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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6년(1986)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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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 종교와 사회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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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사회계층


세계보편 종교로서의 대순진리회

모든 사회계층을 포용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선학과 윤 재 근

   

머리말


  기성의 사회나 문화형태가 해소되고 새로운 질서나 문화형이 대체되는 현상은 어느 사회에서든 항상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동 과정에서 각기 서로 다른 집단이나 계층은 그들 나름의 반응을 드러낸다. 더구나 사회란 하나의 단순한 정태(精態)의 구조가 아니라 전개되어가는 과정의 복합이다. 따라서 인간 관계나 가치, 사회의 성취목표는 한 순간에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회계층에서 바뀌어진다. 그 목표 변동으로 인해서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들에 대한 보상의 분배나 심리적인 만족도가, 다른 집단이나 계층의 소속원보다 총족될 경우에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에 밀착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현상에 대해서 불만을 갖게 된다. 불만족을 느끼는 집단이나 계층은 사회적 변혁기에서 자신들의 삶이 우연성(Contingency)에 의해 좌우되며, 무력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뒤루껭(Dürkheim)은 전통 사회 구조의 해체와 조직의 와해 단계에서, 가치와 규범의 상실로 혼돈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아노미(Anomie)」라고 했다.

  아노미 현상은 사회 구조에서만 아니라, 종교적 태도에 있어서도 아노미 현상을 느끼는 계층에게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며, 아노미 상태의 중증세인 박탈감인 경우에는, 구원의 복음을 표상하는 적극적인, 종교 반응을 보인다. 즉 현세는 질곡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세에서의 구원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창창자(創唱者)나 신도는 여러 사회적 계층의 출신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들은 각기 사회에서 서로 다른 기능과 보상을 받고 있고, 태도나 가치 지향에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아무튼, 모든 사람이 삶의 조건이나 양식이 다르다고 할 때 각자의 외양(外樣)은 물론 요구, 반응 그리고 동기가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 안에서의 각각의 다른 집단 내지 계층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종교적 요구가 따르게 될 것이다.



본 말


1. 기독교 태동기의 사회 계층
  베버(Weber)는 사회에서의 중, 하층 계급이 기독교 태동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경향은 농민들의 경향과는 대조적으로 농민들은 종교 생활에 있어서 결정적인 통일체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하층 계급, 그 중에도 수공업자나 소규모의 상인들의 경우 농민들과는 달리 생활면에서 자연적인 조건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지보(地步)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생활 조건을 이룩해 가는데 예측성과 목표의 실현을 전제로 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집단에서는 정직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며, 열심히 일하고 충직하게 살면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믿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소규모 상인이나 수공업자들은 윤리적인 보상관념과 결부된 이성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와는 달리, 대조적으로 예측성이란 것이 전혀 없는 자연 조건에 좌우되기 때문에, 전통 사회에 있어서 농민들은 합리적인 시장 경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불합리하고 예측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권능을 이용하고자 주술(呪術)을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수공업자들도 초기의 단계에서는 주술에 의존했지만, 그들의 생활이 점차 전개되면서 합리적으로 나아갔고 농민들의 경우는 외부 세력의 강한 영향력이 미치기 전에는 주술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부유한 상공계층에 있어서는 윤리적인 보상이라는 신앙 중. 하층 계급에서와 같이 호소력을 갖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었을 뿐, 예언적 종교나 윤리적인 종교에 기대하는 경향은 없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윤리 내지 구제 종교의 중추를 이끌어 간 세력은 아니다. 그보다도 더 특권을 향유한 계층은 저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2. 중국 대륙 종교에의 사회 계층
  기독교가 중.하층 계급의 발동에 의해서 전개된데 반해 동양에 있어서는 항상 특권층의 지식인이 종교를 이끌어가는 전이 역할을 했다.

  중국에 있어서의 지배적인 사회윤리는 이 세상(世上)이 가능한 세계의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인간성은 본래적으로 착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그 자신이 윤리적으로 자기를 완성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성선설---- 고 본다. 이 자기 완성의 깊이 고전문헌을 통한 학적 교양이다. 따라서 부덕(不德)이란,

  이와 같은 교양의 결여와 그 원인으로서의 경제적 빈곤인 것이다. 차세(此世)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세를 긍정하면서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윤리적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란 바로 장수, 건강, 치부와 같은 차세적인 것이며 사후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명성이다. 이와 같은 낙관적인 인간관의 결과로서 중국에서는 원죄의 사상은 조금의 편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종교를 이끌어 가는 전위는 바로 독서인 내지 고전의 교양을 갖고 과거에 합격하여 관록을 받는 사대부 계층이다. 이런 점에서 유교의 윤리는 관료주의 내지는 공리주의의 가장 강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적 구제란 시점에서 중국은, 「윤리적 통일의 집중」이 없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일상생활은 자연에 그대로 좌우되며 전통 속에 매몰되고 만다. 그러므로, 주술이 만연한다. 그 때문에 중국은 현란한 문화와 막대한 부를 축적했어도 대표적인 정체사회라는 것이다.



3. 두 입장과 세계적 종교의 진면
  이상 중세 사회에서 종교가 성장할 때의 계층을 크게 기독교적인 입장과 중국대륙의 유교적인 입장에서 거론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기독교는 서구사회에서의 보편적,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다고 자처하고, 중국의 유교사상은 노.장의 사상을 수용하여 동양 문화권에서 당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계층에 흡수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하층 계급이나 학적교양을 쌓은 자로 넓게는 특수한 계층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소외된 계층 구성원들은 항상 그들을 수용, 포용할 사상이나 철학, 종교를 갈망한다. 즉, 민중들은 그들의 욕구, 욕망을 가장 잘 충족시킬 범 민족적인, 범 세계적인, 범 계층적인 종교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보편종교, 세계종교라는 것은 그 종교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대 사회적 계층 분포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좌우 된다고 해도 어불성설 만은 아닐 것이다.



맺음말
  앞서 살펴 본 바로, 중세에 발생한 종교의 대 사회계층에 대한 기회 불평등과 그 대상의 협소성을 알 수 있는 데, 그 밖의 고대 인도의 종교 –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등- 도 역시 그대상의 특수된 소수의 계층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어떠한 종교에서도 여자의 종교 참여는 천천히 배제되어 왔다.

  그런데, 증산사상에 입각한 대순의 진리는 「광구(匡救)」라는 표현으로 사회의 어느 계층에도 차별함이 없이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민중에의 상생(相生)이며, 과거에 소외되었던 계층의 피해의식으로부터의 해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을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신과 신, 신과 인, 인과 인, 인과 물(物)까지를 그 대상으로 삼는 광역의 것이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에까지 확산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상의 근거를 『전경(典經)』에서 찾을 수 있는데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서 지배되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三界)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라고 나타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사상이 대 사회적 계층에의 해원이며 상생이라는 원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증산의 대순 사상은 직위의 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어느 곳에나 부합되는 상생, 상보(相補)의 논리인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보편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중세의 종교가 인의, 자비, 박애를 부르짖었지만 그 대상의 편협성을 면하지 못한데 반해 증산의 대순사상은 인계(人界)의 상황이 서로 반목질시하던 것을 장애됨이 없이 「상극을 상생으로, 원숙(怨宿)을 해원으로 」라는 논리로서 그 타당성을 드러낸다.
  앞서 말했던 보편적 종교와 세계종교는 그 구성원의 대 사회적 계층분포와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증산의 대순사상은 바로 그런 면에서 한치의 엇갈림을 보이지 아니한다. 즉 보편종교. 세계종교에로의 도약적 발단과 근거가 대단히 튼튼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새로운 종교 출현을 갈망했던 이들에게 민중적 종교로서, 보편적 종교로서의 대순 사상을 선물하는 일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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