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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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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탐방 : 원주방면 원만준 선감

원주방면 원만준 선감

 

誠ㆍ敬ㆍ信으로 포덕천하 실현해야

                     

 

교무부

 

  『충북 제천군 한수면 포탄리에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충주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충주지역에서 도 사업(道事業)을 해왔지요.』 원주방면 원만준(元萬俊76세)선감은 35세 때인 1951년 태극도 시절에 입도(入道)를 걸어온 원로선감이다.

 

 

▶입도하시던 무렵의 주변 상황을 말씀해 주시지요.

  『그 때가 6.25사변 이듬해인 1951년이었는데 나는 음력 6월 8일 축시(丑時)에 입도치성을 드렸어요. 그외 시간에는 입도치성을 드리지 않았지요. 천지(天地)의 기운이 새로워 지는 시간에만 치성을 드렸었지요.』

 

 

전시(戰時)라 수도하시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전쟁 중이라 모두들 어렵게 살고 있었지요. 특히 도인(道人)들은 그 와중에서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수도하느라고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나는 그래도 지방 유지였던 선친의 유산을 물려받은 덕택으로 몇몇 도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었어요. 지금 그 당시를 회상하면 전쟁 중에서도 도인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보람되게 느껴지는군요. 그때 도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냉대 때문에 여러가지 곤욕들을 치른 적이 허다했습니다.』

  부인 이일심(李一心72세)여사와의 사이에 3남 5녀를 둔 원 선감은 고생 중에도 자식들이 도를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나는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 수업을 한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써서 큰 딸은 태극도 당시에 「학무(學務)」라는 직책을 맡아 도인 자녀들의 교육에도 일조를 했습니다. 학무직은 도에서 세운 학교의 교사라고 할 수 있지요.」

 

 

도인들의 수도자세에 있어서 옛날과 비교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돌이켜 보면 성신(誠 敬 信)의 측면에서는 옛날 도인들이 월등했던 것 같아요. 기도모시는 일만 해도 그 때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기도를 못 모시면 반드시 보충기도를 모시곤 했는데 요즘 도인들은 바빠서 그런지 그런 면에서 좀 소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수도인들에게 배울 점도 많아요 옛날에는 도담(道談)다운 도담도 없었고 그저 새 운수가 오니 믿고 따르라는 정도였으니까요. 요즘은 체계가 많이 잡혀가고 있는 것 같아요.』

 

                

보람을 느꼈던 때도 많았을 텐데요.

  『특히 어른을 모시고 있었을 때가 어려운 중에서도 가장 기쁘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도주님도 모셔보고 도전님도 모셔보면서 덕화(德化)를 직접 느꼈으니까요』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를 닦으며 포덕 사업만 하던 사람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뭐 있겠어요. 자식들도 다들 자리를 잡았고 또 사위들이 포덕 사업에 임하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전경』에 「하루짚신 세 켤레를 닳기면서 사람을 구하러 다니리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듯이 후각들이 성.경.신을 다해 포덕 천하를 하루빨리 이루어주었으면 하는 것 뿐입니다. 상제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켜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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