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탐방 : 원주방면 원만준 선감
원주방면 원만준 선감
誠ㆍ敬ㆍ信으로 포덕천하 실현해야
교무부
『충북 제천군 한수면 포탄리에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충주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충주지역에서 도 사업(道事業)을 해왔지요.』 원주방면 원만준(元萬俊ㆍ76세)선감은 35세 때인 1951년 태극도 시절에 입도(入道)를 걸어온 원로선감이다.
▶입도하시던 무렵의 주변 상황을 말씀해 주시지요. 『그 때가 6.25사변 이듬해인 1951년이었는데 나는 음력 6월 8일 축시(丑時)에 입도치성을 드렸어요. 그외 시간에는 입도치성을 드리지 않았지요. 천지(天地)의 기운이 새로워 지는 시간에만 치성을 드렸었지요.』
▶전시(戰時)라 수도하시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전쟁 중이라 모두들 어렵게 살고 있었지요. 특히 도인(道人)들은 그 와중에서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수도하느라고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나는 그래도 지방 유지였던 선친의 유산을 물려받은 덕택으로 몇몇 도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었어요. 지금 그 당시를 회상하면 전쟁 중에서도 도인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보람되게 느껴지는군요. 그때 도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냉대 때문에 여러가지 곤욕들을 치른 적이 허다했습니다.』 부인 이일심(李一心ㆍ72세)여사와의 사이에 3남 5녀를 둔 원 선감은 고생 중에도 자식들이 도를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나는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 수업을 한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써서 큰 딸은 태극도 당시에 「학무(學務)」라는 직책을 맡아 도인 자녀들의 교육에도 일조를 했습니다. 학무직은 도에서 세운 학교의 교사라고 할 수 있지요.」
▶도인들의 수도자세에 있어서 옛날과 비교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돌이켜 보면 성ㆍ경ㆍ신(誠 敬 信)의 측면에서는 옛날 도인들이 월등했던 것 같아요. 기도모시는 일만 해도 그 때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기도를 못 모시면 반드시 보충기도를 모시곤 했는데 요즘 도인들은 바빠서 그런지 그런 면에서 좀 소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수도인들에게 배울 점도 많아요 옛날에는 도담(道談)다운 도담도 없었고 그저 새 운수가 오니 믿고 따르라는 정도였으니까요. 요즘은 체계가 많이 잡혀가고 있는 것 같아요.』
▶보람을 느꼈던 때도 많았을 텐데요. 『특히 어른을 모시고 있었을 때가 어려운 중에서도 가장 기쁘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도주님도 모셔보고 도전님도 모셔보면서 덕화(德化)를 직접 느꼈으니까요』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를 닦으며 포덕 사업만 하던 사람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뭐 있겠어요. 자식들도 다들 자리를 잡았고 또 사위들이 포덕 사업에 임하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전경』에 「하루짚신 세 켤레를 닳기면서 사람을 구하러 다니리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듯이 후각들이 성.경.신을 다해 포덕 천하를 하루빨리 이루어주었으면 하는 것 뿐입니다. 상제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켜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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