이 해소되어 상생적 상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인간계뿐만 아니라 신명계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명과 인간이 상합(相合)하여 후천선경을 여는데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신명과 인간은 과연 어떠한 관계로 존재, 작용하며, 신명과 인간이 조화하게 되는 법리, 그리고 이러한 조화를 위해 인간이 수용해야 할 실천적 자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인간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행할 최소한의 도리에 대해서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이 같이 공을 드려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 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교법 2장 36절)『事之當旺在於天地必不在人然無人無天地故天地生人用人以人生不參於天地用人之時何可日人生乎(사지당왕재어천지필부재인연무인무천지고천지생인용인이인생불삼어천지용인지시하가일인생호)』(교법 3장 47절) 여기에서 살펴보면 조상들의 무한한 공덕으로 인해 인간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조상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삶을 영위한다면 이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또한 일을 주관하여 완성되게 함은 천지에 있는 것이요 사람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가 없는 연유로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고자함에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천지가 사람을 쓰고자 하는 시기를 맞아 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찌 가히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즉 천지가 사람을 내어 후천선경을 열기위해 천지공사에 쓰고자 할 때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이에 참여하여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선천에서의 인간은 상극에 지배되어 불완전한 면을 내포함으로 신명과 인간이 상합(相合)하여야 한다.

  그러면 과연 신명과 인간은 서로 상합될 수 있는가. 먼저 신명이라는 존재의 모습을 살펴보자. 『사람에게 혼과 백이 있나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후손들의 제사를 받다가 사대를 넘긴 후로 영도 되고 선도 되니라.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지나면 귀가 되니라.』(교법 1장 50절) 인간의 몸속에 깃들어 있던 인성(人性)의 활동이 사후(死後)에 시간의 제약을 받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또 다른 형태로서. 인간 모두는 사후에 신이 될 수 있다. 다만 생전의 삶에서 각자가 쌓은 공덕(功德)과 수도(修道)의 정도에 따라 신명계에서의 위치에 차등이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사실과 예를 상제님께서는 『도를 닦은 자는 그 정혼이 굳게 뭉치기에 죽어도 흩어지지 않고 천상에 오르려니와 그렇지 못한 자는 그 정혼이 희미하여 연기와 물거품이 삭듯 하리라.』(교법 2장 22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명부가 되었느니라.』(교법 1장 2절)라고 말씀하시어 인간 각자가 생전에 수도한 정도에 따라 사후의 정혼(精魂)의 모습이 달라짐과 생전에 쌓은 공덕에 의해 사후 신명계에서의 신격(神格)이 정해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신명과 인간이 상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면 이러한 신과 인간과의 상합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그 이후의 실제적인 상합은 어떠한 법리로써 이루어지는가. 『…교중이나 가중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이 문란하여 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행록 3장 8절)

  『사람들 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교법 1장 54절)

  『…그것은 신명공사에서 작정된 것인데 어찌 결실하기도 전에 농작을 얘기 할 수 있으리오.』(권지 1장 6절)

  위의 구절을 통해 살펴보면 신과 인간과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계에서의 분쟁은 신명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신명계에서의 분쟁을 일으키며 이러한 신명계에서의 분쟁은 다시 인간계에 파급되어 짐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인간계의 모든 일들이 신명계에 그대로 반영되며 또 그 결과가 인간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계의 농업작황이 미리 신명계에서 작정되어 지는 것처럼 인간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이미 신명계에서 작정되어지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관계는 인간 개개인에 이르러 더욱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신명은 이른바 인간의 내재적 주체(內在的 主體)로서 작용하게 된다. 마음을 가리켜 『天地之中央心也故東西南北身依於心(천지지중앙심야고동서남북신의어심)』(교운 1장 66절)이라 하여 인간에게 있어서도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또한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심야자귀신지추기야문호야도로야)…』(행록3장44절)라고 하여 신명과 인간이 상합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상태에 따라 그에 맞는 신명이 응기하여 합일(合一)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心)의 작용이 어떻게 신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

  『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들어 복을 이루지 못하나니라.』(교법 1장 21절)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가느니라.』(교법 2장 17절)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교법 2장 44절) 이에 의하면 도적의 마음을 품으면 도적의 신명이 응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의 복(福)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자기 일에 소홀한 채 남의 업적만 부러워하는 자는 그 기국(器局)이 작음을 알고 신명들이 떠나가 결과적으로 신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며 남을 미워하면 상대방의 신명들이 이를 알고 자신에게 척을 맺어 보복하게 됨으로써 선천의 상극적 악순환을 다시 초래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가능성과 방법을 부여받은 인간은 신과의 합일을 위해 어떠한 수도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일까. 『말은 말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교법 1장 11절) 앞에서 신과 인간이 합일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마음이 핵심적 요소로 작용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의 말과 행실로써 외형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행은 인간 각자의 마음상태를 반영한 것이 되며 따라서 이러한 언행(言行)은 결과적으로 신명과의 합일을 이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구체적인 수도자세는 항상 언행을 바르게 하여 남과 사소한 척이라도 맺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나」가 아닌 「너」를 항상 먼저 염두에 두며 수도에 정진할 때에 실현가능하다고 하겠다.
   


4. 맺음말

    
  이상 상제님의 말씀을 통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순에서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신인조화로 귀결되어진다. 이것은 선천과는 달리 신과 인간이 서로 분리되어서는 후천선경의 세계로 향할 수 없으며 반드시 신과 인간이 합일되는 신인조화로써만이 완성세계인 후천세상에 참여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후천선경으로 향하고자할 때 수도인 각자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인조화의 가능성과 법리는 이미 수도인 각자에게 주어져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이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이에 따른 실제적인 수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매사에 언행을 바르게 하며 항상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수도에 임하여 척을 짓지 않도록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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